‘몸짓’을 좋아한다고요? 몸짓이 뭐죠? 인터뷰이 제보를 받고 역대 가장 흥미로운 덕후라는 직감이 들었다. 야구덕후, 피겨덕후처럼 주위에서 한 번쯤은 볼 수 있었던 그런 덕후가 아니다. 몸짓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을 보러다니는 것은 물론 자신이 몸짓을 표현하는 것을 매우 즐기는 ‘몸짓 덕후’ 이은지씨를 만나고 왔다.




자기소개

- 안녕하세요 몸짓을 사랑하는 이은지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심리학과 3학년이에요.


언제부터 몸짓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하긴 했어요. 발레를 잠깐 한 적 있는데 어머니께서 뚱뚱하다고 그냥 공부나 하라고 하셔서 그만 뒀고요. 발레 말고도 집에서 막춤도 많이 췄었대요. 그리고 제가 여고를 나왔는데, 여고가 조신한 여학생들이 모여 있는 분위기가 아니잖아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야자 시간에 선생님 안 계시면 자주 춤췄어요. 애들이 춤춰달라고 요구도 하고요. 잘 추는 게 아니라 그냥 웃기니까 춰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 무용 채플을 들었는데요. 제가 직접 추는 것이 아닌, 공연 예술로써의 무용이 굉장히 끌리더라고요. 이렇게 꾸준히 몸짓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게, 제 관심사가 이쪽으로 쏠리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대학에 들어와서 과제 때문에 어떤 작품(어떤 이스라엘 분의 작품이었는데 , 국제무용축제에 있던 작품이에요.)을 보러 갔는데, 순간 느낌이 강하게 오면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 내가 무용이랑 통하는 게 있구나 싶었죠. 예술이라도 각자 통하는 분야가 있잖아요. 음악이든 미술이든. 나는 확실히 ‘무용’이구나 싶었죠.


자신이 하는 무용 동작을 ‘몸짓’이라 표현한다는 데, 몸짓이라 이름붙인 이유는

- 다른 사람의 춤을 모방하는 게 아닌 내 마음 속 감정을 몸동작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요. 저는 춤을 출 때 다른 사람의 동작을 따라하진 않아요. 그냥 그 곡의 느낌에 따라 추죠. 그 곡이 대중가요이더라도요. 제가 하는 동작을 ‘춤’이라 표현하게 되면 그냥 클럽에서 엉덩이 흔드는 정도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 것 같아서, 이것과 차별화하기 위해 ‘몸짓’을 쓰게 된 것 같아요. 내가 몸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결국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거니까요. 몸짓=마음짓이죠.


‘몸짓=마음짓’이라 했는데, 자신의 마음을 몸짓으로 전달했을 때 더 효과적이었던 경험은

- 사실 타인과의 의사소통에 있어서는 춤을 추거나 하진 않아요. 다시 말해서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몸짓으로 전달했을 때 효과적이었던 적은 없죠. ‘몸짓=마음짓’이라는 건 ‘나’와의 의사소통인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것이요. 보통 자신을 돌아볼 때 일기를 쓰잖아요. 그런데 저는 글을 쓰는 걸 굉장히 두려워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랬는지 의사소통의 방법이 몸짓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무용 외에도 생활 속에서 몸짓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나요

- 무용 외라고 말할 것 없이, 사실 전 일상생활이 곧 무용이고 몸짓인 것 같아요. 전문적으로 춤을 춘 건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춤을 춰왔고요. 지금도 친구들이 뭐 하고 있어? 라고 물으면 나 춤추고 있어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냥 방에서 혼자 음악 틀어놓고 춰요. 아 이번에는 이렇게 춰볼까라는 의식적인게 아니라 무의식에 가까운 몸짓이죠. 그래서 이런 몸짓이 자연스럽게 말할 때 제스처로 배어나오는 게 아닐까 해요.




표현하는 것이 습관이면, 무의식적으로 나올 때가 있지 않나요.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때는 없나요.

- 무의식적으로 할 때도 있죠. 동작이 갑자기 커진다든지 하는 거요. 그런데 저는 부끄럽지 않아요. 오히려 저랑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얼굴을 못 들죠. 생각보다 사람들이 타인에게 신경을 많이 안 써요. 혼자 창피한 짓 했어도, 사실 옆 사람은 그걸 몰랐을 수도 있고요. [몸짓을 참아보려고 했던 적은 없겠네요?] 딱히 그런 건 없지만, 정말 기분이 나쁘면 춤이 안 춰져요. 몸이 안 움직여요. 그냥 잠을 자거나 먹거나 우는 방식으로 배출이 되지, 몸짓이 되진 않더라고요.


은지씨가 춤추는 동영상을 봤어요. 그곳이 강의실이었던 것 같은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춤을 추나 봐요.

- 아 거기는 동아리 모임 장소였는데, 그 동영상을 찍은 친구는 제일 친한 친구에요. 편한 사람이었고 그 곳에 그 친구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가능했죠. 어색한 사람 많고 그런 곳에서는 잘 안 춰요(ㅋㅋ).


TV나 다른 매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 중 마음에 드는 ‘몸짓’을 하는 사람은?

- 이준이 좋았어요. 제 특기가 ‘모니터 남친’을 만드는 건데요. 일종의 가상의 애인을 만드는 거죠. 엠블랙의 이준이 한예종 출신이더라고요. 무용을 하던 사람이었던 거죠(헤헤). 이준이 콘서트 때마다 추는 레파토리가 있는데요. 그게 좀 마음에 들어서, 이준은 무용을 하고 저는 평론을 하는 그런 상상을 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이준이 끝까지 무용을 할 생각이 없다고 얘기한 거예요. 이때 정이 확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딱히 없어요.


몸짓이 일종의 표현예술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 제가 프로페셔널한 무용수도 아니라서, 이 동작에는 이런 의미가 있고 저 동작에는 저런 의미가 있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전체적인 맥락을 봤을 때 이런 느낌이 담겨있다 그런 정도죠. 제가 간송미술관에서 보고 온 그림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눠, 이 주제를 몸짓으로 표현한 과제가 있어요.

(그림- 과제 중 일부분)


서양에서는 보통 바람을 맞는 대나무, 비를 맞는 대나무 등을 보고 ‘시련’이라 보잖아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 동양에선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바람을 맞았으면 그냥 ‘맞았구나’ 정도에 그치는 것 같았어요. 바람이나 비가 고통이고 이겨내야 할 것들이 아니라 그냥 자연이고 우리와 함께 가는 것들이라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자연과 함께하는 느낌’이라는 주제를 몸짓으로 표현한 거예요. 몸짓 하나하나에 세세한 의미가 들어있진 않지만 전체적 맥락에서 ‘자연과 함께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연애 중인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몸짓을?

- 지금 연애하고 있는 건 아닌데 스킨십을 하겠죠. 비슷한 레파토리일 것 같아요. 기념일이 되면, 내가 지난 시간 너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떠올려 그 때의 감정을 담았다며 영상을 찍어 보내줄 수 있겠죠. 만약에 돈이 많으면 공연장을 빌려서 할 수도 있겠지만(ㅋㅋㅋ), 사실상 불가능하고요. 저 살기도 바쁘니까요(ㅋㅋ).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은?

몸짓을 좋아하는 것 그리고 인지심리, 무용, 평론, 인문학에 대한 공부 욕심이 ‘연구’를 해야겠다는 쪽으로 옮아갔어요. 인지과학의 분야에서 무용을 연구하고 미학을 공부해 평론을 하는 거죠. 무용에 관한 기획, 평론, 연구를 다 해보고 싶어요. 춤을 만들지는 못하고 내가 무대에서 춤을 추지는 못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다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미술이나 음악에 관한 담론은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무용에 관한 철학적 담론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무용 자체가 순간적인 예술이라서 평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한데, 춤은 일상에서 흔하잖아요. 종교적인 게 아니더라도, 노래방에서나 클럽에서 춤추는 게 흔하다 보니, 그래서 철학적으로 연구가 덜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현대무용을 좋아하니까 이 아름다운 무용을 사람들에게 너무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우려되는 점이 있어요. 춤이 우리 일상과 매우 가깝게 있다보니, 무용도 너무 빨리 대중화가 되어버리면 ‘예술’로써의 무용이 아닌 ‘그냥 춤’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무용이 예술로써의 탄탄한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대중화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 연구를 하고 싶어요.

이은지에게 몸짓이란?

- 저에게 있어서 몸짓이란 일상인 것 같아요. 이전에는 몸짓이 ‘나와의 소통’에 머물러 있었다면, 무용관련 직업을 가지려고 마음먹고 난 뒤부터는 ‘나와 타인과의 의사소통 혹은 매개 수단’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몸짓은 내가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할 것이에요.

 

자기소개를 부탁했을 때 학교, 나이, 직업이외의 다른 대답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또 취미가 뭐냐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서, 음악 감상, 영화 감상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이렇게 자신만의 컨텐츠를 갖는다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다. ‘몸짓’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그녀. 개성 강하고 톡톡 튀는 ‘이은지의 컨텐츠’는 어디에 서있든 그녀를 빛나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