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열풍이 불고,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웰빙이 단순히 새로운 상업적 아이템으로 소비되고 있을 뿐, 웰빙을 표방하는 음식이 정말 몸에 좋은지 항상 의문이 든다. ‘웰빙 치킨’과 ‘웰빙 버거’ 가 과연 몸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정말 웰빙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바로 채식인 (채식주의자) 이다. 바로 오늘 인터뷰는 채식인 즉, ‘채식 덕후’ 인터뷰이다. 유기농 식품을 주로 소비하다가, 어느새 완벽히 채식인이 되어버린 한태영씨가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인터뷰의 취지를 잘 살리기 위해서, 인터뷰는 대치동에 있는 채식뷔페인 ‘뉴스타트 채식 레스토랑’에서 진행되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서울시립대 통계학과에 다니고 있는 한태영(25) 이라고 합니다.


채식을 한 지는 얼마나 되었어요?

100일 정도 되었어요. 1주일정도는 페스코였고 그 이후부터는 계속 비건이었어요. 그리고 비건이 되고 나서 2주정도 되어서는 생채식(익혀먹지 않는 채식)위주로 생활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몇 년은 채식한 거처럼 생각하세요. 보통 이렇게 빨리 비건으로 가는 경우는 별로 없는 편이라서요. 


비건이나 페스코가 채식인의 분류인가요?

페스코(Pesco)는 육류는 먹지 않지만 생선까지는 허용하면서 먹는 것이고, 락토-오보(Lacto-Ovo)는 유제품과 계란까지 허용하고, 그리고 저 같은 비건(Vegan)들은 모든 일체의 고기종류와 유제품과 달걀 전부를 안 먹는 완전한 채식을 하는거죠. 가죽제품도 사용 안하고 꿀까지 안 먹어야지 비건으로 치기도 해요. 보통 이정도로 나누지만 다양한 유형의 채식유형이 있을 수 있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로 채식을 결심하게 되셨나요?

건강상의 이유로 시작했어요, 채식 전에는  유기농 채소와 무항생제, 유기축산물 중심으로 먹었고,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도 되도록 먹지 않는 등 음식에 꽤 신경을 쓰는 편이였어요.  그런데 작년에 갑자기 아토피 생겨서 엄청 당황스러웠어요. 그리고 나서 정말 필사적으로 건강해지려고 노력했죠. 원래 집인 천안에 있을 때는 괜찮다가도 서울에 오면 아토피가 심해져서 학교에 다닐 수는 있을까 싶었거든요. 빨리 건강해지고 싶어서 건강관련 다큐랑 서적을 섭렵한 후, 답이 채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속적으로 채식단을 지키기 위해서는 좀 더 강력한 정신무장이 필요할 거 같아서 책을 좀 찾아봤어요. 그러던 중 피터싱어가 쓴 ‘죽음의 밥상’이라는 책을 알게 됐죠.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2부가 “양심적 잡식주의자”(채식위주의 잡식식단, 유기농산물이용)였고 3부는 “완전채식주의자들”이었죠.  그  책의 분류로 따지면 제가 “양심적 잡식주의자”였고 다음 단계가 비건이니까, 이 책을 다 읽으면 왠지 채식을 할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을 했고, 책을 다 읽고 나니 정말 그렇게 되었죠.


‘죽음의 밥상’이라는 책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신다면?
 
책에는 우리가 먹고 있는 육류, 어류 기타 생물들이 어떻게 사육되어서 우리에게 오는지, 그것이 왜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한지 실천윤리학적 측면에서 밥상을 바라보는 내용이에요. 예를 들어 닭은 A4종이 반 정도의 크기의 공간에 가둬놓고 기르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산란율이 낮아지면 2주 동안 굶기고 스트레스를 줘서 강제털갈이를 시켜버린대요. 그럼 그 닭들이 다시 알을 낳기 시작하고 산란율이 높아진대요. 닭뿐만이 아니고 소나 돼지도 인공수정에 의해 태어나서 평생 동안 더럽고 비좁은 공간에서 최소한으로 움직이면서 항생제랑 성장촉진제가 듬뿍 들어가 있는 사료를 먹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죠.  젖소 같은 경우에는 아예 우유를 먹으려고 우리가 작정하고 인공수정을 시키는 거잖아요. 너무 잔인해요. 사람이 그렇게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인간도 지구상의 한 종의 생명일 뿐인데, 다른 종의 생명을 그렇게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지 않나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듯이 그 동물도 인간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책에는 육식이 환경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도 잘 나와 있어요. 가축을 사육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양의 물이 들어요. 통계상으로 양상추 1kg를 키우는데 57L의 물이 든대요. 그런데 소고기 1kg를 만들기 위해서는 15550L의 물이 든대요. 상상이 가시나요? 그리고 분뇨처리의 문제도 역시 무시할 수 없어요. 그리고 육식은 지구 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이에요. 그리고 소는 트림과 배설만으로도 엄청난 메탄가스를 만들어요. 거기다가 가축농장을 만드느냐고 산림이 벌채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합니다. 소, 돼지들이 먹는 엄청난 양의 곡물은 기회비용측면으로 볼 때도 최악이에요. 그 곡물이면 지구상에 굶주리는 사람은 없어지거든요.

예전에는 채식을 하지 않았지만 유기농 식품을 먹었던 이유는, 몸에 건강하기도 하지만 환경보호와 동물복지에 대한 실천적 측면도 있었거든요. 유기축산물을 먹는 다면 전 생명을 충분히 존중한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건 제 착각일 뿐이었어요. 육식이 제가 생각하는 생명윤리에도 어긋나는데다가, 환경까지 망친다니까 채식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유기농 채소와 과일로위주로 채식을 먹고 있어요. 건강도 챙길 수 있고, 제가 기존에 갖고 있던 환경보호나 생명에 대한 신념에도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기쁘게 실천하고 있어요.


채식을 시작한지 1주일만에 비건이 되셨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렇게 완전한 채식을 하는것이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채식모임에 처음 나가서 놀랐던 것이 제가 쉽게 비건으로 전향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다 비건일줄 알았어요. 그런데 페스코나 락토도 많았고 생각보다는 비건이 많지는 않았어요. 사회생활 하는데도 불편한 점이 있어서 비건으로 못 바꾸는 분도 보이고 우유나 계란을 좋아해서 비건을 택하지 않은 분들도 있고, 비건 생활하다가 락토로 전향한 분도 있고 그렇더군요. 저는 본격적인 채식 하기 전에도 채식위주인 식단을 가지고 있었고,  고기 자체에 전혀 욕심이 없는 편이라서 비교적 쉽게 비건이 된거 같아요. 그리고 예전부터 제가 먹을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스스로 구분해왔거든요.  예전에는 그것이 예전에는 유기농과 비유기농의 구분이었고, 지금은 채식과 육식이에요. 그러한 평소의 식습관이 빨리 비건이 된 비결인 것 같아요.


정말 고기가 ‘전혀’ 먹고 싶지 않나요?

먹고 싶은데 참는 것이 아니라 먹기 싫어서 먹지 않는 거예요. 고기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찝찝해서 싫거든요. 죽은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아요. 생명력이 느껴지는 채소가 훨씬 맛있어요. 그리고 채식을 하고 나서 더 채소가 가지는 고유한 맛을 알게 되어서 기뻐요.   

더구나 지금 집에서는 대부분 불에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는 ‘생채식’을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먹으면 배고프거나 허전하지 않나요? 또 영양적인 불균형이 생기지 않을까요?

채소를 정말 많이 먹기 때문에 배고프지 않아요. 생채식과 달리 화식은 불을 가하기 때문에 생명체가 가지고 있던 효소가 파괴되고 우리가 받아들이기 더 힘든 형태로 영양소가 변성이 돼요. 그래서 우리 몸이 영양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소화하는데 에너지도 많이 소모돼요. 그런데 저는 생채식을 하니까 영양소 온전히 섭취할 수 있고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도 줄일 수 있죠. 그리고 완전 채식을 하면 영양이 불균형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잘 짜여진 채식단은 육식보다 훨씬 건강에 좋아요. 많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백질은 사실 채소에도 충분히 들어있어요.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백질을 과잉 섭취하고 있거든요? 예전에도 고기를 별로 안 좋아했지만 단백질 섭취를 위해서 먹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책을 읽어본 바로는 채소만 먹어도 영양소가 충분히 들어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젠 그런 강박에서 자유로워졌죠. 전 잘 짜여진 생채식으로 먹고 있기 때문에 하루에 한, 두끼 정도만 먹어도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단군신화에는 100일 동안 쑥, 마늘 먹어서 사람이 되었다는 곰의 이야기도 있잖아요. 100일동안 채식을 해봤는데 몸이 많이 좋아졌나요?

일단 아토피가 예전보다 확실히 좋아졌어요. 물론 피가 다 바뀌려면 시간이 걸려서 완전히 나은건 아니지만 가장 공기가 안 좋은 서울에서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으니 성공적이죠. 그리고 몸이 정말 가볍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좋고, 얼굴에 생기는 피부 트러블도 채식을 한 이후에는 안 나서 신경 쓸 일이 없어 좋더라고요. 그리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좀 마음이 편해지고 여유가 생겼어요. 마치 초식동물처럼 성격도 왠지 온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또 욕심이 줄어들었어요. 예를 들면 정말 사고 싶은 가죽 가방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름답지도 멋지지도 않고 그냥 동물 껍데기로 보여요.


채식을 하면서 몸은 좋아지긴 하겠지만, 사실 채식인이 비주류잖아요. 사람들의 눈치도 좀 보이고... 채식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제약받거나 힘든 점은 없나요?

저는 좀 특별한 케이스라서 별로 힘든 점이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예전부터 저를 이것저것 ‘가리는 애’로 인식을 하고 있었어요. 채식을 한다고 하니까 아는 동생 하나는 “누나 진짜 잘 어울려요!!” 이런 말도 하더라구요.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채식을 한다는 것을 한발 숙이고 들어가는데 저는 전혀 그럴 이유가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과 밥 먹을 일이 있으면 학교 후문 쪽에 채식 식당이 몇 개 있어서, 그곳에서 먹으면 되니까 주변 환경여건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저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채식하는 것이 유독 힘든 상황이라고 이야기해요. 다른 나라에서는 채식을 선택으로 존중해주기 때문에 괜찮지만, 우리나라에서 채식을 하려면 좀 필사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니까 좀 이상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해요.


채식 덕후로선 꽤 괜찮은 조건이었네요. 그런데 채식은 보통 맛없다는 편견이 있잖아요. 맛있는 채식을 할 수는 없을까요?

나물 같은 것도 맛있고, 아침에 일어나서 상쾌하게 과일 먹으면 맛있지 않나요? 우리 조상들이 먹던 식단이 대부분 채식 식단이잖아요. 생채식은 일반 사람들에겐 좀 힘들지 몰라도, 단순하게 채식만 먹는 것은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빔밥도 채식이고, 된장찌개도 채식이잖아요. 그런데 정말 맛있잖아요. 고기육수가 아니라 채소나 해조류로도 충분히 맛있게 찌개나 국을 끓이는 것이 가능해요. 외식문화가 지나치게 육식위주로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채식단이 더 소외 받고 맛없다는 편견이 생긴 거 같아요.


채식이 완전 체질에 맞으신 것 같아요. 본인이 채식을 하면서 깨달으신 점이나, 또는 느낀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인간은 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위해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채식하면서 제가 다른 생명을 해치치 않고서도, 더 만족하면서 살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 같아요. 아까 말했다시피 소비에 대한 욕심도 줄어들었어요. 저는 소비사회에서 ‘내가 어떤걸 사느냐’가 저 자신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채식을 하면서 언행일치가 되는 것 같아서 뿌듯하고 자존감이 더 높아졌어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고 있는 고함20 독자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장 채식을 오늘부터 하세요!"라고 한다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우리가 어떤 것을 소비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먹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장식 사육으로 어떻게 동물들이 고통 받고 있는지, 사람들이 고기를 먹음으로서 얼마나 큰 환경적 부담을 지고 있는지 그 과정을 제대로 안다면 채식인구는 자연히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을 입는지, 소유하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큼 자신의 몸을 이루는 음식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먹은 것이 우리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채식은 제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았어요. 환경적, 윤리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정서적, 육체적 건강에도 이로웠고요. 채식은 포기하는 게 아니라 더 얻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채식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루 중 한 끼나, 일주일에 한번 채식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채식 덕후 한태영씨는 단순히 채식 먹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채식 사랑의 기반을 환경보호와 생명윤리에 두고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또한 과거에는 유기농산물이나 유기축산물을 먹던 유기농 덕후였던 그녀가, 비건이 되면서 채식 덕후로 발전한 것은 일관성 있어 보였다. 다른 덕후 들처럼 한가지 주제나 사물에 열중하고 공부한 것은 똑같았다. 다만 채식 덕후는 빠져들었던 주제가, 우리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건강한 식습관’이었던 것이다.

채식 덕후가 다른 덕후들과 비교해서 특별한 점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즐기고 사랑해서 환경이 좋아지고 다른 동물들이 자유롭게 살기 바라는 ‘사회적인 지향점’이 있는 덕후였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런 덕후들은 좀 더 많아져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