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하는 발레 공연은 무엇일까요? 올해 2월, 레인보우가 MBC ‘아이돌스타 육상-수영선수권대회’에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이것’인데요. 바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하 싱크로)입니다. 수중발레라고도 하죠. 싱크로는 음악에 맞춰 물 속에서 여러 가지 동작을 하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싱크로를 하면 수영은 기본이고, 수구(물 속에서 하는 배구), 다이빙, 잠수까지 할 수 있을 만큼, 싱크로는 복합적인 기술을 요하는 운동입니다. 다시 말해서 물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운동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번에 고함20이 우리나라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국가대표 박현선 선수를 만나고 왔습니다. 인터뷰에 오기 전에도 운동을 하고 왔다는 그녀는 체대생의 느낌보다 여대생의 느낌이 강하게 풍기더군요. 그녀가 하고 있는 운동인 싱크로에 대해서, 그리고 ‘20대’, ‘대학생’이외에 ‘국가대표 운동선수’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 들려드릴게요. 



자기 소개

- 소속은 연세대학교. 학교소속으로 되어있어요 싱크로나이즈 스위밍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있고요.


운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했어요. (다들 그렇게 일찍 시작하나요?) 네, 일찍 시작하는 게 좋아요. 물에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요. ‘물을 잡는다.’고 표현하는데 연륜이 쌓일수록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물에 들어 간지 얼마나 오래됐는지에 따라서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싱크로 한 사람들이 많이 선수를 하죠.


싱크로를 시작하게 된 계기

- 단순하게 어머니께서 시키셔서 시작했지요. 다섯 살 때부터 수영을 했는데 이 때는 어머니께서 선수로 시키려는 목적보다는 취미로 시키셨죠. 유아스포츠단으로 시작해서 수영을 조금 했죠. 중간에 수영도 안 하고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노는 기간이 있었어요. 발레 피아노 미술도 하고 여자애들 다 하는 거 했죠.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운동선수를 시키고 싶으셔서 리듬체조를 알아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 리듬체조 선수들은 부상이 잦고 심각하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래서 부상이 없는 운동을 찾다가 싱크로를 하게 되었죠. 너무 어릴 때 시작해서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는 개념보다는 그런 거 전혀 없이 수영장 데려가서 하게 되었죠. 원래 수영은 할 줄 알았으니까.


어머니께서 정해준 길에 대해서 혼란이나 불만은 없었는지

- 그런 건 없었어요. 다행히 적성에 맞았어요. 너무 어렸을 때 시작해서 그런지 점수도 잘 나왔어요. 성적이 좋다보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그냥 ‘아, 이건 내가 가야할 길이구나.’ 라고 생각했죠. 싱크로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나이 또래에서 일등하기도 쉬웠고요. 그러다 보니 내가 잘하는 것, 적성에 맞는 것이 싱크로구나 라고 느꼈죠.


동생하고 듀엣 연기를 많이 하시는데 편한 점, 불편한 점

- 일단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과 친하다는 거죠. 아무리 친해도 남은 남인데 동생은 가족이니까 편하죠. 싱크로 운동할 때 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을 함께 하니까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고 해서 호흡을 맞추는 데도 편해요. 너무 친하다 보니까 생기는 문제가 있긴 한데요. 선후배를 떠나서 내가 언니니까 내 말을 들었으면 좋겠는데 안 들을 때, 이럴 때 빼고는 거의 부딪히는 일 없어요. (언니지만 선배로서 강요하는 부분은 없나 봐요?) 그런 건 없어요. 둘이 같은 일을 가지고 의견 충돌을 할 땐 "내가 언니니까 말 들어." 이런 게 아니라 이게 맞다고 타이르듯 설득하는 편이죠. 그럼 동생이 따라와주죠. 평소에는 많이 동생이 저를 따라줘요.


운동할 때 힘든 점

- 굉장히 많은데요.(하하) 우선 체력적인 부분이 제일 힘들어요. 싱크로 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선수들이 다 그렇겠지만요. 저희는 특히 더 중요해요. 작품을 하고 다른 걸 할 때도요. 물에 떠있는 자체가 우선 체력 소모가 많이 되거든요. 그러면서 동시에 작품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죠. 이를 위해서 체력 훈련을 하는데요. 이때가 제일 힘들어요. 그리고 저희는 2년을 쉬었잖아요. 동생도 수능 준비하느라 같이 쉬었어요. 쉬니까 체력이 많이 떨어지죠. 기술 같은 건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연습하고 느낌만 잘 잡으면 돌아오는데 체력은 그냥 끝이에요. 없는 것으로 되어버리기 때문에 체력 되찾기 위해 힘들었죠. 싱크로(듀엣 연기)가 동작을 맞춰가는 운동이잖아요. 사람이니까 오늘 완벽하게 호흡이 맞았어도 그 다음날 되면 안 맞고. 작품을 하는 내내 3분 넘는 시간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척척 맞아야 되니까요. 이건 이 박자에, 각도에, 수위에 이런 하나하나를 다 생각하면서 연기를 해야 하니까 이런 게 힘들죠.

슬럼프

- 딱히 슬럼프라고 말할 정도로 좌절스러웠던 때는 없었어요. 대학 입시 때문에 잠깐 운동을 그만 둔거지 운동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없었어요. 비인기종목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경쟁상대가 많지 않다보니까, 상대와 나를 비교하게 되면서 생기는 열등감이 없으니까요. 그냥 제 목표만을 바라보면서 운동하는 거라서 슬럼프라 할 만한 시기는 없었어요.


운동하면서 힘든 순간이 있잖아요. 이 때마다 나를 움직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 대학 입시 때문에 잠깐 운동을 그만뒀었는데요.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운동을 쉬니까 체력이나 감각이 떨어져서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체력이 떨어져서요. 그런데도 운동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올림픽이랑 아시안 게임을 뛰어보고 싶어서였어요. 역시 저에게는 ‘목표’의식이 저를 존재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고, 지금도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운동을 10년 넘게 했는데 내가 노력만 하면 대표가 돼서 대회에 출전할 기회가 오는데 더 나이 들고 기회가 지나간 다음에 후회하기 전에 도전해보려는 의식이 강했죠. 그래서 다시 하게 됐고, 운동이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올림픽이라는 목표를 보고 꾹 참고 다시 나아가는 거죠.


오늘도 운동하고 오셨는데 보통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 학교 다닐 때는 오전에 학교 수업 들으러 갔다가 운동하고 와요. 학교에서 운동하는 건 아니고 태릉선수촌에서 운동해요. 지금 같이 학교 안 다닐 때는 오전 11시쯤 운동하러 가죠. 아침 먹고 집에 있다가 네시 반에서 다섯 시 정도 까지 운동하고 그 이후는 자유시간이에요. 그러니까 보통 연습량이 체력 훈련 포함해서 여섯 시간 정도 되겠죠. 체력 훈련 안 하는 날은 한 네 시간 정도요.


싱크로 여건, 열악한가요.

- 굉장히 많이 열악했어요. (과거형인가요?) 네, 지금도 그렇게 좋진 않지만 전보다는 나아졌어요. 단적인 예로 8명 팀 결성을 안 해줘요. 연맹에서 해줘야 되는데 성적이 안 좋고 하다 보니 팀 구성 조차 해주지 않아요. 여러 명이서 하다 보니 시끄럽고 해서 그래요. 이런 면으로 봤을 때는 지금까지도 지원을 안 해주니까 좋지 않고요. 작년부터 많이 지원을 해주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세계대회도 다섯 개 정도 나갔어요. 올해는 더 많은 지원이 있을 것 같아요. 예산도 늘었다고 해요. (왜 갑자기 많은 지원을 해준다고 생각하세요?) 모르겠어요. 아마도 성적이 잘 나와서 그런 것 같아요. 외국 대회는 아무래도 성적이 중요한데 잘 나오고 그러니까 지원을 더 해주시려고 하는 것 같아요.


팬클럽이 있나요

- 없어요. 경기 때마다 찾아오는 팬도 없고요. 사실상 싱크로 인기는 낮은 정도가 아니라 없다고 생각해요. 인기가 있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네요. 큰 경기 직후에만 미니홈피에 와서 응원글 남겨주거나 일촌 신청을 하거나 하고요. 얼마 전 있었던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같은 그런 경기요.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전혀 없어요.

메달의 색깔 차이에 따라 언론의 관심도 달라지고 이에 따라 국민들의 관심도도 크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 사실 전 큰 관심을 받고 싶지는 않아요. 큰 관심을 받을 만큼 실력이 좋은 게 아니니까요. 국내에서는 1등이니까 국가대표를 하겠지만, 세계를 두고 봤을 때 썩 좋은 성적은 아니거든요. 세계 대회 나가면 보통 10등 안팎이에요. 그래서 그런 관심을 받는 게 조금 부담스러워요. 박태환 선수나 김연아 선수처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운동을 잘 하는 선수라면 물론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게 당연한 건데, 그렇지 않은 선수들에게 스포트라이트는 바보가 아닌 이상 언론이 만들어 냈다는 걸 알거든요. 거기에 제가 끼고 싶지 않은 거예요.

금메달을 딴 선수는 잘 했으니까 칭찬을 받고 주목을 받는 건 당연하잖아요. 노력 여하에 따라 메달 색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안타까운 건 3위에게도 박수쳐주고 격려해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는 점이에요. 건전한 스포츠의 정신을 대중이 망가트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해요. 순위에 집착하는 모습이 매우 불편해요. 물론 메달을 따면 좋죠. 국위선양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메달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요. 올림픽 같은 경우에 ‘참가’에 의의를 두던 때도 있었는데. 순위와 성적에 연연하는 한국 사회를 이런 부분에서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이번 아시안 게임 끝나고, 손연재 선수를 욕하는 사람들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요. 다소 감정적으로 얘기하자면, 우선 나라의 대표가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대표가 돼서 아시안 게임에 나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메달을 따온 사람한테 무슨 스포트라이트가 이렇게나 비춰지냐.”며 욕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못한 것도 아니고 메달도 땄고, 아시안 게임 사상 첫 메달이었다는데. 세계 1등 아니면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보면 축구는 세계에서 몇 등이나 한다고. 아시안 컵에서 3등한 것과 아시안 게임에서 3등한 게 같은데.


운동선수는 대부분 10대, 어렸을 때부터 많이 시작하는데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20대는 ‘내려간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20대 운동선수에게 도전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  제가 생각했을 때 20대의 운동선수들이 운동하는 이유는 딱 하나라고 봐요. 자신이 목표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10대 때는 본인이 좋아서 했을 수도 있고, 대학을 가려고 시작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운동을 잘 해서 돈을 벌기 위함일 수도 있어요. 20대의 운동선수라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제 경우를 들어 말해볼게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종목이 아니고 인기가 많은 종목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종목도 아닌데, 20대 중반의 나이에도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제 만족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목표하는 게 있기 때문에요. 지금은 “아, 운동이 너무 좋아요.”라고 하진 않아요. 단지 선수로서 저의 최종 목표, 올림픽에 나가는 것을 위해서 운동하는 거죠.

사실 도전이라는 단어는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여태까지 정말 운동이 좋아서 해왔거든요. 덧붙이자면 싱크로는 내가 잘하는 일이었고 그래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죠.


올림픽 끝나고 은퇴, 일반적 사람들을 보면 은퇴는 보통 중년의 나이에 하는데, 이른 나이에 하던 일을 접는 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 저 같은 경우는 전부터 생각해왔던 거라서 큰 충격이 있거나 하진 않아요. 운동을 그만두고 나면, 하고 싶은 게 정말 많거든요. 해야 할 일도 많고요. 한 번도 은퇴하고 난 뭘 하나라는 고민은 해 본적이 없어요.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지금 계획으로는 ‘이 일’을 계속 할 생각이에요. 선수로서 은퇴를 하는 거지, 제가 평생 몸 담고 있을 곳은 싱크로라서 그만 둔다는 느낌은 크지 않아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은퇴의 개념은 한 순간에 일을 털어버리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건데, 제가 앞두고 있는 은퇴는 그런 게 아니라서요. 어떻게 보면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후 계획

- 우선 졸업을 해야겠죠. 아마 1~2년은 더 다녀야 할 거예요. 은퇴하고 2013년 정도까지 학교를 다니고요.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서 유학을 갈 생각이 있어요. 학위를 따지 않더라도, 어학연수의 개념으로 갔다가. 공부를 집중해서 할 생각이에요. 그 전까지 제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지 탐색도 많이 해야겠죠. 그리고 결혼도 하고 나면, 싱크로 하기를 꿈꾸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코치라는 개념보다 클럽이나 학원 정도의 느낌이요.

20대의 ‘운동선수’를 만나야 한다고 해서 준비해갔던 진부한 질문들에 대한 예상 답변은 상큼하게 깨졌습니다. 기존 운동선수 인터뷰를 보면 가장 힘들었던 순간 혹은 슬럼프에 대한 얘기가 있기 마련이었죠. 시련을 딛고 일어나는 극적인 성공 스토리처럼요. 그런데 딱히 슬럼프라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띵 하더군요. 운동선수라는 걸 떠나서 ‘사람에게는 누구나 반드시 힘든 순간이 있었을거다.’라고 단정지어 생각했던 것을 돌이켜보게 됐어요. 살면서 한 번쯤은 실패도 해봐야하고, 실패를 통해서 꼭 뭘 얻고, 깨달아야만 한다는 ‘달갑지 않은 어른들의 충고’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서요. 고난, 역경, 시련, 실패 이런거 없이도 자신을 다잡고 성장시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인터뷰였습니다. 박현선 선수의 경우에는 ‘목표의식’이 그녀의 성장 원동력이었죠. 고함20 독자 여러분들의 '그것'은 어떤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