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창(萬化方暢)'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봄날이 되어 만물이 소생한다는 뜻인데 바야흐로 100년 만의 추위였다는 지난 겨울이 드디어 가고 따뜻한 봄기운이 기지개를 켜게 하는 요즘 가장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아닐까 싶다. 겨우내 얼었던 한강물은 물론이요, 아파트 담벼락 사이사이에도 어찌 피어났는지 모를 개나리가 만개하니, 이제는 찌뿌듯한 몸을 일으켜 나들이를 즐길 시간이 온 것이다.
 
서울은 북한산과 청계산, 관악산이 솥발처럼 하늘을 떠받치고, 태백정맥의 한 줄기에서 나온 한강이 굽이쳐 흐르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도시다. 주말 아침 북한산으로 가는 지하철 4호선과 청계산의 3호선, 관악산의 2호선을 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을 만끽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강은 어떨까?


서울 시민의 휴식처로 한강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대다수 서울시민들의 한강 쓰임새는 지극히 단순하다. 어찌 보면 한강은 <괴물>이 나올 만큼 역동적인 곳이자 공사 중인 구리암사대교, 마곡대교를 제외하고도 28개(잠수교 미포함)의 교량을 갖고 있는 ‘버라이어티’한 공간인데 우리는 단순히 강을 건너고 다시 건너는 ‘왕래’하는 것에 그치진 않았을까?

실연당한 뒤 한강에서 친구와 새우과자 안주에 소주를 먹고(물론 드라마와 같이 투신을 생각하진 않는다), 또 한강에서 즐겁게 커플자전거를 타며 행복을 만끽하기도 했던 기자에겐 한강을 좀 더 ‘친숙하게’ 활용할 방법이 필요했다. 바로 자전거였다.


자전거를 타며 한강을 생각하다


한강은 정체된 적이 없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한강변을 달리는 자전거는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한강 북단과 남단에 사이 좋게 정체되어 있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바라보며 달리는 맛 또한 일품이다. ‘문명의 이기’의 집합체인 자동차는 정체되어있고 자유로운 두발이 페달을 밟아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

그렇게 역동하는 한강을 관리 감독하고, 그렇기에 한강에 ‘서울시 한강사업본부’까지 운영할 수 있는 주체인 서울시는 3년 전인 2008년 ‘자전거 이용 활성화 종합계획’을 발표, ‘수도의 외관과 시민의 일상까지 일변시킬 꿈의 마스터플랜’ 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야심찬 행보를 시작하였다. 당초 계획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2012년까지 완비하고 자전거를 통한 중장거리 출퇴근을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시가 예상한 출퇴근 시 자전거의 수송 분담률은 2010년경 4.4%, 최종 목표는 2020년 까지 10%였다.

그렇다면 자전거 도로망 확충 ‘완비’에 채 1년을 남기지 않은 2011년. 서울시 출퇴근 교통 수송 분담률은 어떤 모습일까? 국토해양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서울시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은 63.5%으로 버스 27.8%, 지하철 35.2%에 이르고 있다. 승용차는 25.9%로 3위, 택시는 6.2%로 4위를 차지했는데 어찌된 것인지 자전거는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 출퇴근 비율은 도보, 오토바이 등 이륜차 등과 함께 기타로 분류되었고 기타 합계 4.9%로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렵지만 애당초 서울시의 목표에는 못 미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강을 이야기하며 자전거 출퇴근률을 말하는 것은 한강을 활용한 서울시의 미래 교통제도 개선에 자전거가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강이 서울시 도시발전계획의 중심축이니 ‘한강을 가르는 자전거’는 미래 교통발전계획의 중심축이 된다. 즉, 자전거의 경제성과 친환경성을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자전거가 이미 파리, 런던, 뉴욕 등 선진국 도시에서는 교통운송수단 자체로서 도시발전 계획과 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소위 ‘세계 5대 도시’로 가려는 서울 역시 이를 간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념 학습’없는 ‘단순 암기식’의 서울시 자전거 정책

서울시에 자전거 전담 부서가 생기고 이에 따라 자전거 관련 정책을 내놓기 시작한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 동안 쏟아 부은 예산이 1300억 원에 이른다고 하니 서울시가 자전거에 들인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교통 분야에서 특히 자전거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오세훈 시장이 직접 유럽 각지의 자전거 선진국을 돌며 자전거 정책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비난보단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과연 서울시가 “왜 서울시에 자전거 도로를 설치해야 하고 이를 통해 어떤 편의를 시민들에게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다. 최소한 서울시 내의 각 자치구마다 자전거 도로 형태가 들쭉날쭉 하다는 사실은 서울을 ‘자전거 특별시’로 만들려는 최소한의 시(市)내 행정적 협조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서울시의회 박기열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2007년~2009년)간 자전거 도로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 99명으로, 2007년 25명, 2008년에 29명, 2009년 45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역설적으로 자전거 도로가 많이 지어질수록 사망자는 증가한다는 것인데, 이는 ‘자전거 도로망 확충’이라는 ‘하드웨어’에 집중한 서울시가 ‘시민의식 개선, 자전거 도로 안전장치 및 표지판 확보, 자전거 안전교육 실시’ 등의 ‘소프트웨어’ 보급에 소홀했다는 뜻이 된다.

잘못 설계된 자전거 도로는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무기나 다름없다. 서울시에는 차도의 가장자리에 페인트로 선을 그어 자전거 도로를 만든 케이스, 인도의 중앙에 선을 그어 자전거 도로를 만든 케이스, 인도에 우레탄 소재의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든 케이스, 차도에 적절한 바리케이트를 설치한 뒤 자전거 도로를 만든 케이스, 남는(?) 보도블럭으로 자전거 도로를 만든 케이스 등등 25개 구마다 통일되지 않은 자전거 도로로 인해 사고 위험을 높이고 있다. 자전거를 레저용이 아닌 출퇴근 용도로 활용하려면 시내 자전거 도로망의 일관성은 필수적이다.

ⓒ한국일보
(서울 영등포구의 영등포 구청 사거리의 자전거도로.
끊어진 자전거 도로는 주행 자체를 애초에 불가능하게 하고,
무리한 주행으로 인해 대형사고를 유발하는 원인이다)
  

자전거 정책에는 특히 ‘철학’이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드디어 서울시의 '공공 자전거' 사업이 시작되었다 여의도와 상암동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교차로 등에 43곳의 보관소가 설치되고 400대의 자전거가 비치되었다. 과거 비슷한 사업을 실시했던 대전, 창원, 고양시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전거의 핸들에 스마트 단말기를 장착시켜 이를 통해 대여 시간, 주행 속도와 거리, 소비 열량 등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상암동에는 자전거의 유지 및 보수에 필요한 장비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센터를 설치해 이용객들의 불편을 감소시켰다.

그러나 서울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정책에 대한 서울시의 ‘철학’ 부재를 탓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실제로 자전거를 출퇴근 용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부 한강변의 자전거 전용 도로를 제외하면 애써 늘린 자전거 도로는 점차 그 활용성을 잃어가고 있다. 자전거 도로에는 자전거가 없고 대신 조깅하는 아저씨와 ‘파워워킹’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을 뿐이다.   

서울시 자전거 도로는 압도적으로(95%) 보행자 겸용 도로가 많다. 반면 파리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차도에 자전거 도로를 함께 배치한다. 자전거를 자동차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보행자 겸용 도로의 문제점은 가뜩이나 노점상이 많은 서울시내의 인도에 보행공간이 더 협소해진다는 것과 인도를 침범하는 자전거로 인해 보행자의 안전사고가 증가한다는 것에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응당 보행속도보다 빨라야 할 자전거의 주행 속도가 보행속도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는 점이다. 즉 보행자 겸용 도로에 설치된 자전거 도로로는 서울시가 바라는 ‘출퇴근용’ 자전거 도로의 효과를 내긴 힘들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새롭게 확충되는 시내의 자전거전용도로는 차도로 내려와 대부분 기존 차로의 폭을 줄여 만드는 '다이어트도로' 방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번엔 오히려 자동차와 자전거 간의 사고율을 높이기 시작했다.

즉, 인도에 만들 수도, 차도에 만들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도로’라는 자동차와 보행자로만 이루어졌던 공간에 자전거를 추가하려 했다면 마땅히 자동차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자전거 도로 조성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충분히 홍보하고 토론하여 사회적 공감대를 얻은 뒤 추진했어야 한다. ‘철학’이 없는 정책은 영혼을 잃은 인간과 같아 시민들의 불편만 가중시킬 뿐이다. 가뜩이나 정체가 심한 도로를 줄여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대니 버스 중앙 차로제로 인해 중앙을 빼앗기고 자전거 도로로 인해 사이드의 차선을 빼앗기게 된 자동차 운전자들은 불만을 토로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2월 강남구 잠원동에선 자전거 도로가 설치 두 달 만에 주민 민원으로 철거된 바 있다. 당시 설치되었던 경계석과 안전 설비 등은 재활용이 불가능 할 정도라 하니 두 달 만에 수억 원을 공중으로 날리는 정책이 된 것이다.

ⓒ신승경

오세훈 시장의 역점사업 중 하나인 자전거 도로망 구축은 2010년 212km까지 증가하였다. 이로서 서울시내 전체 자전거 도로 길이는 802㎞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2009년과 2010년 두 해에만 500억 원의 예산을 투자해 무려 102㎞를 확충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전거 길에 대한 비판이 많다. 방향은 맞지만 불편을 호소하는 의견이 많기 때문에 올해와 내년에 예정됐던 설치 물량을 많이 줄이겠다"며 정책 수정의 뜻을 나타낸 바 있다. ‘철학’의 부재는 대개 이런 식으로 귀결된다.


비슷한 듯 다른, 파리의 Velib와 서울의 공공자전거

당초 프랑스 파리의 Velib를 모티브로 삼았던 서울시 공공자전거 사업은 그런 점에서 ‘철학’이 부재된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참고로 파리의 한 지인(知人)은 Velib의 성공요인으로 첫째, 400m 반경에 최소 1개의 정거장이 위치해 용이한 접근성. 둘째, 30분 이내에 자전거를 반납할 시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경제성. 셋째, 자전거 이용이 생활화 된 도시 분위기와 시민 사회 의식. 넷째, 젊은 층의 활발한 참여 등을 꼽았다.

서울 면적의 1/6 이지만 지하철 16호선까지 갖춰진 촘촘한 파리의 교통망, 자전거를 자동차로 인식하고 자전거 운전자를 존중하는 시민 의식, 고층 빌딩이 적어 도심 지역 인구가 적은 도시 특성,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멋을 중시하는 문화 등 예술과 낭만의 도시라는 프랑스 파리의 도시 문화와 서울의 문화는 분명 다른 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실용성을 추구하는 문화는 고가의 장비 없이도 자전거가 보급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Velib를 이용하면 ‘쪽팔리다’라는 의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Velib 역시 사업 3년차에 접어들면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여전히 협소하고 부족한 파리 시내의 자전거 도로망, 이용객이 늘어나면서 각 정거장 마다 고르게 분산되지 않는 자전거 등은 Velib가 교통수단으로 자리잡기 위해 개선시켜야 할 과제다. 그러므로 Velib에서 배울 점은 배우고,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정책은 과감히 바꿀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Velib는 보증금 150 유로를 예치하고 1년 사용료 29 유로를 지불하면 30분간 무료로 자전거를 활용하게 된다. (30분 이후부터 추가 요금 발생) 그러나 몽마르트 언덕과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무료 대여 시간을 45분으로 설정해준다. 언덕이 많은 서울의 특성상 참고할 만한 유연성이다.

(벨리브는 도심 곳곳으로 쉽게 도달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리고 자전거 도로가 부족하거나 부실하고 도시 면적이 크며 도심간 거리가 있는 서울에선 근거리 연결형 자전거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 대중교통과 목적지를 연결하는 근거리에 자전거와 정거장을 집중배치하고 안전교육 및 안전 기반 시설을 확충한다면 자전거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도 점점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 특별시’의 꿈이 복잡한 도시 '서울'에서 이루어지기를!

자전거 출퇴근률을 10%까지 높여 대기 오염, 교통 체증, 친환경 녹색성장을 이뤄내겠다는 서울시 공공 자전거 대여사업은 마땅히 지속되어야 할 사업이자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또한 반드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대전제로 한 정책적 판단이 수반되어야 한다.

2011년 서울시의 자전거 활성화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78% 감소하였다고 한다. 제발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이거나 ‘추진력을 얻기 위해’ 다리를 굽힌 것이라면 좋겠다. 아울러 서울시 교통 체계에 맞는 정책을 강구해 진정한 활용성 높은 ‘서울시 공공자전거’로 탄생하길 바란다.

서울시는 스스로 밝혔던 ‘과도하게 혼잡한 도시 상황’에서는 역시 자전거가 그 해답이 될 수 밖에 없다. 머지않아 자전거 바구니에 책가방을 넣고 여유롭게 출근하는 모습을 파리가 아닌 서울에서 보게 되길, 멈추지 않고 흐르는 한강을 보며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