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리나라의 20대들은 비록 비자발적인 형태였을지라도 - 생활기록부의 공란을 채우기 위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원치 않는 신앙 활동을 강요받았다거나, 하루 종일 봉투에 풀만 붙이다 왔는데 알고 보니 그걸 갖다 파는 거더라, 하는 식의 어이없는 경험 하나쯤은 다들 갖고 있는 것이다.

봉사활동을 하러 가면서도 여기가 도대체 뭐하는 곳인가, 싶은 찜찜한 단체들도 많이 있는 상황에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봉사활동은 서울시에서 확실히 관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수한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작년부터 서울시와 서울시자원봉사센터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

아, 그러나 이거 내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는지 점점 봉사활동을 하면 할수록 봉사의 참뜻을 알아가기는커녕 ‘이건 돈 받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불순한 생각이 든다. 시에서 직접 나서서 봉사활동 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과 인력이 부족한 초, 중, 고등학교를 연결시켜주는 데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저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하지만 ‘돈 받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 이유는, 꼭 내가 배짱 좋게 아르바이트도 안하고 빌빌거리면서 만날 돈 없다 돈 없다 하는 구질구질한 대학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봉사활동 업무 자체의 성격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한테 돈을 주라는 말이 아니고 돈 주고 프로를 고용하라는 것이다. 


교육 봉사활동 현장 (기사 내용과 무관함) @ 환경일보


내가 봉사활동을 하는 초등학교에서는 4~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에 수학, 영어, 국어 교과목 보충학습을 실시한다. 이 방과 후 교실에서 보조 교사 노릇을 하는 것이 내 일인데, 일주일에 한 번 4시간을 한다. 보조 교사라니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것 같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아이들 중에는 교과과정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선생님 한 분으로는 모든 아이들의 각기 다른 학습 수준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보조 교사 둘 중 한 명만 빠져도 아이들을 잠깐씩이라도 모두 봐 주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리고, 자리에 앉아있도록 통제하는 것에만 온 힘을 쏟게 된다. 

“봉사활동 선생님이 그래도 두 분씩 오시니까 수업이 좀 되는 것 같아요, 정말 고마워요.”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한테 이런 말을 듣자니, 봉사활동의 보람이 이런 데 있나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해결 방법이 너무 눈에 빤한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방과 후 선생님을 좀 더 많이 고용해서  수준별로 수를 잘게 나눠 운영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아예 그냥 정교사를 더 많이 뽑아서 교사 당 학생 수를 줄여, 처음부터 교과목 보충이 필요 없도록 정규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더 많이 봐줄 수 있도록 할 수는 없는 걸까?

역시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한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A씨(대학생, 23)는 자신이 하는 일은 전문 인력이 필요한 일인데 아마추어인 대학생들에게 일을 떠맡긴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 초등학생 세 명에게 수학을 가르치는데, 장애 수준은 아니지만 보통 아이들과는 학습 능력에서 많이 차이가 나는 애들을 모아놓은 거에요. 애들은 흥미가 없으니까 수업 태도도 안 좋고, 저는 거기서 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프로인 학교 선생님들이 딱 붙잡고 해도 잘 안 되는 거를 제가 끙끙거리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봉사활동을 하면 할수록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 할수록, 아동 심리를 비롯한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한 일이라고 느낀다. 나와 사범대나 교대를 졸업한 ‘프로’들을 비교해볼 때, 내가 가진 장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용’밖에 없다.

봉사활동을 아무리 아름다운 수식어와 이론들로 치장해도 결국 까놓고 보면 이건 무급노동력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생활기록부 등에 점수로 환산되어 등재된 이 봉사활동 시간들은 모두 이 사회 시스템에서 나의 노동력을 봉사라는 이름 아래 돈 한 푼 안들이고 갖다 쓴 기록이다. 봉사 정신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봉사시간을 점수로 환산하여 남들 다 하는 데 나만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을 주입, 봉사활동이라는 제도에서 나오는 이득을 고스란히 시스템에서 취하게 되었다. 어리고 젊은 학생들에게 불안한 마음을 잔뜩 심어놓은 후 선심 쓰는 척 시간만 써 주면, 거기서 발생하는 노동력을 돈 한 푼 안들이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용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일들까지 봉사활동 노동력으로 커버가 가능하니 비용도 줄일 수 있고, 일석이조다. 


 이런 노동 착취 구조, 어디서 또 본 적이 있는 듯한데......? 그래, 그거! 바로 ‘인턴제’다. 학생들의 사회 경험 증진, 기업 체험을 통해 진로 선택에 적절한 도움이 되기 위해서, 라는 것이 바로 인턴제의 목적이지만, 다들 알고 있다. 인턴제는 결코 우리, 청년들을 위한 것이 아닌 기업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난해 여름 졸업한 B씨(직장인, 28)는 4학년 1학기 겨울방학에 교내 취업센터에서 소개한 기업에서 약 두 달 간 인턴활동을 한 경험을 떠올리면 지금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건실한 중소기업과 이공계 학부생의 산학연계라는 홍보와는 달리, 실제 사업장에 가서 한 일은 박스포장과 짐 나르기와 같은 단순노무에 불과했다. 그 사업장에는 비슷한 나이대의 파트타임 근로자가 있었는데, 인턴으로 활동하던 학생들과 그의 업무는 다를 것이 없었으나 임금은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인턴이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최저시급보다도 못한 돈을 주고도 합법적으로 부려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착취는 중소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나타난다. 인턴에게 정규직원과 같은 강도의 업무를 시키는 회사가 꽤 있으나 약자일 수밖에 없는 구직자의 입장에서는 입도 뻥긋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 인턴 자체가 이미 치열한 경쟁을 통한 것일 뿐더러, 인턴 근무에서 좋은 근무 태도를 보여야, 즉 고분고분해보여야 그나마 정규직으로 전환될 한 가닥 희망이나마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라도 기꺼이 나서서 몸이 부서져라 일할 대체인원은 넘쳐나므로, 오히려 기업에서는 공짜로, 혹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내 노동력을 쓰면서도 무슨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여전히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대학 졸업한 청년 백수가 넘쳐나는 이 시대, 왜 일손이 필요한 곳에 고용을 더 하지 않고 봉사활동이니 인턴제니 하는 꼼수로 커버를 치는 것인가? 분명 하나의 어엿한 일자리로 대접받아야 할 일들을 왜 한 단계 격하시켜 아마추어들이 임시적으로 하는 일로 만들어 버리는가? 비용이 절약된다는 이유 말고는 별 다른 게 없는 듯하다. 이렇게 절약되는 비용은 과연 누구의 주머니를 불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너무 잘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