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파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냥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업에 관한 뉴스를 보면 여러 노동자들이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르고 팔을 과격하게 흔들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보도화면을 접할 수 있었고, 아나운서는 대체로 “정부는 불법 파업은 용서할 수 없으며 조속히 그만둬야 한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같은 말을 했다.

신문을 봐도 (집에선 중앙일보를 보았다.)  “국가 경쟁력 흔들리게 하는 불법 파업” “불법 파업, 엄정히 대처하라” 이런 제목을 주로 접해왔으니, 파업은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므로 정말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머리가 좀 큰 후에 파업이라는 것의 정의가 무엇인줄 명확하게 알게 됐을 때, 상당히 놀라웠다. 파업 자체가 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노동3권이 보장되어있으며, 노동자에게는 법적으로 ‘당연히’ 파업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항상 파업을 하면 불법이 될까? 정말 합법적인 파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유성기업 파업은 정말 불법인가?

얼마 전 일어났던 유성기업 파업도 ‘불법’이란다. 불법이라서 공장에서 파업하고 있는 노동자들 경찰을 투입해서 싹 연행해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불법인지는 잘 모르지만 경찰이 잡아가는 것을 보니까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와 유성기업 사측이 불법파업이라고 하는 주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유성기업 사측에서 노조의 파업에 맞서 직장폐쇄(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6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노조가 계속해서 생산시설인 공장을 점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사측이 정당하게 직장폐쇄를 한 경우에는 노조가 사용자의 시설을 점거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퇴거를 요구할 수 있다. 만약 퇴거요구에 불응한 경우 퇴거불응죄가 되어서 자연히 ‘불법’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유성노조의 파업은 이미 충남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합법으로 판단한 사안이다. 유성기업 노사는 2011년 야근 없는 주간연속 2교대제와, 시급제가 아닌 월급제를 2011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이 합의의 내용이 안 지켜지자 노조가 ‘주간연속2교대’ ‘월급제’를 주장하면서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고자, 단체협약의 체결을 통하여 임금 및 기타 근로조건을 결정하려는 파업이므로 파업 목적 자체가 정당했다. 파업권을 얻는 과정 역시 정당했다. ‘주간연속 2교대제 및 월급제’ 도입 안건으로 노사 12차례 교섭했으나, 5월 13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고 그 이후 노조는 파업 찬반투표를 해서 노조원 78.2% 찬성하여 파업이 가결되는 과정도 거쳤다.

그러나 주류 언론에서는 마치 파업 자체가 불법인 양 말하고 있다. 직장 점거만이 불법에 해당되는데도 불구하고 파업의 정당한 목적마저 묻히는 현실이다. 아예 직장폐쇄의 정당성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직장폐쇄는 근로자 측의 쟁의행위에 대하여 대항적, 방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유성기업은 현대차의 개입 하에 공격적 직장폐쇄를 했다는 여론이 상당하다. 만약에 직장폐쇄가 정당하지 못하다면, 퇴거요구에 불응한 채 직장점거를 하고 있더라도 퇴거불응죄가 성립하지 않고, 합법적 직장점거로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또한 고용부에서 불법이라고 문제 삼는 것 중에 하나는 파업 전에 이루어졌던 태업이다. 그 부분에 관해서도 노조에서는 지회의 지침 자체가 없었고 준법투쟁의 하나였으며, 만약 불법이라면 사측이 임금을 왜 정상적으로 지급했느냐며 항변한다. 물론 주류 언론에서는 단순히 고용부의 입장만 이야기 해줄 뿐이다.



정부와 언론의 노조 때리기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주류언론과 경제신문들, 그리고 지상파3사와 케이블 뉴스채널은 사측의 입장과 정부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불법이란 말에 덧붙여서 그들의 파업의 정당성을 앗아가는 악의적인 기사를 계속해서 내보낸다. "유성기업 노조는 연봉 7000만원을 받는 귀족 노조" "유성기업, 열흘 이상 파업시 1조8천억 손실"
 
그러나 실제로 25년 경력자가 주·야간 풀타임으로 잔업 특근까지 해야만 7000만원을 받는 것이 가능하고, 이처럼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또 유성기업 하나 때문에 자동차 산업이 마비될 정도라면,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그만큼 대단한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7000만원 을 받는 것이 그렇게나 안 될 일인가?

그리고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측의 말을 빌려 하루 1800억원 이상, 열흘이상 파업 시 1조 8천억 손실이라는 기사가 나왔지만, 실상은 7일 파업 후 현대차에서 56억, 기아차 160억 총 216억의 손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과장하면서 노조를 국가경제의 발전을 방해하는 악의 세력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렇듯 국가 생산력이나 경쟁력 때문에 파업을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끌고 가는 기사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의 권익은 경제논리에 묻히고 있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수출만 많이 할 수 있다면 노동자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5월 30일 라디오에서 언론의 노조 때리기에 한 몫 거든다. “연봉 7000만원을 받는다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이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균 2000만원도 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 세 배 이상 받는 근로자들이 파업을 한 것입니다.”  7000만원 받으면 노동3권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을뿐더러, 연봉 7000만원 이야기는 사실조차 아니다.

정부와 언론이 한목소리로 노조 주위를 둘러싸고 공격하면 제 아무리 노조가 불법이 아니라고 항변해도, 어느새 수많은 파업들은 사회적으로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마는 것이다. 법률상으로 불법인가, 아닌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이미 기득권 세력들은 파업은 불법이라는 전제를 깔아놓고, 악의적인 공격을 한다. ‘불법 파업’이라는 말은 이미 하나의 마타도어다.



노사문제에 대한 공정한 보도가 필요한 시점

노동계의 파업이 국민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진 이유는 친기업적인 정부의 탓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언론의 탓이 가장 크다.

조중동과 대부분의 경제신문들은 파업이라는 말 앞에 불법이라는 말을 꼭 붙이고 파업 기사를 내보낸다. 친기업적인 색깔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적어도 파업에 있어서는 무조건 사측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한다. 그러다보니 노조 측에 대해서는 과격하고, 파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국가경제를 망치고 있는 집단이라고 말하게 된다. 물론 언론이 온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신문사마다 이념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서 같은 사건을 갖고도 언론마다 다르게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거나, 필요이상의 과장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방송 3사나 케이블 뉴스채널도 문제다. 그들은 겉으로는 중립을 내세우지만 결국 힘을 갖고 있는 정부와 기업의 논리를 주로 대변하고 있다. 지상파 3사 뉴스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감안했을 때, 뉴스가 노동계의 입장을 말해주지 않으면 노동계의 파업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언론은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노동계의 파업이 언론에 의해 무조건 불법으로 규정지어지는 한, 노동자의 대우가 나아질 수가 없다. 왜 다른 사회 현안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 노동계의 근로조건 개선 요구나, 노동자들의 힘든 현실은 왜 외면하고 있단 말인가? 이제부터라도 언론에서 노동 문제를 다룰 때, 특히 파업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노사 양측의 입장을 공정하게 대변해주고, 사실에 근거해 말하는 ‘최소한의 언론윤리’를 지켰으면 한다. 언론이 변화한다면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은 ‘파업’을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로 생각하면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