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가 알고 보면 청담동 부잣집 도련님이라며.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로 싸구려 커피 같은 노래를 들으면 좀 위선적으로 느껴져서 몰입을 할 수가 없겠더라고.” 

얼마 전 친구가 장기하의 새 노래를 들으며 한 이야기이다. 소문의 진위와 관계없이 친구의 말은 음악의 소비가 점점 스토리가 강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신호였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음악 자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와 작가를 구분하지 않는, 표현론적 감상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나가수를 비롯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무한도전도 이러한 흐름을 잘 활용하고 있다.


옥주현의 악플러와 임재범 신드롬

겉으로만 보면 대한민국은 음악 강국이다. 음악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많은 이슈들이 생산되고, 온갖 논쟁들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더 이상 앨범을 사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음악프로가 있고 프로그램 저마다 음악을 내어놓고 새로운 음악 산업의 방식을 고안해 냈다. 그 중에서도 ‘나가수’라는 단일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 이슈를 만들어 냈는지 생각해 보면, 대중은 음악 자체가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인생, 역사 그리고 이미지를 함께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중들이 가수를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옥주현에게 가수로서의 결격사유는 없다. 그녀의 가창력은 ‘나는 가수다’라고 주장하기에 무리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가수로써의 자질이 아니라 대중이 닮고 싶은 그녀의 스토리, 역사일 뿐이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혹은 성형미인이라는 그녀의 인생의 일부 혹은 이미지가 대중으로 하여금 그녀의 노래를 공감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대중들은 그녀를 비난하면서 그녀의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주는 중이기도 하다.

옥주현에게는 악플러가 생기고 임재범에게는 신드롬이 생기는 차이는 역시 스토리에서 기인한다. 임재범의 나가수 등장 이후로 주목받았던 것은 노래보다도 그의 ‘아티스트적’ 기구한 인생 이야기였고, 이제는 누구나 아는 그의 인생이 그의 노래를 더욱 더 ‘공감’할 만하고, ‘감동’을 주는 것으로 만들었다. 전직 아이돌과 락큰롤 대디라는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의 노래를 들을 때 대중은 다른 마음가짐으로 듣고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인생은 가짜고, 그의 인생은 진짜야. 그러므로 그의 노래를 소비하는 것이 내 인생을 진짜로, 내 선택을 진짜로 만들어 주는 거야.’ 같은 착각마저 주는 것이다. 모든 것이 가짜인, 사실 많은 사람의 인생이 크게 다르지 않은 세상에서 임재범의 노래를 소비하는 것은 내 인생을 잠깐이라도 진짜의 것으로 만들어 준다는 믿음을 사는 것과도 다름 없다.

무한도전 노래가 좋아서 뜬 것만은 아냐. 

서바이벌 음악프로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가운데 무한도전에서는 2년에 한번 돌아오는 가요제를 4주간 방영하였다. 예능프로그램임에도 불구, 온갖 음원차트 1위부터 7위까지를 휩쓸며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무한도전 서해안 가요제에 등장했던 9곡의 노래들이 기성 가수들이 발표했던 노래들 보다 질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는 없다. 본업이 가수가 아닌 이들의 한계도 명확하고, 프로그램을 위해서 음악의 완성도를 포기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무한도전의 노래들을 선택했고, 이 선택은 역시 스토리라는 흐름 안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주말 예능 프로에서 4회에 걸쳐 가요제를 편성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호흡이 느려지는 부분도 있었고, 분명 지루하다 느낄 수 있는 지점도 있었다. 무한도전에서는 굳이 한 아이템을 4주간 하지 않아도 방송할 만한 다른 아이템들이 있다. 하지만 장기프로젝트처럼 편성한 것은 상황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낸 김태호PD의 노련함이라 할 수 있다.

4주 편성에는 단점도 장점도 있다. 예능으로서의 치명적인 단점으로는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다는 것. 장점은 시청자들과의 유대감과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호 PD는 단점을 안고 장점을 살리기로 결정했다. 음악을 단순히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뮤지션과 무한도전 멤버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뮤지션들의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며 공감의 포인트를 만들어 나가는 것.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이름을 달고 6년간 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캐릭터를 구축한 무한도전의 장점을 잘 살린 것이었다. 음악 ‘외적’인 것을 보여줌으로 해서음악 ‘자체’를 살릴 수 있음을 파악한 것이다.

몰입을 저해하는 ‘순정마초’의 가사도, 유치함과 찌질함의 절정인 ‘죽을래, 사귈래’도 박명수의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 약간의 완성도를 희생한 ‘바람났어’도 4주간 구축한 그들의 스토리와 이미지 속에서 읽는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노래의 자체와 외연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앨범의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의 흐름 사이에 스토리가 숨어있었지만 우리는 이제 가수의 이야기와 이미지에서 그 스토리를 찾는다. 백지영의 ‘사랑 안해’등의 성공케이스를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시대 흐름이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다. 단지 우리가 소비하는 이미지와 스토리가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이런 시대 흐름을 읽은 음악 산업에서 어떤 전략을 취할 지는 생각 해 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