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야구는 곧 김성근 식 이기는 야구다” 
 
재미있는 야구도 좋은 성적이 있어야...
 
문학경기장이 불타올랐다. 김성근 전 감독이 해임되자 성난 SK와이번스의 팬들이 경기가 끝난 후 경기장에 뛰어 뛰어들어 유니폼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경기도중에도 김 감독의 이름을 연호하며 프런트에 야유를 보냈다. 팬들의 분노는 단순히 해임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포테이먼트를 표방하며 구단을 운영해온 프런트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어서였다.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바랬다. 그들이 노장에게 통보하다시피 한 이별에는 예의가 없었다.

사건의 발단은 시즌 도중 불거진 김성근 감독의 재계약 문제에 SK가 보인 미지근한 태도에 있다. SK의 태도가 김 감독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문제는 SK가 김 감독에게 계속해서 언급한 ‘제 3자’의 존재였다. “제 3자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건 구단이 이미 김성근 전 감독과의 계약기간 만료 후에 새로운 감독을 내정했다는 말이 된다. 이만수 감독대행 또한 취임식을 하면서 ‘내년’을 언급했다. 제 3자도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김성근 전 감독(左)과 이만수 감독대행

 
김 감독을 해임하기엔 SK도 큰 부담감을 안고 있었겠지만 오래 구단을 운영하기 위해선 ‘정공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비겁했다. SK는 끝까지 ‘자진사퇴’의 형식으로 김 감독을 내보내고 싶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재계약 불가 통보를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팬들이 수긍 할 수 있는 명목이 없었기 때문에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자신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구단은 김 감독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자진사퇴를 종용했고, 자신들의 책임은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김 감독은 시즌 도중, 재계약은 없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즌 끝까지는 팀을 맡겠다고 하며 코리안 시리즈 우승뿐만 아니라 아시안 시리즈까지 언급했다. 자신의 책임마저 놓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시즌 종료까지라는 건 이만수 감독대행과 구단, 그리고 선수들과 팬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줄 수 있다는 의중도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우승3회 준우승1회에 빛나는,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노장에게 해임을 통보한 SK의 태도는 계약관계에서 ‘을’을 대하는 ‘갑’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 SK가 소유하고 있는 다른 종목의 구단에서도 일관성 있는 운영 철학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SK 소유의 구단이 연고지를 변경한 건 두 차례에 이른다. 농구구단인 SK나이츠는 청주에서 서울로, 축구구단인 제주유나이티드(전 부천SK)는 부천에서 제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청주는 임시 연고지의 성격이 강했지만 부천은 오랜 시간 구단이 머물렀던 곳이기 때문에 많은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으며, 그랬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무분별한 선수 영입이라는 문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E스포츠 구단인 SK텔레콤T1은 프로리그 출범 초기에 대기업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구단에게 필요한 현금을 제시하며 선수들을 빼오는 일이 잦았다. SK나이츠 또한 팀 조직력은 생각하지 않는 선수영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주희정, FA 계약한 김효범, 신인드래프트 2순위 김민수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몇 년 동안 6강 플레이오프조차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구단 프런트의 책임은 외면한 채 선수와 감독만 바뀌면 된다고 여기는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구단과 김성근 전 감독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구단은 김 감독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감독이 되라”며 “우승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얘기했다. 

"인천 야구는 죽었다" 성난 SK팬이 경기장에 국화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이 부임한 후 문학경기장을 찾는 관중 수가 급격히 늘어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팬들은 유니폼에 김 감독의 이름을 새기고 ‘인천 예수’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만큼 팬들에게 김 감독이 큰 존재라는 얘기다. 삼미스타즈나 쌍방울레이더스 같은 구단에 실망하고, 현대유니콘스에 배신당해 야구에 연을 끊은 인천 시민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발 돌리게 한건 구단이 아닌 김성근 감독이다. 그리고 그건 성적이 밑바탕이 됐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었다. 인천야구는 곧 김성근 식 야구였다.

이만수 감독대행은 벌써 김성근 전 감독과의 차별화를 표방했다. 미국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에서 코치를 하다 온 이 감독 대행이 김 감독과 야구 철학에 관해 불화를 겪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감독대행의 스타일이 SK와이번스에 어울리냐는 것이다. 

SK 선수들은 작전을 통해 한 점 한 점 차근차근 점수를 뽑는데 익숙해져있다. 더군다나 3할 타자는 최정, 정근우 두 명 밖에 없다.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감독대행이 부임한 후 SK는 빈공에 시달리며 1승 4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투수진도 덩달아 부진해 패한 경기에서의 점수 차도 컸다. 이런 상황에서 이 감독대행이 하고자 하는 재미있는 야구가 등돌린 SK팬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 수 있을까? 

김성근 전 감독의 지도하에 SK와이번스가 거둔 최저 성적은 준우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