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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 - '길'을 통해 마주한 현재

언제나 그랬다. 주변 모두가 목에 걸고 다니는 MP3를 위시리스트에 추가할 때 CDP를 구매했었고 핸드폰으로 시계 기능을 대신할 때 유독 빨간 손목시계를 팔에 채웠었다. 이외에도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워크맨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었고 1970년대 혹은 1980년대의 노래들을 찾아 하루 온 종일 재생했다. 이렇듯 나는 언제나 시대와 조금 간격을 두고 걸었다. 다소간의 시간을 들여 찬찬히, 경험해보지 못했던 과거를 동경하며 말이다. 시간여행의 서사를 지닌 우디 앨런의 새 영화 에 매력을 느낀 이유도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중 과거를 동경하는 길에게는 더욱 더. 이야기는 길(오웬 윌슨)과 약혼녀 이네즈(레이철 맥아덤스)의 파리 여행으로 문을 연다. 집필을 위해 파리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길..

그가 품은 환상의 실체는 무엇이었나 <M 버터플라이>

시작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한껏 조롱하는 것부터다. 곧 이 연극의 주인공 ‘르네 갈리마드’가 될 남자는 먼저 작품 밖의 화자로서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나비부인 이야기의 허울을 벗겨버린다. 미국 해군 장교와 짧은 사랑을 나눈 후 그가 미국에 돌아가 자신을 찾지 않아도 한없이 그리워하다가 이미 결혼을 한 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더 이상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일편단심을 저버릴 수도 없어서 끝내 생을 끊는 일본 여자. 외형은 너무나 순결하고 눈물 나는 멜로지만, 따지고 보면 고작 서양 건달 때문에 자기 목숨까지 버린 어리석은 여자의 이야기이며 이것은 전적으로 서양 남자가 동양 여자에게 요구하는 환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목소리를 높여 서양의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을 비꼬던 남자는 어느 새 ‘르..

영화 <state of play> “독자는 진정한 기사와 쓰레기는 구분할 줄 알아”

어느 날 한 밤 중, 미국 거리에서 멀쩡한 두 사람이 총에 맞아 살해당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소냐 베이커’라는 여성이 죽는다. 이 총기 살인 사건이 단순 살인 범죄가 아니라 거대 기업이 깊숙이 관여한 사건이라면 어떨까. 어느 한 밤중에 일어난 총기 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두 기자가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영화에는 칼과 델라라는 지극히 평범한 기자와 칼의 친구이자 하원 의원인 ‘스티븐 콜린스’, 그리고 ‘소냐 베이커’가 나온다. 소냐 베이커는 스티븐 콜린스와 내연관계였다. 스티븐 콜린스의 내연녀였던 소냐 베이커의 죽음으로 사건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 이후 스티븐 콜린스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찾아간 곳이 바로 친구 칼이었다. 집중적으로 사건을 취재하기 전 칼은 다..

“서른마흔다섯살이다 와?”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 <바람>

wind가 아니라 wish다. 영화 의 영어 제목 말이다. 주인공 정우(극중 짱구 역할)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소위 ‘일진’이 된 학생의 고교시절 성장통을 담백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자칫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를 리얼한 부산사투리와 주인공의 솔직한 내레이션으로 맛깔나게 버무린 영화 . 철없던 시절 누구나 겪는 한 순간의 바람(wind)이 아니라 주인공이 꿈꿨던 학교생활에 대한 바람(wish)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다시 돌아간다면…’ 만화 같은 학교생활 주인공의 본명은 김정국. 어릴적부터 짱구로 불렸던 그는 공부 잘하는 형과 누나 사이에서 유일하게 실업계인 상고에 진학한다. 한 반에 복학생이 한 두명씩 있고, 뚱뚱해서 짜증난다는 이유로 길 가던 학생을 마구 때리는 게 용납되는 곳. 뿐만..

타이페이 카페스토리, 36번째 이야기를 찾아서

"두얼은 라떼 위에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왜냐면 그림이 있으면 유지방을 볼 수 없고 우유와 맞물리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랍니다." 영화는 두얼(계륜미)이 카페에서 라떼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1년 전 그녀는 문득 자신만의 카페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녀의 여동생 창얼(임진희)과 함께 조그만 카페를 열게 된다. 카페에는 여러 사람들이 오간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서로 얘기를 나눈다. 사실 이 카페에는 독특한 규칙이 있다. 만약 카페에 있는 물건 중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자신이 지닌 물건과 교환해 갈수 있다는 것이다. 즉 물물교환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가져와 다른 사람의 사연이 담긴 물건과 교환해 간다. 그러던..

[기획] 솔로들의 영화관람 유용한 TIP 5

살을 에는 듯한 바람. 겨울이 찾아왔다. 옷을 껴입어도, 털모자를 눌러써도, 목도리로 둘둘 감아도 너무 춥다. 똑같은 기온, 똑같은 길을 혼자 걷고 있는 솔로의 눈에 함께 걸어가는 연인들이 들어온다. 패딩을 입고 장갑까지 낀 연인들이지만, 서로의 스킨십으로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을 이겨낸 그들의 표정은 밝다. 하지만! 솔로로 겨울을 이겨내는 거 어렵지 않다. 솔로로 겨울을 이겨내려면 3가지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 돈과 부지런함 그리고 당당함이다. 하지만, 이 3가지를 갖추어도, 혼자서 밖을 돌아다니기는 너무 춥고 안에 들어가자니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비록 가족단위와 커플들로 가득찬 연초의 영화관이지만, 영화관이라면 갈 곳 없는 솔로들을 달래줄 수 있다. 예매. 평소 자주가던 영화관에 무인발매기도 없고, ..

청춘을 위로하는 감성영화, '후아유'

우울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항상 찾게 되는 영화가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까만 밤 불 꺼진 방에서 노트북 화면으로, 그렇게 를 볼 때 그런 류의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스무 살이 된 이후로 이 영화를 더욱 자주 찾게 됐다. 네모난 교실 안에서 수업을 듣고 자습을 하는 게 인생의 전부였던 중학생 때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 당시 서른여섯의 젊은 감독이었던 최호 감독은 20대의 감성을 영화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 Blue in Green의 같이 갈까나, 불독맨션의 사과, 롤러코스터의 Love Virus 등 20대의 감성에 맞는 밴드 음악으로 구성된 OST는 이제는 음반으로 구할 수도 없어서 더 특별하다. 내 미래가, 내 사랑이, 내..

[기획] '영화를 향한 열정으로', 29세의 만학도 안효진씨 인터뷰

우리가 사는 사회에선 암암리에 무언가를 할 ‘적당한’ 시기를 정해 놓았다. 10대엔 무엇을 20대, 30대엔 무엇을 할 적당한 시기 말이다. 일반적인 시기에 맞춰 10대를 보내고 나서 20대를 시작하는 사람의 신분은 보통 대학생이다. 이렇게 적당한 때에 맞춰 당연한 듯 대학에 입학한 후 남자에겐 1학년이나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는 것이, 여자에겐 20대 중반을 넘기기 전에 취직을 해 자리를 잡는 것이 적당한 경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적당한’ 시기라는 관념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제약을 건다. 바로 ‘늦지 않았을까?’ 라 것이 그것이다. 나이가 들 수 록 늦었다는 생각에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는 ‘만학도’도 그런 경우이다. 그런데 ..

새로운 시대를 여는 우화, 영화 '요시노 이발관'

영화 은 , 으로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데뷔작이다. 일본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전통과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상 사이의 대립을 그려냈다. 대립의 양상을 우화적인 방식을 통해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일맥상통한다. 의 기본적인 인물 구성에서부터 디테일한 화면 배치에 이르기까지 영화 전반에 우화적 장치가 지배적으로 깔려 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인물은 각각 전통과 변화를 상징한다. 제목에 등장하는 요시노는 전통을 고수하려는 인물이다. 그에게 ‘바가지 머리’는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전통으로, 아이들이 바가지 머리가 아닌 다른 머리를 한다는 것은 전통을 파괴하고 무시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바가지 머리가 꼭 아니어도 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