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항상 찾게 되는 영화가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까만 밤 불 꺼진 방에서 노트북 화면으로, 그렇게 <후아유>를 볼 때 그런 류의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스무 살이 된 이후로 이 영화를 더욱 자주 찾게 됐다. 네모난 교실 안에서 수업을 듣고 자습을 하는 게 인생의 전부였던 중학생 때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후아유>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 당시 서른여섯의 젊은 감독이었던 최호 감독은 20대의 감성을 영화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 Blue in Green의 같이 갈까나, 불독맨션의 사과, 롤러코스터의 Love Virus 등 20대의 감성에 맞는 밴드 음악으로 구성된 OST는 이제는 음반으로 구할 수도 없어서 더 특별하다.

 
내 미래가, 내 사랑이, 내 인격이 다 불안하다
 
내심 고백받기를 기대하고 있던 남자가 눈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고백하는 모습을 본 보영(조은지 분). 노래방에서 괴성을 지르며 ‘사랑하고 싶어’와 ‘난 괜찮아’를 열창하더니, 여의도 한강공원을 걸으며 이 말과 함께 눈물을 흘린다. 자신의 모든 것이 불안하다고. 내 인격이 불안하다고. 주인공들이 내뱉은 어떤 대사보다도 오래도록 머리를 맴도는 말이다.
 
<후아유>는 20대의 영화다. 대기업을 관두고 벤처 게임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사는 형태(조승우 분)와 남훈(이장원 분), 훈련 도중 청각을 상실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던 수영을 접어야 했던 인주(이나영 분),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여행사 가이드 보영. 그리고 나, 너, 우리. 20대가 갖는 불안감,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의 세계를 공유한다는 것이 두려운 감정이 그려져 있다. ‘나’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겪는 그 보편적인 청춘의 감정 이야기. 바로 오늘 내가 겪었던 고민과 한숨들 이야기.
 
자신의 치부는 모조리 감추고 싶으면서도 소통의 상대를 지속적으로 찾는 게 청춘의 모습이다. 영화 속 게임 ‘후아유’를 통해 하루를, 과거를, 아픔을 공유하는 형태와 인주의 모습에 어째 트위터나 페이스북, 메신저를 전전하는 오늘의 청춘의 모습이 겹쳐진다. 게임 속에서 형태와 인주 대신 ‘멜로’와 ‘별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그들. 자신과 비슷하지만, 결코 자신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는 아바타를 통해 서로 위로를 받고 아픔을 견뎌보기도 하는 모습에 내 외로움이 함께 스친다. 


다음 파란 불엔 건너자, 둘이 같이
 
라스트 씬은 단연 <후아유>의 압권이다. 멜로와 별이라는 포장지로 잘 싸 놓은 그들의 인격이 형태와 인주라는 현실로 만난 순간 그들은 흔들린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모든 걸 다 알면서 자신이 멜로라는 것을 숨겼던 형태에게서, 그리고 환상 속의 인물이 아닌 형태라는 초라함으로 나타난 멜로에게서 인주는 달아난다. 그리고 그 길을 형태가 따라간다. 대학로에서 창경궁로로, 인사동 거리를 거쳐 종각역의 삼성생명 건물 앞까지.
 
평행선을 달리던 그들은 멜로, 별이, 형태, 인주 같은 포장이 아닌 진실과 진심을 발견한다. 드디어는 인주가 형태에게 손을 건넨다. 다음 파란 불엔 같이 건너자고. 이제 그들은 불안을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건너 간 횡단보도 위로 수많은 청춘들이 지나간다. 서로 말을 걸고, 만나고, 갈등하고, 헤어지면서. 그렇게 청춘들은 오늘도 방황하며 단단해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