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박지성, 박태환....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존재감을 갖는 스포츠 스타들. 이들에게 거는 기대는 전국민적이다. 이들이 대회나 경기에 참가하기만 하면, 제일 먼저 나서는 것은 언론이다. 그 동안의 성적과 현황, 그리고 예상되는 경기 결과 등 객관적인 분석은 기본이고, 상대편 선수와의 경쟁구도, 세계에서의 위상 등 드라마틱한 요소까지 집어넣어 온갖 보도를 쏟아낸다. 국민들은 언론 보도에 뜨겁게 호응하며, 스포츠 스타들이 펼칠 활약을 기대한다.

 대회 당일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대회를 챙겨본다. 경기를 직접 보지 않더라도 경기 결과는 저절로 알게 된다. 아무리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들의 경기결과가 어떠하였는지 알 수 밖에 없다.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청난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브라운관 너머로 1위를 쟁취해내는 선수의 모습을 보면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아오르는 듯 하다. 시상식에 서있는 스타들 위로 올라가는 태극기와 장내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 속에 서 있는 스타의 모습은 가슴이 뭉클할 만큼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들이 1위를 아쉽게 놓치거나 기대와 다른 결과를 안겨다 주는 날은, 그 실망감이란 가히 전국민적이라 할만 하다. 온 언론이 그 혹은 그녀의 부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터넷은 아쉬움과 실망스러움을 성토하는 글들로 넘쳐난다.



스포츠 스타가 짊어지는 조국이라는 이름의 부담감

 언제부터인가 특정 종목에서 세계 1위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둔 스포츠 스타들은 전국민적인 기대를 짊어지게 되었다.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축구의 박지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경기장 위에서 홀로 경기를 치르지만, 실은 혼자가 아니다. 전국민의 시선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대중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들이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여줄 것이라 기대하며, 스포츠 스타에 대한민국을 대입시킨다. 경기장 위에 선 그들의 등에 태극기가 달려있는 것 마냥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이 치르는 한 게임, 한 경기, 한 대회에 국가의 명운을 덧입힌다.

 “박지성을 아는가?”라는 물음은 이러한 사고에서 비롯된다. 이 질문은 한국의 취재진이 외국 유명 축구선수를 만나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박지성을 아는 것은 곧 한국 축구의 높아진 위상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즉, 결국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느냐 아니냐를 물어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박지성을 전혀 모르거나, 그와는 상관없는 축구 게임을 펼친 선수라도 예외는 아니다. 쌩뚱맞은 질문에 당황스러워하는 외국 선수들을 지켜보며 왠지 모를 창피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 상황이 촌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스포츠 스타들은 국가 위상을 드높여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지 않다. 대중이 진정으로 기대를 걸고 부담을 주어야 하는 이들은 따로있다. 보다 실질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높여야 하는 이는 훌륭한 외교관이나 교수와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 수영에서 1위를 하고, 피겨에서 1위를 하는 것은 그저 그 선수가 세계적으로 수영을 잘 하고, 세계적으로 피겨 실력을 인정받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뿐이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 일조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편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
  
사적이어야 할 경기가 공적으로 지나치게 확장돼

 전국민적인 기대감은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더러 그 반대의 경우도 초래한다. 국민의 지나친 기대감은 선수의 노력을 폄하하고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경기 결과는 실제로 매우 사적인 것이다. 경기 결과가 좋다면 그 선수는 좋은 대접을 받으며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경기 결과가 좋지 않다면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들의 경기는 더 이상 사적이지 않다. 매우 공적이다. 전국민이 관심을 갖고 그들의 경기를 지켜본다. 그 결과, 국민들은 경기 성적이 좋으면 두 배로 기뻐하지만, 경기 성적이 나쁘다면 두 배로 실망스러워 한다. 성적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높은 기대치는 1등 지상주의만을 낳으며, 그 외의 등수는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절하 되기도 한다.

 “2등은 꼴등과 같았다.” 지난 4일 방송된 SBS TV ‘SBS 스페셜’의 ‘아이콘 김연아, 2막을 열다’에서 김연아가 털어놓은 이야기이다. 김연아는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달성했다. 그 때의 일화에 관해 김연아는 서운함을 토로했다.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자신의 성적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상식이 끝난 후 주위의 반응에 대해서다.

 “보통 경기가 끝나면 문자나 축하메시지가 많이 온다. 그런데 축하한다는 말을 한 마디도 못 받았다. 그게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나는 2등을 했고, 경기가 다 끝나고 기분도 정말 좋았는데 다 ‘수고했어, 괜찮아’라는 말 밖에 안 했다. 스포츠 선수에게 있어서 1등과 2등은 완전 1등과 꼴등 같은 취급을 받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박태환은 국민 오빠였다가 한 순간에 국민 호구로 전락하기도 했다. 2009 로마 세계수영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박태환은 주종목인 자유형 400m 예선에서 탈락한데 이어 28일에 열린 200m 준결승에서도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국민의 기대와 반대되는 경기 결과에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경기 전 진행한 화보 촬영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제기와 함께 화보 촬영을 한 박태환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광고나 찍지 수영은 왜 하러 갔냐’에서부터 ‘돈독이 올랐구나’까지 그 비판은 도를 넘어섰다. 설사, 광고 촬영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 책임은 박태환 자신이 지면 될 일이다. 그는 충분히 자신의 성적 부진에 괴로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티즌은 그런 박태환을 이리 저리 물어뜯으며 깊숙이 패인 상처를 덧내고 또 덧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국민, 스포츠 선수도 하나의 직업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직업을 갖고 있거나 직업을 가질 예정이다. 그들도 똑같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도, 수영 선수도 그들에게는 하나의 직업일 뿐이다. 우리와 같은 국민의 한 사람인데, 직업이 단지 스포츠 선수인 것이다. 단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그 실력이 출중한 것일 뿐이다. 진정한 팬심으로 시작된 관심이라면, 좋은 경기 결과엔 환호를, 실망스런 결과엔 격려를 보내면 될 일이다.

 제 멋대로 기대를 걸었다가, 제 멋대로 관심을 거두고 심한 경우 비난까지 일삼는 대중. 좋은 경기를 관람하는 즐거움을 선사한 그들에게 대중이 보답할 수 있는 것은 건강한 응원이다. 지나친 관심과 기대는 내려두고 한 발짝 떨어져서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