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뜨지 않았다. 추석의 밤하늘은, 환한 보름달 대신 비를 머금은 구름이 덮었다. 추석(秋夕)을 문자 그대로 풀어쓰면 가을 저녁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달빛이 가장 좋다는 뜻의 월석(月夕)이라고도 부른다니, 추석하면 가을의 환한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추석의 밤하늘은 보편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철저히 개별적이다. 모두가 환한 보름달 아래서 소원을 빌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되 나라 어디에서나 달의 노란 빛이 비추는 정도는 다르다는 점에서 개별적이다. 밤하늘의 보편성과 개별성은 ‘민족 최대 명절’이란 이름 아래 묻힌 20대에게도 다르지 않다. ‘민족 대이동’이라며 3000만의 인구가 이동했단다. 이것은 명절 아래 보편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동할 수 ‘없는’, 또는 이동하지 ‘않는’ 2000만의 인구가 존재한다. 이것은 명절의 이면이요, ‘개별’의 명절이다. 이 이야기는 그 2000만의 이야기이다.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루시겠죠?

강원도 속초시의 모 부대에서 근무하는 J 상병(24)은 24시간 교대근무를 한다. 일반적인 군대는 주말과 휴일, 그리고 휴식시간이 보장된다(원칙은 그렇다). 그러나 J씨 같은 교대근무자에게 그것은 다른 세상 이야기이다. 그는 추석 전날인 11일에 야근에 투입되어, 12일 아침에 근무에서 나온다. 그리고 야근 후 취침을 취하고, 12일 저녁, 다시 근무에 투입된다. 주중과 주말, 평일과 휴일의 구분이 없는 그 같은 24시간 근무자에게 명절은 사치다. 지난 설날 역시 부대에서 보냈다는 그는 당시 군인에게 지급되었던 ‘빠다코코넛’과 ‘비락식혜’ 이외에는 기억에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집단 차례를 지내긴 했지만, 형식적으로 지내는 행사라 오히려 휴식시간이 뺏기는 느낌이었다고.

“왜, 유명한 군가 가사에도 있잖아요.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라는. 사실 누군가가 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나라를 지켜야 하니 불만은 없어요. 그런데 제가 얼마 전 전역한 사촌형한테 전화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 형은 전역했는데도 이번 추석에 집에 안 갈 거래요. 취업 때문에 좀 그렇다나… 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금은 군대가 나를 가둔다고 치지만, 전역하고 난 후에는 이 사회가 나를 가둬버릴까 봐, 그게 조금 무섭네요.”

한가위 때문에 가위에 눌렸어요

J씨가 말했듯 취업 문제 때문에 명절이 되어도 집을 찾기 싫다는 20대는 적지 않다. 굳이 취업 문제가 아니더라도, 재수·삼수, 또는 고시 준비를 하느라 집을 찾지 못하는, (혹은 찾지 않는) 20대는 주변에 많다. 신림동에서 행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S양(24) 역시 이와 같은 경우다. 만약 휴학을 하지 않았다라면 이미 졸업을 했을 나이이지만, 그녀는 2학년을 마친 후 고시의 길을 택했다. 3년 째 고시에 응시했으나 아직 1차에도 합격하지 못해 어른들을 보기가 면구스럽다고. 지난 설날 때는 억지로 하루 정도 시골에 내려갔는데,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치만 잔뜩 확인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시골에 가지 않는 대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명절기간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만나 스트레스를 풀 계획이라고 한다. 피가 섞인 친척보다 애환이 섞인 친구들이 더욱 편하다는 것, 그것이 20대의 현실이 아닐까.

“인터넷 뉴스를 보니 취업 이야기, 결혼 이야기, 살 이야기가 명절 때 피해야 할 삼대 주제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설날 때 시골에 내려가니, 슬슬 그런 얘기가 나와요. ‘이번엔 되겠지? 에이 여자고 학교도 좋은데 안 되면 결혼이나 하면 되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살이 좀 쪘네? 그래, 넌 좀 쪄도 돼’ 하는 이야기들. 그래서 레포트가 있다고 하고 안 내려가려고요. 오죽하면 며칠 전엔 꿈에 수많은 ‘엄친아’, 그리고 ‘잘 된 사촌’들이 나타나더라니까요? 그래서 집에 안 가는 친구들끼리 모여 놀려고요. 뭐, 책 제목에서 따오자면 ‘이것은 왜 명절이 아니란 말인가?’ 쯤 되려나요(웃음).”

백수 친구들, 명절이면 걔들이 놀아줘요.

앞의 S양과 함께 명절기간에 놀기로 했다는 J양(25)의 경우는 조금 특이하다. 그녀는 찾아갈 고향이 없다고 했다. 아니, 정확히는 ‘한국’에 고향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재외국민 전형으로 한국의 대학에 입학했다. 그녀는 졸업 후에도 한국에서 살 계획이라 주민등록을 마치고 한국식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고향마저 얻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녀의 고향은 저 먼 이국, 아르헨티나에 있다. 부모님과 친척들 역시 모두 그 곳에 살고 있다. 학교 근처에서 홀로 산다는 그녀에게 명절은 즐겁지 않다. 올해처럼 주말이 껴 연휴가 길어질 경우는 더더욱. 이제 한국에 온 지 5년째에 접어들지만 아직도 명절이 되면 서울이 휑해지는 모습은 익숙지 않다고 한다. 한 해에도 5천여명 가까운 재외국민들이 대학에 입학한다. 명절이 되면 먼 곳만 바라보며 서글퍼할 20대들이 점점 늘어나는 셈이다.

“사실 지금은 괜찮아요.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땐 친구도 별로 없는 상태여서 명절 때만 되면 정말 외로웠거든요. 지금은 주변에 백수인 친구들이 많아서 만나서 놀 아이들도 많아요(웃음). 그리고 무료 통화 어플 같은 것도 늘어나서 부모님이랑 통화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요. 뭐 그래도 아쉽긴 하죠. ‘민족 대명절’이라는데 그 말 자체가 좀 왠지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민족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저 같은 친구들이 주변에 점점 늘어나는데 모두 함께 즐거워하는 명절이 되면 좋겠네요. 취업 안 돼서 집에 안 간다는 친구들이랑 놀며 즐거워하는 저도 참 웃기잖아요?”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니, 그 말이 끔찍한 20대도 있다.


명절에 냉소하다

작년에 대학을 입학해 입대를 앞둔 K씨(21)의 경우는 조금 특이하다. 사실 보편적인 시선에서 보면 그는 명절이 싫을 이유도, 집에 가지 않을 이유도 없어 보인다. 유수의 명문대에 재학 중이고, 아직 취업을, 또 결혼을 걱정할 나이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명절이 싫다고 한다. 명절이 되면 생기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싫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오고 가는 칭찬 속에, 피어나는 자식 자랑”, “오고 가는 덕담 속에, 풍겨나는 꼰대 냄새”가 싫다고 한다. 가족이 모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는 하지만, 모여서 하는 일이라곤 음주와 고스톱, 자식 자랑, 험담 등이니 모여서 뭐하겠냐는 게 그의 의견이다.

“사실 제가 어려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몰라요. 그런데 제 주변을 둘러보면 순수하게 명절 자체를 즐기는 20대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가기는 싫은데 용돈 받으러 간다는 친구부터, 부모님이 가자하시니 따라간다는 친구까지.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게 ‘명절을 위한 명절’인 것 같다는 생각만 자꾸 드네요. 피곤해하며 시골에 내려가고, 또 술자리, 입씨름 등등…누군가에겐 휴식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노동의 연장이 될 수도 있는 것 같고…그래서 전 그냥 이번엔 안 내려가기로 했어요. 모르죠 또, 군대 다녀오면 사람이 될 지? (웃음)”

우리가 ‘3000만’의 보편적 명절에 환호할 때, ‘2000만’의 개별적 명절은 묻히고 만다.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소망하지만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보내지는 못한다. 그리고 가끔씩 우리는, 또 사회는 ‘모두의 명절’에 집중하느라 ‘각자의 명절’을 보지 못한다. 올해 보름달은 뜨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비구름이 보름달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추석의 보름달이, 모든 ‘각자의 명절’을 비추기를 소망한다. 조금 더 바라자면, 명절을 명절답게 보내지 못하는 20대에게도, 달빛 한줄기가 스며들어오기를 바란다.  

글을 마치는 순간,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고개를 내민다. 희망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