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미디어 변천사를 살펴보다.
 


#1. 2009년 8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부터 켠다. 날씨도 체크하고,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도 눈대중으로 잠깐 확인해주고, 자주 들어가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서 새로운 글이 올라왔는지 확인한다. 가방을 챙겨 학교로 간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무가지 몇 개를 집어 든다. 난 오늘은 FOCUS다. 어제는 노컷뉴스. 어쨌든 지하철 안에서 잠시 가십거리들을 훑다가 마음에 드는 영화광고를 보고 낮에 영화나 한 편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듣기 위해 건물로 들어가면서 새로 나온 '대학내일'과 '캠퍼스 헤럴드'를 하나씩 집어든다. 대학내일에 나오는 표지모델을 보면서 '오~ 예쁜데? 어디 학교 학생이지?'라고 생각하며 프로필을 확인한다. 심심할 때 꺼내 읽는다. 길거리를 걸을 때에도 MP3와 DMB는 필수. 쉴 새 없이 새로운 정보를 입수한다. 하지만 뭔가 정보를 생성해내지는 않는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에 나와 같은 20대들은 하루에 손으로 셀 수 없는 다양한 매체들과 접하며 살아간다. 어딜 가도 누군가와 접속할 수 있는 세대인 것이다. 그것이 인터넷이든 휴대폰이든 상관없이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정보를 어디에서든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예전의 20대들은 어땠을까??

 

분명 지금의 20대와는 다른 세상을 살았겠지? 그 때에는 인터넷도 없고, DMB도 없이 . 무슨 매체를 보고, 어떤 식으로 같은 20대들끼리 아니 세상과 20대 사이에 어떤 매체들이 존재했던 것일까?

"세상을 향한 20대의 외침"을 모토로 한 '고함20'의 오픈을 맞이하여 도대체 예전의 20대들은 어떤 매체를 접해왔고, 어떤 맥락으로 '고함20' 창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인지 물 흐르듯이 훑어볼까 한다.

 

 

 

60년대. 내가 태어나지도, 아니 우리 엄마가 이제 막 할머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했을 이 까마득한 시대에, 20대들은 박정희 정권의 시작을 맞이했다.

전후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대학을 갈 수 있는 학생들은 부유한 집 자식들이었다. 당연히 그랬겠지. 그런데 이 시기에는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서적과 정보를 구하기 쉽지 않은 시대였다.

대학생들을 포함한 20대들은 그래서인지, 각종 동인지와 문학연재 서적, 서간문 등으로 소통의 창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유명했던 출판물은 「사상(계)」「세대」「신동아」와 같은 잡지였는데, 「사상(계)」의 경우에는 1970년 김지하의 반정부적 글을 실었다가 폐간되기도 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여러 진보적 지식인들이 출판업에 뛰어들어 활발히 사회과학 서적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목말라했던 정보의 부족이 해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 대학생들은 지금 대학생들과는 달리 활발하게 출판되는 고전들과 잡지에 심취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강조하고 강조하는 고전읽기가 이 시기에는 당연한 일상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에게 고전읽기를 권하시는 분들의 20대가 바로 이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문학과 관련된 잡지인 「뿌리 깊은 나무」「문학과 지성」등이 인기를 끌었고, 새로운 사상들과 이론과의 만남으로 이 시기 대학문화라 할 수 있는 저항문화는 더욱 꽃 피우게 되었다.

특히, 대학 내에서 출판되는 대학신문들과 언론들은 대학생 사이에 연대감을 높이고 혁명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앞장서게 된다.

 

 

 

80년대. 유신체제가 무너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학생들의 탄압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 때 신군부의 잡지와 출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자 잡지와 책을 절충한 무크지(mook)라는 새로운 형태의 서적이 출판되기도 했다. 「실천문학」「시와 경제」「문학의 시대」「시대정신」「한국사회연구」「민중」 등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대학생들 사이의 소통을 연계했던 매체는 따로 있었다. 바로 '유인물'과 '대자보'였다. 아무래도 언론에 대한 탄압이 극도에 달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동시다발적이고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유인물 배포만이 소통할 수 있는 길이었다. 경찰의 눈을 피해 버스 종점에서 각 버스 환풍구에 유인물 더미를 올려놓아 시간차로 유인물을 길거리에 뿌리기도 했다. 밤새 붙혀지는 대자보들도 학생운동의 일환이었다.

 

 

 

신군부가 끝나고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언론에 대한 탄압은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오히려 잡지와 출판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택하게 된다. 90년대는 한마디로 상업적인 언론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문화의 질적 양적 발전이 시작되는 해라고 할 수 있다. 이 당시,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대학생이었던 학생들이 어릴 적부터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친숙했던 세대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는 조금씩 상업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아이돌이 등장하고, 인터넷의 발전으로 PC통신인 천리안과 나우누리, 하이텔 등을 통해 각종 동호회가 활기를 띄고 번개라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더 이상 '혁명'이나 '저항'과 같은 단어는 20대와 낯선 관계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이 시기 대학생들이 주로 본 「인서울 매거진」「TTL」과 같은 무료 잡지를 보아도 이전보다 상업적 색채가 강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밀레니엄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2000년대 대학생들은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과 맞물려 다양화된 매체를 접하게 된다. 더 이상 어느 하나의 매체에 권력이 집중되지 않고, 20대를 위한 매체는 텔레비전에서 라디오, 신문과 잡지, 인터넷까지 다양화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했던가. 우리들은 이 넘쳐나는 매체 속에서도, 이 세상과 요즘 20대들은 단절되어 있다고 느낀다. 특히, 언론에서는 20대가 조용하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우리 20대는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고 사회와 이 세상에 대해 나만의 시각을 갖고 살아가 있는데.

 

그래서 만들었다. '고함20'. 20대들의 발언을 모으고, 20대인 우리들이라도 이야기를 해보자고. 그리고 우리도 알 수 없는 동시대 20대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게다가 이제 세상은 누구나 원하는 사람이라면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 웹 환경은 우리가 돈 한 푼 없어도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매거진과 같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30년 전만 해도, 이런 시도는 돈이 없으면 유인물이나 낡은 대자보로 해야 했을 것이다. 아니, 혁명사상이 부족하고 감성적이라면서 찢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세대는 분명 달라졌다.

 

미디어만 변화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대학생들의 사상과 환경도 변화한 것이다. 변화한 시대에 맞게 우리가 표방하는 '블로그 저널'로서 웹 상의 20대 미디어 '고함20'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10년 후, 지금의 10대가 우리와 같은 20대가 되어, 나와 같은 컨셉으로 변천사를 훑을 때, 우리 블로그 저널이 메인에 우뚝 설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