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메이커: 트러블이 아닙니다. 20대라면 누구나 꿈꾸지만 막상 쉽게 떠나기는 힘든 여행. 소풍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여행부터, 큰 맘 먹고 준비해 떠나야 하는 여행까지, <고함20>의 방학 특집 연재 '트래블 메이커'가 만들어 드립니다. 다양한 20대의 여행, 지금부터 만나보세요. Travel maker.
 


많은 대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한 유럽여행을 꿈꾼다. 파리의 에펠탑을, 로마의 콜로세움을, 마드리드의 마요르 광장을 두 눈으로 보고 돌아오고 싶어한다. 하지만 고함20이 만난 트래블 메이커는 유럽을 등지고 인도를 택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여행자의 신분에서 돌아오지 못한 것 같은 그녀를 만났다. 멋진 자연 경관도, 맛있는 음식도 하나같이 감동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건 사람이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 소개부터 해주시겠어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언론정보를 전공하고 있는 권정시라고 합니다. 올해 23살이 됐고, 인도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도 인도에 빠져 살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아직 정시 씨 얼굴에 인도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나 여행하고 왔어요’ 느낌이 있는데요? 하하. 인도 여행 얘기 좀 들려주세요.

저는 9월부터 10월까지 총 50일 간 인도를 여행했어요. 왜 하필 9월에서 10월이냐고 하신다면 이 때 과일이 가장 싸다고 해서 일부러 이 시기를 택했다고 답할 수 있겠네요. 사실 6개월 정도 여행하고 싶었는데요. 그 전까지 제가 가장 오래 했던 여행이 10일 정도라서 갑자기 6개월의 장기 여행을 가는 건 위험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쉽지만 먼저 2개월 정도만 가보자 한 거예요. 제 입장에서는 2개월이 별로 장기 여행은 아니었어요. 또 원래 혼자 가려고 했었는데 동아리 후배가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둘이서 같이 여행했고요.

출처 Flickr

 

인도를 여행지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뭐예요? 사실 제 주변 대학생들은 뉴욕이나 파리 같은 서양의 대도시에 대한 낭만이 더 많은 것 같은데요. 정시 씨의 여행지 선택이 저는 참 놀라웠어요. 부모님께서 걱정은 안하셨나요?

2010년 여름에 터키에 간 적이 있어요. 보통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숙소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다 같이 어울려 놀면서 친해지잖아요. 적당히 술도 마시면서요. 터키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그렇게 술을 마시며 각자 자기 얘기를 했죠. 그 때 분위기나 상황이 굉장히 로맨틱했어요. 함께했던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서 그랬나봐요. 대화 주제가 ‘인도’로 흐르게 됐는데 얘기하다보니 인도는 점점 로맨틱한 곳, 영혼이 맑아지는 곳, 낭만적인 곳이 되었어요. 그 때 생긴 인도에 대한 환상 때문에 이번에 인도 행을 결심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저희 부모님이 제 계획이나 행동 같은 것에 전혀 간섭을 안 하세요. 그래서 심지어 언제 여행을 떠나는지, 언제 돌아오는지도 전혀 모르셨어요. 하하 

그렇군요! 충동적이라면 충동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결심이었네요. 여행 준비는 어떻게 했어요? 여행 경비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여행 비용은 과외 아르바이트와 주식으로 마련했어요. 처음에 200만원 정도를 예산으로 생각했는데 학기 중에 저축했던 돈을 쓰다 보니 결국 총 160만원 정도 가져가게 됐어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신용카드를 가져가서 현금을 인출해 쓰기도 했어요. 원래 40일 일정이었는데 10일 연장하게 돼서 여행 막바지에는 빠듯하게 돈을 써야하기도 했죠.

배낭여행이니까 배낭여행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샀어요. 배낭과 자물쇠, 침낭, 슬리퍼를 기본으로 챙겼고요. 나머지 필요한 것들은 인도에 가서 사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챙겨갔어요. 저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믿거든요. 그래서 준비물들을 많이 챙기는 대신 인도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책, 영화를 많이 봤어요. 류시화 씨나 한비야 씨가 쓴 소설 같은 여행기를 읽었고요. 그것보다 인도 경제, 문화,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들을 더 많이 찾아 읽었어요.

인도를 관광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는 역시 많이 아는 게 필요하겠네요. 정시 씨 참 멋진 여행자예요! 그래서, 시행 착오는 없었나요?

다행히 9월~10월은 인도 비수기라서 숙소나 기차 같은 걸 미리 예약할 필요가 없었어요. 저는 그랬는데요, 만약에 인도 여행을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 중에 성수기에 가려는 분들은 꼭 미리 예약하고 가는 걸 추천하고 싶어요. 숙소는 정말 많아요. 그런데 성수기 때는 그 많은 숙소가 다 차거든요. 그래서 방이 있더라도 현지에서 방을 달라고 하면 엄청 비싼 가격을 불러요. 미리 예약하면 그럴 일이 없죠.


50일이면 정말 인도 구석 구석을 다 여행할 수도 있었겠어요. 실제로 어느 어느 지역을 여행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지역은 어디예요?

너무 많이 가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기억나는 곳만 말해볼게요. 잘 아시는 델리부터, 바라나시, 아그라, 자이살메르, 카주라호, 캘커타, 산치, 보팔, 조드뿌르, 우다이뿌르, 아잔타, 옐로라, 아우랑가바드, 백그로드 간즈, 함피, 암리차르.. 계획을 하나도 안 세우고 그냥 일단 갔어요. 어차피 인도에서는 일정이 마구 바뀐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갔던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한테 어디가 좋은지 물어봐서 다음 갈 지역으로 선택하거나, 그 때 그 때 내키는 지역을 골라서 움직였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지역은요, 아 이건 정말 아빠가 좋은지 엄마가 좋은지 말해야 하는 것과 같네요. 그래도 하나를 꼽으라면 ‘함피’요. 여행 기간 중 가장 오래 있었던 곳이예요. 13일 동안 머물렀는데요. 자연 경관도 너무 아름답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따뜻했어요. 유적도 엄청났고요. 어디서든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모든 사진이 화보가 될 정도로 아름다웠죠. 마을이 작아서 그 곳 사람들과도 많이 친해졌어요. 매일 아침, 저녁마다 일출과 일몰을 보러 다녔는데 그 곳의 야자수와 태양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네요. 또 ‘조드뿌르’라는 지역의 자이살메르 성도 기억에 남아요. 성을 바라보면서 후배와 같이 맥주를 마실 때 벅차올랐던 감동 때문에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정시 씨 얘기 들어보니까 인도가 참 멋있게 느껴져요. 말로 듣기만 하는데도 감동이 밀려오는데요. 사람 얘기 좀 해주세요. 그 곳 사람들은 어떤지, 그 곳 문화는 어떤지요.

즐거운 추억이 참 많아요. 그 중에서 기억나는 것만 말하자면.. 바라나시에서 갠지스강변에 앉아 구경을 하고 있었어요. 강 한 쪽에 사람 시체가 둥둥 떠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한 쪽에서 아이들이 수영을 하며 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한테 저기 시체 떠있는데 수영해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저쪽이랑 이쪽은 다른 물이니까 괜찮다며 웃으면서 수영을 계속 했어요. 그런데 시체가 있는 쪽이 강 상류였던 기억이 나네요.

또 다들 아시겠지만 오른손과 왼손 사용이 다른 것도 실감했고요. 인도 사람들은 말할 때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요. 도리도리가 아니라 기우뚱기우뚱거리면서 말해요. 그래서 저도 한국에 돌아온 후에 사람들이랑 말할 때마다 습관이 돼서 고개를 흔들면서 말하게 됐어요. 가족들이랑 대화할 때도 그렇게 했더니 부모님이 저를 따라하면서 왜 그러냐고 하셔서 너무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인도는 모든 생활 하나하나가 신과 관련돼있어요. 제가 장사꾼한테 뭘 사고 돈을 내밀면 돈을 받아 신에게 기도한 뒤에 돈 주머니에 돈을 넣어요. 아침에 일어나서도 가장 먼저 마당에 특별한 기호를 그리며 신을 생각하죠. 모든 삶은 곧 신이에요. 또 여행 중에 델리 대학교 학생을 만나 얘기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 곳 대학생들은 술이나 담배를 아예 하지 않는다고 해요. 한국에서는 MT 간다고 하면 가평이나 대성리같은 곳에서 모여 술을 먹거나 하잖아요. 그런데 인도 학생들은 우리나라 북한산과 같은 ‘맥그로드 간즈’의 ‘트리운드’라는 곳에 다 같이 올라가 별을 보는 MT를 했대요. 너무 멋있었어요.

마지막으로, 인도 시인 티고르가 우리나라를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잖아요. 실제로 인도에 가보니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인도의 아침은 북적북적 시끄러워요. 사람들이 밤에 아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요. 그래서 아침이 깨끗하고 상쾌하고, 활기찼어요.

인도 음식이 궁금해요. 한국에도 인도 음식점이 많이 있지만, 현지의 음식은 또 다를 것 같아요. 어때요?

인도의 밀크티인 ‘짜이’는 인도 사람들이 하루에 몇 잔씩 마실 정도로 보편적이에요. 저도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었어요. 우리나라 요거트 같은 ‘라씨’도 정말 맛있었고요. 함피에 ‘망고트리’라는 유명한 식당이 있어요. 그 곳에 망고 라씨와 도피아자라는 이름의 카레는 정말 맛있어서 매일 가서 먹었어요. 

인도 향신료에는 ‘고수’와 ‘마살라’ 두 종류가 대표적이예요. 고수는 향이 너무 강해서 절대 못먹었고 마살라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먹을 만 했어요. 인도 가서 ‘고수’ 빼달라고만 하면 음식 먹을 때는 거부감이 없을 거예요.


정시 씨는 그 곳 사람이 아니고 여행자니까 여행 하면서도 실수나, 무서웠던 사건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때요?


캘커타에서 델리로 가는 기차 사건이 생각나네요. 델리에서 비행기를 그날 타야 했거든요. 기차를 놓치면 비행기도 놓치는 상황이었죠. 그 기차가 그 날의 유일한 기차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기차 시간을 착각해서 기차 출발하기 1분 전에 역에 도착한거예요. 저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소리지르고 울면서 ‘기차 어딨냐!!’고 날뛰었어요. 그런데 역무원이 오더니 기차가 연착됐다고 하는거예요. 그 때 정말 몸에 힘이 쫙 빠져서 그 더러운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한참을 울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같이 여행했던 후배가 젬베 위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더라고요.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또 깔깔대고 웃었고요. 

기차는 8시간이나 연착됐어요. 우린 41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결국 델리에 도착했는데, 거지 꼴을 하고 있었죠.

정말 정시 씨가 인도에 푹 빠졌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직도 인도 생각 많이 나죠? 한국인데도 말이예요.

맞아요.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됐을 때는 더 그랬어요. 오후에 뭘 사러 집 앞에 나왔는데 태양이 지고 있었어요. 태양 빛이 눈에 비치는데 잠시 여기가 인도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잘 안되더라고요.

인도 여행은 무조건 다시 할거예요. 후회하는 점이 있다면, 처음에 정말 아무 계획도 안 세워갔던거요. 그것 때문에 도착해서 낭비한 시간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철저하지는 않더라도 대충은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20대들에게도 인도 여행을 추천해주고 싶은가요?

당연하죠! 그런데 여자 혼자서 여행하는 건 좀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친구랑 둘이서 가거나 남자와 동행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돈을 좀 더 써서 좀 더 좋은 칸의 기차를 타거나 안전한 지역으로만 다니세요. 물론 혼자 여행하는 여성 여행자들도 많아요. 하지만 겁이 많은 성격의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거죠.

인도 뿐 아니라 어딜 가나 사람 조심은 꼭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느 곳을 가든 빛과 그림자처럼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잖아요. 처음 보는 사람이 과도한 친절을 베풀면 너무 경계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믿는 것도 금물이예요. 또 우리는 여행자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서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 사람들의 문화에 너무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것도 자제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인도에서 돈을 왼손으로 준다든지, 너무 짧은 옷을 입고 다닌다든지 하는 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주의할 수 있는 행동들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