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의 커피 값에 대한 논쟁은 이미 지겨운 소재다. '밥 한 끼'에 맞먹는 커피 값, 원가에 비해 터무니없는 폭리는 이대의 스타벅스 1호점이 생긴 이래로 꾸준히 지적받아왔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커피 한 잔'의 수요는 점점 늘어만 가는 모양이다. 신촌 일대에만 9개의 스타벅스가 영업 중이고 모든 매장에서는 시험기간 도서관만큼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불경기로 모든 산업이 침체인데도 왜 커피 산업만은 불황을 모르는 것일까?

낭만과 여유의 실종

▲[사진 1]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안의 스타벅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  (출처 : 웹진 이프)

 
 ‘낭만’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낭만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대로라면 ‘낭만’이라는 단어는 과거에나 존재하던 ‘고어(古語)’가 될지도 모른다. 대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캠퍼스 낭만의 대표 장소인 동아리방(동방)과 도서관도 스펙경쟁에 여유를 박탈당했다. 자기소개서에 도움이 되는 다른 대외 활동을 하기 위해 동아리에 가입하는 학생은 줄어들었다. 따라서 취미 생활을 즐기며 로맨스도 싹트는 낭만의 동아리방은 '논스톱 시리즈'에만 존재하게 되었다. 도서관 자료실에서도 이제 수험서나 어학서가 아닌 일반 도서를 읽는 학생들은 찾기 어렵다. 여유가 있던 도서관은 사라지고 서로에게 갑갑함을 유발시키는 공간만 남았다.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휴식이란, 놀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카페'에서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카페는 여유를 가질 시간이 없을 때 일상에서 느끼는 갑갑함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제공하는 공간인 것이다. ‘학교'에서도 부모세대와 함께 사는 '집'에서도 여유를 찾을 수 없는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낯선 타인들이 공존하는 커피숍에서만 혼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커피 한잔과 따뜻한 분위기의 조명은 내가 지금 '쉴 새 없이'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즐기고 있다는 최면을 제공한다.

유일한 만남의 장소, 카페

▲[사진 2] "나에게 필요한 건 너와 나 그리고 5달러"라고 말하며 공원에서 대화를 나누던 <청춘스케치>(reality bites)의 에단 호크와 위노나 라이더 

  친구와 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풍경은 헐리웃 영화에서는 익숙하지만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다. 길 가다 쉬거나 이야기를 나눌 벤치는 턱없이 부족하다. 도시의 거리들은 인파를 감당하기에도 버겁다. 접근성이 높은 카페에 비해 공원은 언제나 멀리에 있다. 결국 친구나 연인을 만나 이야기를 할 공간을 찾는 이들은 카페에 간다. 20대에게는 개인의 공간조차 없다. 집에 친구를 초대해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카페는 거의 '유일한' 만남의 장소다.

  '개인의 공간'과 '만남의 장소'가 없는 우리에게 스타벅스는 좋은 선택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보다 저렴하고, 주인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원두를 적절한 수준으로 볶을 줄도 모르는 ‘엔제리너스’와 커피향이 약한 ‘카페베네’같은 우리나라 프랜차이즈에 비해 맛도 좋고 값도 싸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걸로 '뉴요커'의 허세를 느끼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 되었다. 카페를 필요에 의해 찾게 되면서, 스타벅스는 ‘사치’가 아닌 '생활'의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누리던 여유와 낭만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그곳은 휴식시간에마저도 ‘일’이나 ‘공부’를 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전선이 되었다. 아메리칸 ‘쿨’함 의 대명사이던 스타벅스에 앉은 개인들을 보면, 이제 아메리칸 ‘쓸쓸함’만을 느낀다. 여유의 착각도 타인과의 교류도, 스타벅스의 한 잔에 커피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 세대의 외로움은 '된장녀'라는 이름에 가려 보듬어지지 않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