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비키니 시위 논란’은, 엄밀히 말하자면 ‘비키니 시위’에 대한 논란이 아니다. ‘비키니 시위’를 받아들이는 나는꼼수다 3인방과, ‘나꼼수 팬덤’의 ‘반응’에 대한 논란이다. 그러니까 ‘비키니 시위’를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거나, 자발적인 행동이니까 성 상품화가 아니라는 말은 이번 논란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부분인 것이다. 사실 나꼼수 3인방과 ‘나꼼수 팬덤’을 비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키니 시위’라는 행동 자체에 대해서는 가치판단을 한 적이 없다. 단지 ‘비키니 시위’를 독려하는 주진우의 ‘정봉주 접견민원 서신’에 대해서 처음으로 문제제기를 했고, 그것을 하찮고 시시콜콜하게 여기는 소위 ‘진보마초’들에 대한 추가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져서 논란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된 주진우의 서신을 보자. “여성부 관리대상 넘겨라!, 광주 부산 숙대 이대 모두...” (12월 27일) “면회 희망 여배우 명단 작성하라" "욕정 해결 방안 발표하라"(1월 13일), “관리 여성 명단 빨리 넘겨라. 폭로하기 전에” (1월 20일) “가슴 응원 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 (1월 27일) 한 달 동안의 서신에는 지속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시키는 부분이 존재했다. 또한 ‘비키니 시위’에 대해서도 ‘코피를 조심하라’면서 응원이나 시위로써의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단순히 ‘눈요깃감’으로써 본다는 뉘앙스의 글을 남겼다. 남성 나꼼수(또는 미권스) 팬덤, 즉 ‘진보마초’들이 비키니 시위를 받아들이는 방식 역시 주진우와 대동소이했다. 이렇듯 ‘진보마초’들에 의해 여성은 정치적인 동지가 아니라, 단순한 ‘진보 그루피’로 전락하는 분위기였다. 자신들이 투쟁의 주체가 아닌,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생각에, 여성들의 불만이 표면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번 논란의 두 가지 쟁점을 찾을 수 있다. ‘나꼼수의 마초성’과 ‘나꼼수의 성역화’다. ‘나꼼수 팬덤’은 여성들의 불만과 사과 요구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 팽배하다보니 여성들이 어떤 부분에 불쾌감을 느끼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쏟아지는 비판들을 그저 나꼼수에 대한 분열시도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들 스스로 비판의 요점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결계를 치고 나꼼수를 성역으로 만들어버리면서 그 안에서 속칭 ‘정신승리’하는 길을 택한다.

그러니 더 이상 ‘나꼼수 팬덤’과 논쟁을 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이미 그들에게 나꼼수는 ‘절대 선’이고, 나꼼수를 비판하는 모든 것들은 ‘절대 악’으로 규정돼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숙대 총학생회가 주진우의 서신에 대한 사과와 사실규명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뜬금없이 총학과 아무 관련 없는, 한영실 숙대총장이 한나라당 공천위원회 위원이라는 점을 들먹이며 숙대 총학을 비난했다. 심지어 운동권인 숙대 총학에게 ‘어용 총학’이라는 혐의를 씌우기도 했다. 거의 병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이분법이다. 이번 논란에 대한 삼국 카페의 입장표명 성명서에서도 “조중동 알바로 치부하려는 시각”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것이라는 일부 편협한 시각”에 대한 우려가 나타나 있다. 이것은 삼국 카페 회원들 역시 나꼼수식 이분법 공격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잘 보여준다.

전혀 진보적이지 못한 ‘성의식’을 가졌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비판마저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면서, 나꼼수와 그 주변 세력의 한계는 명백히 드러났다. 대중은 성역을 거리낌 없이 조롱하는 나꼼수를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 스스로 성역이 되어가고 있다. 성역이 돼버린 나꼼수가 계속해서 대중에게 환영받는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나꼼수의 미래가 어두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