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농담>에 등장하는 루드빅은 시덥잖은 농담이 적힌 쪽지를 잘못 건넨 뒤, 처절하게 곤두박질친다. 스무살 대학생인 루드빅은 방학 동안 자신과 함께 프라하에 남는 대신 공산당 연수를 떠나버린 마르케타에게 다음과 같은 쪽지를 보낸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빅.” 시종일관 진지한 마르케타를 놀려주기 위해 일부러 도발적으로 적은, 그리고 자신과 함께 방학을 보내지 않은 데 대한 유치한 투정이 섞인 세 마디의 농담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루드빅은 이 일로 인해 당에서 축출당하고, 학교에서도 쫓겨났으며, 함께 운동을 하던 친구들에게서도 외면당했다. 그리고 정치범으로 분류되어 광산 작업에 동원된다. 그가 프라하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15년 후였다. 그는 진심으로 공산당을 비판한 것도 아니었다. 루드빅의 죄는 단지, 농담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 농담은 농담이 아니라 죄였노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정근의 죄는 북한을 찬양 고무하는 게시물을 배포하였다는 것인데, 실은 나도 그 ‘찬양고무’ 게시물을 배포 받은 자 중 하나이다. @seouldecadance라는 계정을 팔로우하면서 나는 박정근의 숱한 개드립과 RT를 받아보았다.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박정근은 절대 북한을 ‘찬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박정근의 그 ‘농담’들은 뚜렷한 반북과 반-종북의 맥락으로 읽혔다. 박정근은 국내 정당 중에서도 가장 명확하게 북한 정권에 반대하는 사회당의 당원이다. 이러한 사실을 검찰이 몰라서 박정근을 구속수감했다면, 이건 아주 큰 문제다. 우리나라 검찰이 그 정도로 게으르고 멍청하다는 뜻이니까. 다행히도(?) 검찰이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아서, 이러한 정황을 알면서도 박정근을 잡아갔다면, 이는 결국 박정근의 죄가 결국 북한 찬양 고무가 아님을 반증한다. 그의 죄는 그저 자유롭게 농담을 했다는 것이다. 
 

 농담이 맘에 들지 않으면, 재미없어, 하나도 안 웃겨, 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모든 농담이 다 재밌고 유익하지는 않다. 예를 들자면 나꼼수의 비키니 응원 사진 관련 농담이 그렇다. 그러나 농담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을 잡아다 가둘 수도 있을까? 가장 불쾌하고 가장 유치한 농담이라 할지라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불쾌하고 유치한 농담에 대해 다시금 비판할 권리 역시 누구에게나 있다. 표현의 자유는 시민이 누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무나 지겨울지도 모르겠는 말이지만,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다. 박정근의 농담이 맘에 안 들고, 웃기지도 않고, 혹은 너무 유치하며 너무 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치하고 과하고 웃기지도 않는다고 비판하면 된다. 그러나 이를 감시하고 구속하고 처벌할 수는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말이다.

 <농담>에서 루드빅의 삶을 뒤흔드는 두 가지의 농담은, 마르케타를 놀려주기 위한 짤막한 세 마디의 ‘농담’, 그리고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상황 바로 그 자체이다. 박정근은 농담에 부연설명을 달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기에,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한 세습정권에 가장 일관되게 반대를 표명하고 있는 정당인 사회당의 당원인 박정근이 북한을 희화화하는 트윗을 올렸다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수감되는 이 상황 자체가 사실 이 사건에서 가장 우스운 지점 아닐까. 그러나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이 거대한 농담은 실재하는 한 개인의 삶과 응당 누려야 할 시민의 기본권을 너무나 철저하게 파괴하고 있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곳이 살기 좋은 나라다. 적어도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면, 루드빅을 수용소에 처넣은 것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