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진정한 스토리 텔러, 신동흔 교수



스토리텔링이 범람하는 시대. 그러나 우리는 넘치는 이야기들 속에서도 자꾸만 갈증을 느낀다. 너무 먼 길을 돌아와서다. 밖에서 들여오고 따라가기에만 급급하다 지쳐 ‘스토리텔링’의 개념 자체가 흐지부지해진 지금, 정작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우리의 이야기들은 어디에 있을까. 다행히도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구비문학의 체계도 희미하던 그 시절부터 전국을 발로 뛰며 살아있는 ‘스토리’들을 모아왔고 이제는 ‘텔링’까지 몸소 실천하고 계신 건국대학교 신동흔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신동흔 교수님 (사진 출처 : 신동흔과 함께 여는 구비문학 고전문학 세상)



오늘날 구비문학, 즉 이야기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내가 대학생일때는 구비문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어. 지금도 그렇지만 보통 문학이라고 하면 당연히 문자로 된 것을 생각하잖아. 그래서 원래는 현대문학쪽을 전공하려고 했는데 하려는 사람도 많았고,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이라서 막막했어. 대세나 흐름에 이끌려 일을 하게 되고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어서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 동양사학을 전공한 친구가 적성에 맞지 않아 의대에 다시 들어가겠다는 얘기를 했어. 그 말에 난 충격을 받았고, 그러면서 다시 생각을 해보니 구비문학쪽이 내 길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4학년 1학기때 처음 구비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말로 된 문학, 설화, 민요들도 문학으로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거든. 수업도 상당히 재미있었고. 그래서 그 이야기를 담아내고 살려내는 것이 내게 맞는 일이고, 앞으로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어.

학생 신분으로 직접 채록에 뛰어들었을 때 처음에는 조금 막막했을 것 같은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내가 생각보다 겁이 없고 무작정 부딪히는 성격이라고 해야 되나? (웃음) 처음엔 녹음기 하나 들고 여기저기 다녔었지. 파고다 공원 가면 얘기 잘 하는 사람 많더라, 하는 얘기를 들으면 가보고, 탑골공원에도 가보고 하는 식으로. 문전박대도 많이 당하고,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문득 시골로 가자,는 생각이 들어 계룡산 근처 지역부터 시작해서 전국을 다니기 시작했어. 마을의 이장님들께 그 마을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에 대해 묻는 사전조사 설문지를 미리 보내고 답장이 오면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었지.

컴퓨터가 없던 시절인데, 어떻게 채록하셨어요?

당시에는 가난한 시절이라서 카메라도 없고, 녹음기만 하나 가지고 다녔지. 그래서 사실 90년대까지는 답사 때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어. 큰 가방에 책과 테이프를 넣어 짊어지고 여름에 땀도 많은데 땀 뻘뻘 흘리면서, 겨울에는 눈보라 헤치고 가서 허탕도 치고, 그렇게 마을마다 다니며 이야기를 채록했어.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경험이 나에게는 소중한 과정이었고 학문적으로도 기초가 된 것 같아.

 

탑골공원에서 채록을 하고 계신 교수님의 모습(사진 출처 : 신동흔과 함께 여는 구비문학 고전문학 세상)


지금도 채록을 하고 계신가요?

 제자들과 함께 계속 진행하고 있지. 전국 도시의 공원들을 돌아다니며 쓴 <도시전승신화연구>, 시집살이 관련 자료집 등이 나왔고 현재는 12월부터 한국전쟁 체험담 조사를 시작해서 답사를 다니고 있어. 요새는 설화는 얘기를 해주실 어르신들이 안 계신 관계로 현지조사가 많이 어려워졌는데 그래서 많이 아쉬워.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거니까.

채록을 하시면서 보람있었던 일이 있으세요?

정말 이야기를 잘 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거의 인간문화재라고 해도 될 만한 이야기꾼을 만날때는 정말 행복하고 보람있어. 정리하지 않았으면 사라졌을 문화의 현장을 내가 듣고 남긴 것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탑골공원 이야기판의 경우 현지조사를 하지 않았으면 그 판 자체가 사라진 지금은 아무도 이야기 문화의 가치를 알 수 없지. 문헌 같은 경우에는 분석을 지금 하지 않더라도 나중에라도 다시 들춰서 할 수 있잖아. 그렇지만 말은 사라지니까.

 
기억나는 일화가 있으신가요?

예전에 안성 쪽에 답사를 갔다가 굉장히 이야기를 잘 하시는 임철호라는 이야기꾼을 만났는데, 특히 ‘금강산 여행기’를 정말 재미있게 하셨어. 그래서 기억에 남아서 나중에 다시 뵙고 싶어 연락을 했는데 이미 돌아가셨더라구. 그런데 나중에 어떤 분이 연락을 해왔어. 따님이시라는데 인터넷에서 우연히 ‘임철호 구연’이라는 자료를 발견하셨다고, 혹시 녹음한 자료를 갖고 있냐고 하셨어. 그래서 바로 복사를 해서 보내드렸지.

그러고 생각해보니까 자손들 입장에서는 돌아가시고 잊어버렸던 아버지의 음성을 되찾은 거잖아. 근데 그 음성이 그냥 음성도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너희 할아버지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셨다 하는 정말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더 보람 있었던 기억이 나네.

 

우리나라 100대 유익한 개인 홈페이지에 선정된 교수님의 홈페이지. 주소에 쓰여 있는 것처럼 (http://gubi.co.kr) '구비'로는 가장 유익한 홈페이지 일 것이다.




구연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교수님께서는 힘들게 수집하신 자료를 홈페이지를 통해 아낌없이 나누시는데
아깝지 않으세요?

(교수님께서는 2001년부터 ‘신동흔과 함께 여는 구비문학 고전문학세상’(http://gubi.co.kr) 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계시며 고전 원문 등 다수의 유익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유익한 100대 개인 홈페이지’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고전을 전공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참 행운이야. 고전이 가지고 있는 가치나 재미, 이런 것들의 크기에 비해 실제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조금밖에 되지 않거든. 그러다보니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상당히 많아. 내가 고전을 공부하면서 발견하고 느끼고 나름대로 얻은 가치들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 그게 또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발견한 가치를 사람들이 쉽게 느끼고 체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쓰고 해석을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그 역할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해.

 
나누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나는 주로 설화, 전설, 민담, 신화 등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연구하는데, 이런 이야기들은 시대성을 넘어선 보편적 가치, 예컨대 인간이나 세상, 존재에 관한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나 거기에 대한 다양한 탐구, 그리고 답변을 담고 있는 자료들이 많아. 오랜 세월과 많은 사람들을 거치며 걸러지고 발전된 문학이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그래서 연구하다보면 처음에 몰랐던 가치도 보다보면 새롭게 알게 되고, 즐겁고 감동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이 생겨나서 자연스럽게 풀어내게 된 것 같아.

그리고 한편으로는 현장에서 (문화,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함께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왔어. 그래서 무용극 <흥부>등의 작업도 하게 되었고, 작품 해석에 관한 것도 만나서 토론하기도 하지. 지금도 페이스북 등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분들과 인연을 맺고 공동작업도 진행하고 있어.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옛 이야기를 해석하는 작업은 계속 진행할 예정이야. 지금까지처럼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지금은 학문적인 것이 비중이 크겠지만 앞으로는 ‘진짜 이야기를 찾아내는 작업’에 조금 더 비중을 두려고 해. 나아가 그런 이야기를 창조하는 작업도 나중에 도전해볼 거고.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진짜 이야기’는 무엇인가요?그런 이야기를 만드시려는 이유는요?

예전에는 오감을 표현하며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장르가 소설이었는데 지금은 그 역할을 영화, 게임 등의 매체가 대신하고 있잖아? 그러다보니 예전에 소설에서 가장 큰 미덕이었던 ‘리얼리티’가 큰 경쟁력을 얻지 못하게 되었어. 아직까지 표현하지 못한 소설 속 리얼리티도 언젠가는 영화가 따라가게 될 거야.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영화와 기술, 모든 문화들을 이끌고 선도해나갈 수 있는 역할을 이야기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된다고 생각해. 그런 이야기는 잠깐 맛들이는 그런 스토리가 아니라, 다시 음미 해봐도 가슴이 움직이고 재미가 우러나는 그런 것이어야 하지. 또 그런 이야기들이 보편성을 갖고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명작이 되고 결국 고전이 되는 것이니까. 이제 그런 이야기가 무엇인가가 관건이 될 텐데, 그것의 바탕은 고전이 되는 거야.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스토리의 원형이 이미 우리의 옛 이야기에 있다는 거지.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 사람들에게도 ‘10년 후에 세상을 놀라게 할 작품을 쓰겠다’고 이미 공포를 해 놨으니까, 한 번 노력해보려고!^^


 
‘스토리텔링’에 관한 책을 읽어 보면 항상 빼놓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진정한 스토리텔러는 마음으로 소통해야 한다.”

 마음으로 소통한다는 말은 사실 상당히 추상적이다. 그러나 신동흔 교수님께서는 20년간 직접 발로 뛰며 모아온 무수한 이야기들과, 그런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나눈 10여년의 세월로, 그 우직한 걸음을 증명해오셨다. 이런 교수님이 우리 시대 진정한 스토리텔러가 아닐까. 끝으로 교수님께서 홈페이지를 오픈하실 때 직접 쓰셨던 자기소개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마무리해야겠다.

 


... 그뿐이랴. 항상 이 몸집 버겁도록 글 빚 뭔 빚 한 짐 짊어진 신세. 오늘도, 원고 독촉 겁나게 받고 왔지만 그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더냐. 짐짓 여유만만~ 논문도 좋고 세미나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문학이란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즐겁고 진진한 소통이어야 한다는 그런 믿음으로, 이렇게 밤을 밝히며 나눔의 장을 꾸민다. 팔은 갈수록 얼얼해지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 덧붙이면, 이야기는 정말 가까운 곳에 있다. 시작이 어렵다면 수많은 설화와 민담들이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교수님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신동흔과 함께 여는 고전문학 구비문학 세상 - www.gub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