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나치 치하에 있던 독일은 게토(ghetto)를 만들어 유태인을 격리시켰다. 유태인을 독일인과 분리시키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들도 빼앗아 국가에 귀속시키거나 일부 독일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게르만 민족보다 열등하다 여겨졌던 유태인이 독일에서 번 돈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자스민 국회의원 당선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이런 심리에서 나온다. 국제혼을 통해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게 싫다는 것이다. 합법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음에도 말이다. 이 당선자가 백인이 아닌 우리보다 피부가 어두운 동남아시아 출신이라는 점도 논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노르웨이 출신인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 박노자 교수가 당선 됐어도 이 같은 논란이 일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사실 보다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나아가 외국인혐오를 뜻하는 제노포비아(xenophobia)가 국민들 속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 이 당선자에 대한 논란의 배경인 것이다. ‘이민자를 국회의원으로 만든 새누리, 다음엔 게이 국회의원 만들 것인가’라는 말까지 들린다. 이는 당장 버려야 할 선입관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 같은 선입관을 가졌다면 김용 다트머스대 교수가 세계은행 총재로 지목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 교수가 세계은행 총재 후보가 됐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정작 이 당선자를 인정하지 않는 건 너무나 이중적이다.
 

새누리당 소속으로 비례대표에 당선된 이자스민 씨 ⓒ 세계일보


더 큰 문제는 이중적인 모습이 진보적 성향을 드러내는 정당의 지지자들에게서도 나온다는 사실이다. 인종차별에 '너나'가 없다는 뜻이다. 보통 제노포비아의 바탕이 되는 민족주의 이념은 보수 정당에서 표를 얻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민 규제 강화 정책을 내세우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보수 성향의 새누리당이 이 당선자를 당선이 확실시 되는 비례대표 15번에 공천했다. 이주노동자나 다문화가정 등 소수자를 대변하고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진보 정당들이 먼저 나섰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진보성향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유시민도 못 들어간 국회에 이자스민이 들어가다니”같은 말을 하며 진보의 가치들을 부정하고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이에 대해 “이자스민 후보의 정치적 입장과 자질에 대한 비판은 필요한 것이지만 인종차별주의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자스민 씨의 당선이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준 셈이다. 

이 당선자를 둘러 싼 논란들 속에서 우리는 파시즘의 전조를 본다. 국회의원의 자격을 묻는 곳에 인종에 대한 편견이 개입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세계2차대전 당시 독일·이탈리아가 과거의 먼 나라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다. 당장에 이웃 나라 일본도 극우주의자인 하시모토 도루가 도지사에 당선되고 반한 운동이 격화되고 있는 처지다. 이자스민 당선자에 대한 제노포비아 속에 우리는 일본을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야권과 그들의 지지자들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을 통해 민간인 사찰을 자행한 이명박 정부를 나치에 비유했지만 우리는 이 당선자에 대한 공격 속에서 ‘우리안의 히틀러’를 발견한다.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일련의 움직임을 경계하여, 한국 사회에서 게토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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