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어려서부터 나는 목소리에 약했다. 말 그대로 ‘약했다.’ 목소리만 듣고 마음에 품었던 사람을 세기에 다섯 손가락만으로는 부족하니 이만하면 말다했다. 그 시작은 아마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당시 배우 최강희가 진행하던 라디오를 듣다가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의 목소리를 듣고 그와의 결혼을 결심했었다. 그것도 지극히 일방적으로. 하지만 얼마 못가 다른 목소리에 반했고 그렇게 나는 여러 명의 ‘목소리’를 거쳤다.

그러니 내가 <보이스 오브 코리아>(이하 보코)에 빠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제목부터 ‘Voice'였다. 게다가 ’오직‘ 목소리만 본다니! 넘쳐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 허우적대다 진이 빠진 내가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시작부터 달랐다. 오직 목소리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코치(심사위원)진들은 등을 내보였다. 그들이 뒤돌아 앉아 참가자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오직 목소리, 하나였다. 그러니 부족한 노래 실력이 예쁘장한 외모나 뛰어난 춤 실력으로 덮어지거나 연습과 다음라운드를 등가 교환하는 형식의 모습은 발견할 수조차 없었다.

이런 프로그램의 명확한 취지 때문일까. 참가자들은 다양한 이유들로 목소리를 앞세웠다. 이미 가수로 데뷔해 앨범을 발매한 경력이 있는 사람, 외모로 인한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 보컬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등등. 어느새 목소리가 가수의 자질에서 첫 번째가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들은 언저리를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연예 시장이 원하는 외모, 나이 등의 '+a'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리도록 차가운 연예계에 소외되며 느끼게된 간절함은 열정에 무게를 더했고 그들만의 ‘+a'가 되었다.

게다가 생방송과 함께 그들의 탄탄함은 더욱 빛을 발했고 <보코>는 자신의 색을 더 진하게 풍겼다. 바로, 오로지 그날의 무대만이 중요하다는 것. 즉,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특정 참가자의 팬덤이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K-pop star>의 이승훈이 톱4가 될 때까지 살아남았던 것과 <슈퍼스타K2>에서 강승윤이 ‘곱등이’라는 별명을 달고 톱4에 포함되었던 것과는 달리 냉정하게 ‘목소리’만으로 다음 라운드의 진출자는 결정되었다. 강타팀의 정나현이 빅마마의 <여자>로 톱8에 진출한 것은 ‘오직 목소리’라는 <보코>의 외침을 잘 드어낸 예이다.

영상매체가 발달하면서 시각적인 것을 무시할 수 없게 된지 오래다. 가수들은 단지 노래만 잘해서는 안 되게 되었다. 어느 각도로 카메라 앵글에 잡히든지 예뻐야 하고 잘생겨야 하고 날씬해야 했다. 그렇기에 깔창을 깔아 6등신에서 7등신이 되는 것처럼 1등신이 높아지는 것에 집착을 하고 한낱 직선에 불과했던 눈이 약간의 검은 칠으로 두 세배 커지는 화장술에 매달린다. 이러한 때에 <보코>의 등장은 파격적이었으며 섹시하기까지 했다. 망각하고 있던 ‘뿌리’를 흔들어서 보고 있는 사람을 멍하게 만들었다. 만일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이리오시라. 우리 함께 손잡고 돌아올 <보코>를 향해 뜨거운 안녕을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