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철의 '북아현 뉴타운개발지구' ⓒ www.hani.co.kr


 

이 그림을 보자마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할까 궁금해졌다. 가깝게 그려진 인물부터 한 명 한 명 세다가 결국 세어보기를 포기하고 말았던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만화작가 최호철의 그림 <북아현 뉴타운개발지구>다. 몇 발자국 뒤로 가서 보일 듯 말 듯 표현된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는 작가의 섬세하고도 정밀한 표현력에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을 감수할 만큼 작가는 여기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표정을 빠짐없이 담아내고 싶었구나!

<여기 사람이 있다>. 지난 6월 15일부터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이 주제로 기획전시를 하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활동한 예술가 100인의 주요작품을 모은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기획전인데, 전시된 작품들을 엮어나가는 하나의 실은 바로 ‘사람’이다. 작품을 창조하는 작가 역시 사람인데, 과연 이들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어떻게 객체화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하지만 작품 속의 사람들은 수동적이지만은 않다. 때로는 관람객의 눈을 정확하게 응시하며, 때로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마도 그들 안에 있는 삶의 경험들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모두 전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살아가다보면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짐을 느낀다. 매일 만나던 사람들과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을 이어나갈 때가 있다. 그런 우리에게 이 전시회와의 만남은 신선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천천히 둘러봐도 두 시간이 안 되는 관람 시간 내에 티베트 설원에 서 있는 볼이 발간 어린 아이와 눈을 맞춰볼 수 있고, 일평생 자연과 벗하며 살아온 것을 증명하듯 흙같이 그을린 농부의 주름살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또한 과거의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 어두운 일제강점기 때 흰 가운을 입고 실험을 하는 신여성의 모습이 선명하게 인식되기도 하고, 광주 망월동 묘지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이들과의 애통한 대면의 시간도 가져볼 수 있다. 
  
걸음을 옮기며 한 작품을 대할 때마다 제목을 먼저 보지 않고 사각의 프레임 또는 특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들여다보자. 그리고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상상해보자. 그 상상의 끝에서, 그 사람들과 같은 배경에 서서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려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실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얼마나 상대방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나 싶어 갑자기 민망한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그렇게 깨달았다면 실제 생활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전시회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소소한 깨우침을 선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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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방학을 맞은 그대에게 이 특별기획전에 가보기를 권유한다. 8월 26일까지(월요일 휴관) 대전시립미술관 1, 2, 3 전시실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당신의 시야를 넓혀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작품에 서려있는 그 때 그 사람들의 삶과 감정에 집중하다보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람들의 일상보다 더 다양한 색채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화사하고 밝은 색이든 쓸쓸하고 어두운 색이든 상관없다. 결국 우리 삶의 장면들은 그렇게 다양한 색채로 하나씩 완성되는 것이니까. 전시회를 관람한 후 다리가 아프다면 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한 조그마한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작품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잔상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