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녀가 가고 간장녀가 왔다고 한다. 몇 주 사이에 주요 언론 매체들은 된장녀와 간장녀를 비교해 후자를 치켜세우는 같은 프레임을 가진 기사들을 쏟아냈다. 6월 15일자 <동아일보> B1면에 처음 보도된 이후 다른 매체들에서도 반복적으로 기사를 받아쓰기 시작했고, 지난 22일 방영된 SBS ‘세대공감 1억 퀴즈쇼’의 문제로 출제되면서 ‘간장녀’가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급기야 26일에는 종합편성채널 MBN의 뉴스에서까지 간장녀가 아이템으로 다뤄졌다. 간장녀는 그야말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한 단어라고 볼 수 있는데, 네이버 오픈사전에서도 동아일보 보도가 나온 다음날인 16일에 등재됐을 정도다.

간장녀는 짠맛이 나는 간장처럼 짜게 소비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란다. 자기과시보다 실속을 중시하고 발품과 정보력을 활용해 같은 제품을 남보다 싸게 사는 데 능한 특성이 있다고 하며, 무조건 아끼는 게 아니라 ‘현명한 소비’를 한다는 점에서 짠순이와는 다르다고 한다. 언론들의 보도만 보면 몇 년 전까지 분수에 맞지 않는 자기과시적 소비를 하던 된장남녀들이 어느 순간 간장남녀로 바뀐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게다가 간장남녀의 소비 행태가 ‘바람직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 SBS



그러나 간장녀로 지목된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은 정작 이런 호명이 어색하기만 할 것으로 보인다. 쿠폰을 활용해 아끼는 소비를 해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갑자기 ‘합리적 소비’의 모델로 주목되는 것이 이상할 테다. 게다가 명품선호와 된장녀가 한 물 갔다고 하는 언론의 진단과는 달리 여전히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매우 흔하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의 ‘간장녀’에 대한 반응도 냉담하다. ID kyuu012 씨는 “많이 쓰면 된장녀, 적게 쓰면 간장녀 어쩌라는 거냐”고 일갈했고, 네이트 ‘베플’에서는 “신조어 좀 갖다 붙이지 말라”는 분노를 볼 수 있었다.

<동아일보>의 최초 보도에서부터 ‘간장녀가 뜬다’는 근거를 터무니없이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백화점의 쿠폰 매출 신장률, 패밀리레스토랑과 화장품 업계의 실속 메뉴 출시,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의 중가 브랜드 입점 등이 기사가 제시하고 있는 근거인데 이것은 소비자의 행태라기보다는 기업의 전략에 가까우며 소위 ‘간장녀 트렌드’가 없던 시점에도 항상 존재하는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객관적인 연구 결과도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된장녀는 가고 간장녀가 왔다는 성급한 일반화는 어딘가 찝찝한 점이 많다. 당장 기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간장녀들도 쿠폰을 이용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고가인 패밀리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즐기고, ‘200만원 대’ 실속형 명품 백을 소비한다. 어딘가 앞뒤가 안 맞다.

간장녀라는 개념을 띄워 놓은 언론의 다음 행보는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15일자 프런티어타임즈에서는 간장녀 트렌드를 소개함과 함께 뷰티업계의 알뜰 마케팅을 소개하며 특정 회사의 ‘대용량 신제품’을 소개했다. 19일자 스포츠조선과 아시아투데이는 비슷한 맥락에서 외식업계 할인 행사를 소개했고, 21일 SBS CNBC 방송에서는 브랜드 ‘로만손’의 중저가 핸드백 사업이 소개됐다. 22일 동아닷컴도 대용량 화장품 출시 소식을 전했다. 이제야 ‘듣보’였던 간장녀를 온 세상에 알려지게 한 배후가 보이는 것도 같다. 결국 간장녀라는 단어를 띄워서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기업들의 욕망 때문 아니었을까. 그들의 이익에 제대로 봉사한 꼴이 된 언론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