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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로 학자금 대출을 신청했다는 양윤주(20)씨와의 인터뷰를 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마음에 콕콕 박히는 말들이 무척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를 만큼 인상적이었다. 스무살이라는 한없이 맑은 나이의 그녀는 겨우 다다른 대학문을 완전히 통과하기 위해 국가에 ‘손을 벌렸다’고 했다. 왠지 그 표현에 가시가 박혀 있는 것 같아 재차 물었더니 “손 벌린 거죠 뭐. 굳이 비교하자면 되게 지독한 사람, 그러니까 고리대금업자한테 사정사정해서 돈 빌린 거나 마찬가지예요.”라고 똑 부러지게 받아친다.

 그녀는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며 깔깔거리며 웃었던 기억도, 심장을 철렁하게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도 했던 성적에 대한 에피소드도 참 많았다며 정든 고등학교 시절을 먼저 이야기했다. 그땐 무조건 공부만 하면 됐으니까 집안 사정이 안 좋다는 걱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단다.

 “근데 그건 그냥 제가 망각하고 있던 거잖아요? 우리집이 잘 못 살고, 다른 집보다 벌어들이는 수입이 적다는 거, 그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데 바보같이 까맣게 잊고 있던 거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떡하니 대학에 붙어 버렸고요.”

 그녀는 최고의 명문 사학으로 꼽히는 여대에 입학할 예정이다. 피부로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무시무시한 등록금 앞에서 잠시 좌절하고 또 한숨을 내쉬었다고 회상했다. 취업 후 상환제로 빌리려면 좀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해서, 가족들과 깊이 상의하지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합격 발표 후 다급하게 취업 후 상환제로 학자금을 빌렸고 일단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불은 끄게 되었다.

 학자금 대출을 하고 난 소감을 물었더니 “소감 같은 게 있어요? 당연히 절망적이죠.”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굴하지 않고 집요하게 절망적인 이유를 캐물었다. 그녀는 갚아야 할 돈이 생겼다는 것, 그 액수가 만만치 않다는 것보다 하나로 고정될 것 같아 불안한 자신의 미래를 먼저 걱정했다. 이러다간 자기가 정말 하고 싶어 했던 일은 꿈도 못 꾸고 접어버릴 것 같아 두렵다면서 말이다.

 “제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좀 있는데, 그렇다고 더러운 정치판에 몸 바칠 생각은 없거든요. 우연히 시민단체에 대한 책을 읽다가 그쪽에 확 빠져버렸어요. 직업으로 삼게 될 지 말 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여튼 깊이 고민하고는 있어요. 근데 학자금이라는 미해결 빚이 있는 이상은, 마음껏 좋아하는 일 못할 것 같거든요. 어디 좋은 대기업에 취직해서 돈 금방 벌어 빨리빨리 해치워야 할 것만 같잖아요. 아니 그래야만 하잖아요,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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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빡세게’ 일하고 현장에서 부딪치며 몸으로 살아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배우고 싶었던 그녀는 그 패기를 제대로 보일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아니 이미 아주 많이 움츠러든 것 같다고 고백했다. 입학하자마자 토익/토플은 기본이고 회화까지 휘어잡으려는 너무나 뛰어난 동기들을 보며,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회사에 들어가 번듯한 사회인이 된 선배들을 보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생각이 과연 무엇이겠냐고 오히려 되물어 왔다. 한 1년 정도는 휴학을 해서 각지 여행도 다녀 보고 싶고, 무급이라도 좋으니 시민단체에서 실무를 배우며 내공을 쌓고 싶은데 막상 부닥친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그래도 요즘은 아예 무급으로 사람들 부리고 하진 않아요. 전 낫죠, 사정이. 하지만 만약에 진짜 공부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있으면 어떨까요? 알다시피 학자가 돈 많이 벌어요? 그것도 무슨 성과를 내거나 논문이 히트를 치거나 이래야 되는 거고, 그거야말로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게다가 석/박사 따고 유학 가고 하면 돈 쓸 일이 천지죠. 걔네는 그럼 단지 가난하단 이유로 꿈을 반쯤은 접고 시작해야 한단 소린데, 완전 불공평하죠.”


 자기보다 더 안타까운 상황에 빠져 있을 사람들을 먼저 걱정하고 나서는 스무살. 마냥 어린 나이가 아니기도 하지만, 왠지 세상이 이 소녀들을 더 빨리 철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귀 기울여 들어 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취업 후 상환이라는 건 결국 당장 짊어질 고통을 뒤로 미루는 것에 불과한데, 그게 엄청난 해법이라도 되는 듯 떠들어대는 언론이나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화자찬하는 정부 측이나 다를 게 없다며 날카롭게 꼬집을 때는 그 예리함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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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죽은 목소리에서 위축된 새내기의 모습이 비쳤다. 무지개빛 다양한 꿈의 가능성을 한 길로 몰아버리고는, 얌전하게 공부에 열중해 안정적인 취업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는 어른들의 세계에 질려버린 듯했다. 의젓하고 예민했던 윤주양의 마지막 말로 짤막한 인터뷰를 맺으려 한다. “돈을 빌리더라도 그것 때문에 제 꿈과 미래가 저당 잡히지는 않길 희망해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