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다 보면 사람의 유형은 언제나 비슷하게 유형화된다. 칭찬만 해주면 칭찬에 부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 어영부영 중간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 대놓고 아무것도 하지는 않는 사람. 가장 무서운 유형은 본인은 아무 것도 안 하고 남에게 지시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첫날부터 팀장을 맡겠다고 손을 들고는 과제를 분배하기 시작한다. 팀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므로 무언가 많이 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분배밖에 없다. 예를 들어보자.

대학친구 A와 B와 C는 공모전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다. 광고제이기 때문에 광고를 기획하고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A는 이 팀의 팀장을 맡고 있다. A는 B와 C에게 각자 해야 할 일들을 분배해 주었다. B는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 힘들다고 A에게 토로한다. A는 고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어쩔 수 없지. 마감기한을 늘려줄게. 대신 스토리보드는 그리지 말고 프린터기로 깨끗하게 뽑아와.” B는 마감기한이 줄어든 것에 대해 고마워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 날 오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B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우리는 한 팀이고, 공동 프로젝트인데, A가 하는 일은 뭐지?’


Q :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를 도입하려는 목적이 뭡니까?

A : 학교를 다닐 때에는 등록금 마련 부담 없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2009년 7월 30일 14:30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개최된 대학생 간담회 내용 기반 가상 질문]


네가 말하는 부담이 백지영의 부담은 아니겠지~♪


지난 7월 이명박 대통령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ICL) 도입을 발표했다. 학자금 상환을 취업 이후 일정 소득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반환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정부는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가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덜어준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담의 의미는 무엇일까? 부담은 국어사전에서 “어떠한 의무나 책임을 짐”으로 정의하지만, 맥락적 의미는 다르다. 정부가 의미하는 등록금 부담은 대학을 가고 싶으나 당장 돈이 없어서 대학을 갈 수 없을 때 가지는 등록금 부담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면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는 매우 좋은 제도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해결해달라고 주장하는 ‘등록금 부담’의 의미는 말 그대로 너무 비싼 등록금 실질부담액이다. 여기에서 정부와 학생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발생한다.

무엇을 해결책으로 제시해줄 것인가. 원인에 대한 분석이 다르므로 그에 대한 해결책도 다르다. 정부가 생각하는 등록금문제의 원인은 대학을 가고 싶어도 당장 돈이 없어 갈 수 없는 문제이므로, 학생 때에는 등록금을 받고 취업 후 갚으면 된다는 당근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등록금 자체가 아니라 내는 액수가 크다는 데에서 부담을 느낀다. 당장 빌린다 하더라도 취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지면 상환액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저한 인식 차이 속에서 우리는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피하고 학생에게만 등록금 문제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B가 순진하게 A의 기간연장 허락을 받고 기뻐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자를 취업 후에 내라는 허락을 받고 순진하게 기뻐하는 건 아니냐는 것이다. 화장실에 앉은 B의 머릿속에 슬그머니 떠오르는 의심과 같다.


등록금은 국가의 책임도 일정 부분 존재

등록금 문제의 주체는 학교와 학생뿐 아니라 정부를 덧붙인 삼각체제이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라는 진부한 표현은 접어두겠다. 전국에 360여 만 명의 대학생이 있다. 대학 진학률은 무려 85%에 이른다. (통계청) 여기에서 대학생 진학률을 줄이고 직업학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 실현성이 없으니 논외로 하자.

85%의 고등학생들이 대학생으로 진입한다. 자연스럽게 대학을 가지 않으면 1차적으로 사회의 주류에서 배제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대학의 의무교육化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구조에서 등록금 문제는 더이상 소수의 문제라든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고 보니 사립대학이라 하더라도 국가의 지원이 불가피하다. 고등교육법은 제7조 1항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학교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지원·보조할 수 있다.’라고 정해두고 있다. 특정 대학의 이득을 취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게 아닌 대학 전체의 운영보조를 위한 국가의 재원 보조가 절실하다.

http://www.pressian.com/article/...ion%3D03


결국 등록금은 경제논리에.

등록금넷의 안진걸 간사는 “OECD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 비율을 대폭 확대할 것을 맹렬히 촉구”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보조금 비율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급에 속한다" 고 주장한다.

정부는 대학 설립자와 수익자에게 교육비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학은 법인 회계나 기성회비로만 운영회비를 충당할 수 없으므로 등록금에 기대게 된다. 결국 등록금은 학생의 책임으로 넘겨진다.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수익자부담의 원칙’이다. 언제부터 대학은 경제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된걸까.

우석훈씨는 이에 관해 제도 자체가 나쁘지는 않으나 “전체적으로 등록금을 현저히 낮추는 방향으로 틀이 가야하는데, 상환제도를 통해서 대학이 무분별하게 등록금을 높이는 것에 동조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대학들이 등록금을 높이는 것을 강화하거나 적어도 인상시도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등록금 상한선인 150% 내에서는 자율로 인상가능하게 된 것이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는 결국 모든 책임을 학생에게 혹은 대학에게 넘기는 꼴이다. 정부가 가지는 책임은 외면한 채 약간의 편의만을 제공하고 결국 학생과 대학에게 책임을 넘기는 꼴이다. 결국 등록금을 오르고 또 오를 것이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는 엄연히 좋은 제도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최고조에 다다른 등록금 문제를 조금 완화해 준 것 뿐이다.

앞의 B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적어도 아무것도 모르고 일만 하는 C가 되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