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스무살이 된 나는 올해 서울에 있는 제법 유명한 대학교 사회과학계열 학생으로 입학하게 됐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12년의 지루한 공부가 끝났다,고 마침표 찍고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는 게 대학생활을 앞둔 스무살의 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낭만적인 꿈을 꾼 것 같다며 현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학금까지 합하면 400이 훌쩍 넘는 거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한, 내가 정상적으로 등록금을 납부하며 학교를 다니기는 어렵다는 걸 왜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대학 등록금보다 2번 더 내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때 내던 운영회비가 훨씬 더 가볍게 다가온다. 휴, 그래도 얼마 전부터 TV에서 그렇게 떠들던 '취업 후 상환제도'인지 뭔지가 있으니까 대출해서 가면 되겠지. 개그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처럼 '국가가 나에게 해 준 게 뭐가 있어!'라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금세 입을 다물게 됐다. 대학 가는 게 말 그대로 무한경쟁이 되어버린 지금, 이 고난을 뚫고 나왔으면 적어도 대학에 다녀볼 수 있는 기회는 줘야지. 아직 우리나라에 상식이 통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홈페이지(http://www.studentloan.go.kr)에 들어갔다. 팝업창을 끄고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취업 후 상환제도와 일반 상환제도, 장학금 신청 등의 메뉴가 있었다. 나는 신입생이니까 당연히 취업 후 상환제도를 선택해야 하는 거겠지? 음, 그러고 보니 꼭 그래야만 할 필요성은 없었다. 대강 비교해 보니 취업 후 상환제는 대학 다닐 동안에는 학자금대출에 대한 부담에서 아예 벗어나게끔 해 주는 거였다. 이자조차 안 갚아도 되니까. 그렇지만 졸업 후 일단 상환기간이 되면 그때부터 원금+이자를 같이 갚아나가야 했다. 게다가 상환기간이 되고 나서는 복리 적용된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럼 일반 상환제도로 해 볼까, 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정해진 금리 5.7%로만 신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장학금 받을 때도 쓰였던 의료보험비 내역에 의하면 아마 저리2종이나 저리1종 정도는 받을 만한 형편인데, 딱 잘라 하나로만 해야 한다니 답답했다. 어려운 살림에 쉽게 돈이 생길 리 없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보다, 내가 착실하게 돈 벌면서 갚는다는 식으로 희망찬 결론을 내린 후 결국 취업 후 상환제도를 택했다.







 우리학교 기준으로 보니, 입학금이 936,000원이고 수업료가 3,446,000원이었다. 작년 기준이라 철렁했지만 신문에서 얼핏 올해도 등록금을 동결했다는 기억이 났다. 그럼 같은 기준일 테고 내가 빌려야 하는 돈은 총 4,382,000원이었다. 거의 450에 가까운 큰 돈이었다. 그나마 올해는 동결했으니 다행이지 내년에 오르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학자금 상한제라는 게 생겨서 물가상승률의 1.5배 이상 올리면 대학에 불이익을 주게끔 만들겠다는 정책도 나왔다. 많이 줄어든 건가? 물가가 3% 오르면 등록금은 4.5%까지 오를 수 있다는 말인데- 없는 집 자식인 내가 볼 때는 순수 수업료만 350에 달하는 지금도 버겁기만 하다.


 솔직히 말해 등록금 동결이야 잠깐 있는 ‘특이한 현상’일 뿐이고 매년 조금씩이든 많이든 무서운 줄 모르고 올랐던 게 등록금 아니던가. 내년 예상 인상률을 4.5%로 가정하면 3,446,000원의 4.5%는 155,070원이니 실제로 내야 하는 금액은 3,601,070원이다. 360만원대로 진입한 것이다. 내후년에 물가상승률이 조금 덜해서 절반인 1.5%고 등록금 인상률이 3%라고 치면 3,601,070원의 3%가 108,032.1원이니까 총 금액은 3,709,102.1원이 된다. 한 해에 10만원씩 뛰는 건 일도 아니라는 기세다. 그럼 마지막 4학년 때 물가상승률 감안해 등록금이 5% 올랐다고 치면 3,709,102(편의상 0.1원은 빼고)원의 5%가 185,455.1원이 되니, 결국 3,894,557원을 내야 한다. 처음 입학할 때와 비교해 448,557.1원이나 오르게 된다는 소리였다. 그냥 단순 가정을 해 보았을 때가 이 정도니 더 높게 오르면 얼마나 더 큰 빚의 압박을 지게 될까, 하고 생각했다.


본 기사에 등장하는 10학번 학생의 가상 현실에 맞추어 계산해 본 2014년 상환액은 3454만원이다. 이 금액은 매년 다시 복리로 이자가 붙어 수십년에 걸쳐 상환하기에도 부담스러운 금액이 되어버린다.



  마음이 싸해졌다. 내가 여지껏 고생해서 바늘구멍만큼이나 좁아 보였던 입시의 문을 뚫었는데, 기다리고 있는 건 이렇게도 차가운 현실의 벽이라니. 등록금이 저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것보다 억울한 건, 내가 져야 할 짐의 무게가 처음 합의한 것보다 크다는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돈이 없어서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렇게도 가엾은 나는 빚을 갚을 때 왜 하나도 가볍지 않은 이자까지 챙겨줘야 하는 거지? 그게 2% 이하의 저리라면 불평도 안 할 텐데 5.7%가 기본이라고 한다. 난 얼마만큼 오를지도 모르는 무서운 등록금을 빌린 후에는, 젊음을 무기 삼아 열심히 돈을 벌어 원금과 그에 따라 붙는 얄미운 이자까지 모조리 갚아야 한다. 등록금 계산만으로 머리가 아팠는데 이자까지 따져 보려고 하니 이제 막막하기만 하다. 당장 학교에 등록하지 못하나 하는 걱정으로 마음 졸였는데 간사한 나는 어느새 ‘이걸 어떻게, 언제 다 갚지?’ 하는 새로운 고민에 빠져 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본 한 동갑내기는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기분입니다’라고 했다던데‥ 내가 지나치게 비관적인 걸까? 나에겐 고마운 동아줄이 아니라 4년으로 기한이 정해진 시한폭탄인 것만 같다.


 애써 번 돈에서 단칼에 원천 징수되는 내 젊은 날의 빚들. 등록금을 내리려는 시도는 간 데 없고, 동결의 움직임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린 해결책은 좀 더 용이하게 대출하는 법이 전부였다. 이 의심스러운 동아줄에 대해 한번쯤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함20의 기사가 다음 메인페이지에 실렸습니다 :-)
많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


2월 3일에는 티스토리 메인페이지에도 실렸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