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에 서서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본다. 벌써 아침 8시 30분이다. 9시에 시작하는 계절학기 1교시 출석체크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시험성적만큼 출석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기로 유명한 교수님 수업이기에 지각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7호선 면목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건대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41분. 43분에 출발하는 2호선 내선순환을 타야만 한양대역에 48분에 도착할 수 있다. 역에서 강의실까지 뛰어가는데 10분이 걸리니까… 반드시, 기필코 2분 안에 2호선 플랫폼까지 가야만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빨리 타기 위해 면목역에서부터 최단 환승 지점 1-1에 탄 나는 빠르게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좋다. 이제 빨리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오늘도 지각을 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이 여자가 도통 걸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뒤에서 눈치를 줘도 도대체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결국 뒤에 있던 아저씨가 한마디 하셨다. “거, 참 바쁜데 좀 빨리빨리 갑시다!” 그러자 그 여자 뒤를 돌아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2007년 서울 도시철도(5~8호선)에서 시작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두줄서기 캠페인은 1년 뒤인 2008년, 서울 메트로(1~4호선)에서도 본격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한줄서기 캠페인을 시작한지 정확히 10년만의 일이었다.

빨리 이동해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시작된 에스컬레이터 한줄서기 운동이 두줄서기 운동으로 환승한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 번째는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면서 발생하는 에스컬레이터의 고장을 줄이기 위한 것이고, 두 번째는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걷거나 뛰는 행위로 인해 미끄러지는 사고의 예방을 위해서다. 실제로 에스컬레이터의 안전사고 중 대부분이 걷거나 뛰다가 발생한 사고다. 따라서 두줄서기를 통해 좀 더 안전하게 에스컬레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 두줄서기 캠페인을 시행하는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코레일, 인천지하철 등의 의견이다.

특히 어린이나 노령자들은 에스컬레이터에서 움직이는 경우 사고에 더 취약해진다. 손잡이를 잡지 않고 걸어가면서 바지나 신발이 끼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대처능력이 부족해서 사고가 났을 때에도 재빨리 대처하지 못하고 더 심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승강기 검사 및 관리에 관한 운용요령' 3절 이용자 준수사항에는 '이용자는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즉 핸드레인을 잡고 있어야 하며 디딤판 위에서 뛰거나 장난을 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줄서기 운동이 캠페인 2년만인 2000년도에 이미 자리를 잡았고 2002년에는 대표적인 ‘지하철 에티켓 문화’로 손꼽혔던 것과 달리 두줄서기 운동은 좀처럼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7월 24일 오전 10부터 11시 사이 그리고 오후 4시부터 5시 사이, 건대입구역 7호선 에스컬레이터(2호선으로 환승하는 인구가 많고, 에스컬레이터의 길이가 길다)를 관찰해본 결과 두줄서기, 즉 양쪽모두 서서 올라오는 경우는 4건이 그쳤다. 이 또한 시민들이 두줄서기를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줄서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경우였다. 4건 모두 에스컬레이터 왼편에 흰머리가 희끗하신 노인분들이 서계셨다.

그렇다면 왜 두줄서기가 제대로 시행이 되지 않는 것일까? 우선 많은 사람들이 두줄서기보다 한줄서기에 대헤 훨씬 긍정적이다. 한줄서기를 찬성한다는 대학생 김연지씨(22)는 “특히나 사람도 많고 바쁜 아침시간에 두줄서기보다는 한줄서기로 바쁜 사람들은 빨리 걸어서 올라가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서서 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아름씨(26)는 “유럽에서도 한줄서기를 한다”며 “에스컬레어터의 속도가 훨씬 빠른 곳에서도 한줄서기를 당연하게 하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두줄서기를 장려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즉 이미 시행된 두줄서기 운동과 대척점에 놓여있는 한줄서기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가 두줄서기를 상대적으로 불편하다고 느끼게 한 것이다.

또한 두줄서기를 하려고 해도 주위의 반응 때문에 두줄서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윤대영씨(24)는 “두줄서기를 하다가 뒤에 있던 아저씨에게 험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그 이후로는 두줄서기를 하지 않았다. 걸어서 올라가기 싫으면 기다려서라도 오른쪽에 선다”고 말했다.

반면, 아예 두줄서기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한 중년의 어머니는 “원래 지하철을 많이 타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두줄서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옛날에 티비에서도 한줄서기하라고 했었는데, 한줄서기가 맞는 거 아니냐”며 되묻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홈페이지에서 게시된 사고통계와 에스켈레이터의 현황 통계를 비교해보면 두줄서기의 실효성에 더더욱 의문이 든다. 각 년도의 사고 발생 횟수를 에스컬레이터의 총 보급 개수로 나누어보면 한줄서기 캠페인을 시작한 1997년도 이후보다 두줄서기 캠페인을 시행한 2007년 이후의 사고율이 현격하게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한줄서기로 인한 사고율이 높아졌기 때문에 2008년도 이후에 두줄서기 캠페인을 장려하여 낮아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2008년도가 비정상적으로 사고율이 높았기 때문에 제외한다고 해도 2007년도와 2009년 이후의 수치가 그 2006년 이전과 비교해서 높은 것으로 보아 두줄서기가 과연 안전의 측면에서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인가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이미 우리는 한줄서기에 적응되어 있다. 바쁜 사람들을 위해 한 줄을 내어주는 것이 당연한 배려로 인식되었다. 이렇게 잘 정착된 정책을 두줄서기로 무리하게 바꾸는 것 보다 한줄서기를 장려하면서도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늦추는 식으로 모두가 편리하면서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