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남탕에는 드라이기도 공짜고, 수건도 쌓여있어서 맘대로 쓸 수 있다며?!”
“으잉? 당연한거 아냐?”
“여탕은 드라이기 100원에 2분이고, 수건은 2장 지급해주고 끝이야. 그리고 비누, 치약 등이 비치되어있지 않은 곳도 많아.”


 

이성간에는 서로 이해하기 힘든 특징, 문화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목욕탕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5살쯤 엄마 따라 들어갔던 여탕의 희미한 기억밖에 없기에 그저 똑같은 장소에 여자들이 있다는 점만 다르겠지 않겠냐고 유추해볼 뿐이다. 그런데 문화라기 하기엔 이상한 여탕만의 특징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꽤나 놀랐다. 바로 '수건을 2장만 지급'하는 관행이었다. 남탕에서 드라이기를 동전 넣고 쓰게 하면 다들 선풍기로 머리를 말릴 것이고, 수건은 제한을 두지 않아도 많이 써봤자 2~3장이다. 여성들은 보통 머리전용 수건, 얼굴전용 수건, 몸전용 수건을 쓴다고 하니 최소 3개에서 최대 4개 정도 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생긴 제도는 아닐 것이다. 

여탕은 어쩌다가 이렇게 이상한 제도가 도입된 것일까? 2006년 불만제로에서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 당시 여탕에만 수건지급을 제한적으로 하는 것에 대해 여성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불만제로의 조사결과 전국50곳의 여탕 중 10%에 해당하는 5곳만이 남탕과 차별 없이 수건을 무제한 제공하고 있었다. 목욕탕 업주들은 “수건을 제한 지급하는 것은 여탕의 높은 수건 분실률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고 제한을 두지 않으면 수건을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따라 불만제로는 한 목욕탕에서 남탕과 여탕에 똑같이 무제한 수건을 지급하고 분실률을 살펴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남탕은 95%이상의 회수율을 보인 반면 여탕은 80%에 불과했다. 목욕탕 업주들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대해 네티즌 ‘ㅌㅌㄹ’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살림을 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챙겨가는 것으로 보인다. 걸레로 쓰기에 목욕탕 수건만큼 좋은 게 없다고들 하더라”며 아줌마본능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일부 목욕탕에서는 수건의 분실방지를 위해 ‘훔친수건’이라는 로고를 박거나 분실방치 칩을 다는 등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소비자고발


수건뿐만이 아니다. 남탕에는 당연히 있어야할 비누, 치약 등도 여탕은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코인형 드라이기는 백번 양보해서 한명이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두자. 종합해보면 여탕에 비치되어있는 모든 용품은 ‘훔쳐질 용품’이라는 낙인이 찍혀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에는 여탕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업주들에게 모두 도둑으로 여겨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회수율이 80%라면 20%의 도둑을 제외한 80%의 여성은 억울하게도 예비범죄자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건 분명 잘못된 것이며,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가 이런 사실을 인지해야한다.

실험결과는 마치 수건을 제한적으로 지급하는 것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반대로 해석해야한다. 소수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인해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이용상의 불편함과 함께 예비도둑취급당하고 있는 것이다. 홍제동에 거주중인 조아라(25)씨는 “실제로도 집에 가져가 걸레로 쓰는 아줌마들을 많이 본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예비도둑 취급받는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 나쁘다. 1차적으로는 도둑질하는 수요자 잘못이지만, 그 짐을 모두에게 짊어지게 하는 제도도 문제인 것 같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꽤나 오래 전부터 관행으로 굳어져 아무 생각 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여탕의 수건지급문화이다. 그 외에도 여탕에는 갖춰져 있어야 할 것들(샴푸, 비누, 치약)이 많이 없다. 여탕에도 칫솔만 들고 갈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