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무것도 안 샀다니까요!”
“캐리어 올려보세요”
“아, 진짜 바쁜데 짜증나게…”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객이 절정에 달한 요즘, 공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랑이다. 나라안팎의 경기침체와는 관계없이 해외여행 예약률은 작년에 비해 30%가량 증가해 실제 해외여행자 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늘어난 건 여행자 수뿐만이 아니다. 지난 9일 인천국제공항은 올 6월까지 세관 신고 없이 면세한도를 넘긴 물품을 들여오다 적발된 건수가 지난 해 1만6753건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난 4만 9034건이라 밝혔다. 

이에 따라 관세청은 7월 16일부터 8월 31일까지를 특별단속기간으로 정하고 여행자 휴대품 검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 기간 동안 휴대품 검사비율을 현재보다 30%정도 늘리고 해외 주요 쇼핑지역 여행객에 대해서는 전량 개장검사를 실시하는 등 면세한도 초과 물품에 대한 검사가 강화될 방침이다.

세관검사 ⓒ 헤럴드경제

"단속 강화하기 전에 면세 한도부터 높여라"
이 소식이 전해지자 대부분 검사 자체는 수긍하면서도 ‘면세 한도가 너무 적다’며 불만을 표했다. 김수영 씨(23)는 “면세점이 말 그대로 세금을 면해준다는 건데, 400불(한화 약 40만원)로 제한을 두는 게 아이러니하다”며 “유명 브랜드 화장품이나 지인들 선물로 이름 있는 브랜드의 핸드크림 같은 걸 몇 개만 사도 금방 20만원이 넘어간다”고 했다. 김 씨는 “(공항 면세점에서만 그 정도 돈이 드는데) 해외 여행지에서 기념품 조금 사면 40만원 넘는 건 순간이다”며 “우리나라에서 비싼 물건을 외국에서 싸게 살 수 있는 게 해외 쇼핑의 장점인데, 결국 세금을 또 내야하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했다.

윤현희 씨(23) 역시 면세 한도를 조금 올렸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윤 씨는 “요새 물가를 고려했을 때 40만원은 너무 적다”며 “웬만한 고가품 하나만 사도 40만원은 쉽게 넘어가는데 현실적으로 한도를 높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실제로 면세한도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쭉 400달러를 고수해왔다. 17년 전과 현재의 물가 상승률과 국민소득 등을 비교했을 때 400달러 제한은 현실과 동떨어진 감이 있다. 이러한 비판과 불만이 거세지자 작년 7월, 정부는 면세한도 상향조정을 검토한 바 있다. 당시 관세청은 정부가 면세한도 범위를 두고 600~1000달러 사이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달 뒤 관세청이 ‘원점 재검토’로 입장을 번복하며 면세한도 상향조정이 무산됐다. 관세청은 "면세한도 상향조정이 내수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지 않고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 특정계층에 면세혜택을 높여 과세 형평성 및 조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유를 밝혔으나 직접적 계기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내수활성화를 위한 국내여행’을 강조하는 국정운영방침에 어긋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400불, 적당한 것 같다"
반대로 이대로도 괜찮다는 의견도 다수 있다. 양명진(25)씨는 면세한도 40만원이면 괜찮다고 본다. 양 씨는 “비행기 값 내고 외국 나갈 정도면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거 아니냐”며 “그런 사람들이 관세 조금 내는 걸로 아까워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최누리 씨(24) 역시 같은 입장이다. 최 씨는 “내 입장에서야 세금을 적게 내면 좋지만 외국으로 돈이 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 제한을 두는 거니까 한도가 적던 많던 크게 상관없다”며 “오히려 세관 신고 감시를 더 철저히 해서 정당하게 세금을 내는 게 맞다”는 의견이다.

남태경 씨(24)는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서 기준을 정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남 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치가 심한 편이니까 객관적인 지표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하나의 지표로 삼았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은 2400달러, 대만은 680달러로 우리나라의 400달러보다 높다. 그러나 더 낮은 국가도 많다. 대표적으로 캐나다는 59달러에 불과하고 스위스는 316달러, 싱가포르는 234달러에 그친다. 이렇듯 면세한도는 나라별로 천차만별이라 어느 한 곳을 따르기가 쉽지 않다.



"면세한도 높이고 국민 수준도 높여야"
 

면세한도 기준을 높이는 일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기준을 높이려니 경기침체가 걸리고, 이대로 400달러를 유지하자니 여행객들의 볼멘소리가 높아만지는 실정이다. 

남태경 씨는 면세한도 조정에 앞서 ‘우리 인식 변화가 먼저’라고 한다. 남 씨는 “면세점만 봐도 우리나라 공항이 세계 1위 수준으로 살 게 많다는데 이게 뭘 의미하겠나”며 “우리의 문화가 조금 잘못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남 씨의 지적대로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면세 혜택을 ‘휴대품’이 아닌 ‘사치품’을 구매하는 데 이용한다. 관세당국은 관세가 면제되는 술이나 담배, 향수 같은 ‘휴대품’만 놓고 보면 400달러 제한이 결코 낮은 게 아니라며 여행객들이 단순 쇼핑품에 대해 면세를 요구하니까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는 걸 감안할 때, 40만원은 명품 가방이나 화장품 같은 고가의 물건들이 아니라 여행의 기분을 내기위한 기념품이나 선물만 사기에도 빠듯한 금액이다. 17년 전의 40만원과 지금의 40만원의 쓰임새가 확연히 다른 상황에서 정부와 관세청이 언제까지고 여행객들의 면세한도 상향조정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