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다. 흔히 생각하는 ‘시위하는 사람’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고, 심지어 그 흔한 학생회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진보정치나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있는 보통의 25살과 다를게 없었다.

그러나 여행 차 제주도를 갔다가 강정마을에 들른 뒤, 그의 삶은 약간은 달라졌다. 그는 "눈 앞에서 본 강정마을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여기 해군기지가 지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이후에 그는 팔자에도 없는 유치장 신세도 지었고, 여행이 아닌, 법원에 가기 위해 제주도를 가게 되는 일을겪기도 했다. 평범했던 대학생이, 경찰에 연행되면서까지 강정마을에서 시위를 하게 된 까닭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태풍이 오던 날, 인터뷰 내내 강정마을에 태풍피해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이상은(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씨를 만났다.

이상은씨

 

Q. 얼마 전에 제주도에 갔다 왔다고 들었다.

강정마을에 간 것이 아니라, 제주도 법원에 갔다. 지난 겨울에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업무방해죄로 피고인 소환이 되었기 때문이다. 같이 시위 했던 사람들과 1차 공판을 받고 왔다. 비싼 돈 주고 비행기 타고 갔는데, 공판은 십분도 안 걸렸다. 증인심문은 다음 공판 때 한다고 하니, 10월에 또 가야 한다.
 

Q. 당신은 운동권도 아니고, 강정마을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에 속해있지도 않았다. 왜 강정에 가서 시위까지 하게 된 건가?

작년 여름에, 혼자 여행해본 경험이 없는지라 2주정도 제주도 여행을 갔다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여행가기 전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 하셔서, 제대로 된 루트를 짤 시간이 없었다. 별 생각 없이 무작정 가려다가 출발 전날 불현듯 이슈가 되고 있는 강정마을의 ‘진실’이 무엇일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3일째 되던날에 강정마을에 갔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구럼비 바위 위에서 매일 열리는 미사가 있었다. 천주교 신자이다 보니 거기 잠깐 참여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 거기 있는 부스(관광객들에게 강정마을 소식을 알리는 책자 등을 나눠주는 곳) 에 앉아서 바다를 보는데, 그곳에서 보는 제주바다가 너무 아름다운 거다. 하루 이틀정도 더 있어보고 싶었다. 마침 봉사자분이 여기 왜왔냐고 물어봐서, 내 뜻을 말했더니 며칠 더 머물러 보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1주일 동안 강정마을 생활을 했다. 


Q. 1주일동안 무슨 일을 했나?

작년 여름만 해도 구럼비 바위 위에 텐트가 있었다. 거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주로 내가 한 일은 부스를 지키면서, 강정마을 입장에 대한 홍보물을 나눠주고, 설명해주는 역할이었다. 그러면서 봉사자들하고도 많이 친해졌다.

 

Q. 농성하다가 유치장에 간 건 겨울의 일이다, 겨울에 강정마을을 다시 찾아간 건가?


작년 9월부터 구럼비 바위 안으로 못 들어가게 펜스가 쳐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고, 내 삶에 치이면서 살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더욱 안타까웠다. 그래서 학기를 마치고, 서빙 알바해서 모은 돈을 모아서 겨울에 다시 강정마을에 갔다.

겨울에 강정마을에 갔을 땐 분위기가 바뀌어있었다. 사람들도 많이 지쳐있었고, 공사도 많이 진행이 됐던 상황이었다. 그냥 나는 똑같이 부스에서 일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구럼비 바위를 지키는 거였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쳐있는 봉사자들을 챙겨주고 싶었다.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별로 없었다. 제주도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니까...

어쨌든 불법 공사를 막고 싶었다. 그래서 연행되던 날도 매일 아침 공사장 정문 앞에서 하는 ‘생명 평화 백배 기도’를 평소처럼 했다. 그 후에 나는 1인시위를 하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연좌농성을 하고 있는데, 경찰들이 갑자기 잡아간다고 방송을 하고 연좌농성 하는 쪽으로 막 몰려왔다. 나도 바로 연좌대열에 끼어서 그냥 잡혀들어 간 거다.

 

Q. 그 당시에 왜 불법 공사였나?

구럼비 바위에 대한 공사권한은 우근민 도지사한테 있었다. 그 분이 총선을 의식해서인지,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도 공사가 계속 진행되더라. 해군쪽이 그런데 이걸 밀어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해군 측에서는 공사가 10% 이상이 진행이 되면 되돌릴수가 없기 때문에 공사를 한다고 했다. 도지사가 중지하라고 했는데도 계속 공사를하고 있었으니까 불법 아닌가.

 

Q. 유치장에 처음 가서 꽤 많이 놀랐겠다.

나보다는 부모님이 더 놀라셨다. 통지서가 의외로 빨리 집으로 배송이 되어서, 부모님이 너무 걱정을 하셨다. 어쩔수 없이 예정보다 빨리 집으로 올라왔다. 지금도 어머니가 너무 걱정을 하셔서 강정마을에 가서 장기간 머물기가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강정마을 사람들하고 연락 하고 있고, SNS를 통해서 꾸준히 강정마을의 소식을 듣고 있다.

이상은씨에게 온 체포구속통지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Q.  이제는 앞서 말한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나.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절차의 문제와, 환경 문제 두 가지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 내가 본 진실이었다. 그러므로 해군기지공사를 중단하고, 강정마을에 평화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Q.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공사를 승인할 때도 절차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원래 전남 화순과 서귀포 위미리가 검토되었고 처음에 강정은 후보지에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민 1900여명 중 강정마을 전 이장과 해녀 할머니 87명만 마을회관에 모여서 임시마을회의를 열고, 단지 박수 몇 번만으로 해군기지를 승인한 것이다. 강정마을은 풍림콘도가 들어오는데도 일곱 번 이상의 마을 전체 회의를 했던 곳이다. 그런데 정작 해군기지 승인은, 공문도 나오지 않고, 마을 주민들도 대부분 모르는 상태에서 전 이장의 주도하에 처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중에 700명 가량이 모여 제대로 주민 전체투표를 했다. 그때는 반대표가 90% 정도 나왔다. 하지만 정부나 그쪽 (공사 주최하는 회사 측)에서는 그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처음 했던 승인 절차가 정당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공사를 진행한 거다.

지금 이 문제 때문에 강정마을이 두 개로 갈라섰다. 가족끼리, 동네 주민끼리 서로 싸운다. 형이 찬성인데 동생은 반대면 같이 제사도 안 지낸다. 서로 만나면 욕하고...정말 조용하고 평안한 마을이었는데 마을 자체가 무너지게 생겼다.

 

Q.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지어지면 환경 훼손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강정마을 앞바다 구럼비 바위 앞은 유네스코, 국토해양부, 제주도가 지정한 ‘절대환경보존지역’이다. 그러나 보존지역 지정 역시, 제주도 의회에서 날치기로 없애버렸다. 구럼비 바위 자체도 제가 우리나라에서 1.2km로서 가치가 있고, 그 앞에 있는 보호해야할 환경생물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자연을 이런 식으로 훼손할 수는 없다.

 

Q. 평화를 위해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전면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나는 해군기지가 안보에 의해 필요하다면,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휴전상태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다만 안보를 위한답시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정당화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강정마을은 해군기지로 입지도 좋지 않은 곳이다. 제주도에서 허락한 이유가 강정이 하와이 같은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계획되어 15만톤 크루즈 두 대가 동시에 입항이 가능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 지금 해군과 제주도 의회간 논란이 일고있는 상황이다. 만약 제대로 된 시뮬레이션 결과 크루즈 두 대가 들어오지 못한다면 제주도측에서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또 군대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기지가 은폐엄폐가 되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강정마을은 서귀포 최남단에 가장 튀어나와는 곳이다. 적이 미사일을 쐈을 때 막을 방법도 없는 곳이다. 그런데도 이미 공사가 시작됐으니 끝까지 기지를 지으려고 하는 것이다.
 
 

Q. 문제가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도 왜 지으려고 하는 것 같나?

아무래도 돈이 걸려있는 문제일 테니까. 기지 짓는데만 1조 이상 들어가고, 크루즈선 하나 만드는데는 2조 이상이다. 삼성과 대림등 (공사 참여하는) 기업들은 해군기지 강행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해군 쪽에서도 기지건설에 관여한 군인들은, 공사를 강행시켜야 공을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나.
 



해군기지 문제는 이념적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Q. 현재 대법원에서 해군기지 건설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상태다. 많이 안타까울 것 같다.

계속 공사가 진행된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앞으로 민주주의 무시하고, 환경적 측면도 나몰라라 하고 ‘이렇게 해도 된다’는 하나의 예로 받아들여 질까봐 그게 참 불안하다. 제2의 강정마을이 안 생기리라는 보장이 없다.


Q. 해군기지 논란이 의외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이념적인 문제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터넷에서 본 글 중 가장 황당했던 것은 “종북좌파들이 와서 군사기지를 막는 것을 방해한다. 전쟁이 나면 어떡할 거냐” 이런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나 자신이 중도라고 생각하고, 보수 진보 나누는 것도 안 좋아한다. 지킬 것이 있으면 보수가 되어야 하고, 고쳐나갈 것이 있으면 진보하면 된다. 어르신들의 불안감을 이해는 하지만, 이 문제는 정말 이념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Q.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활동할 생각인가?

앞서 말했다시피 부모님의 걱정이 심하셔서, 제주도에 오래 머물기가 힘들다. 그래서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 보신각 앞에서 서명 운동 받고 있는 것을 도와준다든가, 봉사자들에게 자주 연락을 해서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정도가 내가 할 일이 될 것이다. 또 금전적인 여유가 있으면 강정 쪽에서 귤을 사온다든가 아니면 거기서 팔고 있는 엽서, 목걸이 등을 살 것이다. 그리고 종교인으로서, 기도할 것이다.

이 인터뷰 하는 이유도 조금이나마 강정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많은 사람들이 강정마을에서 벌어지는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특히 나와 같은 20대들은 한 번 강정마을에 가서 눈으로 보고 진실을 판단했으면 한다.
 
 

Q.  만약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중단시킨다는 공약을 내세운 대통령 후보가 있다면 지지할 의사가 있는가.

공사를 중단시킨다고 해서 적극지지하진 않을 것이다. 그건 그 정치인의 성향중 하나일뿐 아닌가. 단순히 그 공약만 보고 5년을 맡길 수는 없고, 종합적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일단 개인적으로 원하는 대통령상은 ‘국민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있고, 국민들이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는 대통령이다.


Q.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먼저 강정마을 이야기를 하자면 공사가 중지되고, 강정에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꿈을 이야기하자면 ‘사랑하면서’ 살고 싶은 거다. 특정 개인만 아니라, 자연이나 사람, 그 모든 걸 사랑하면서 살고싶다. 그리고 무슨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무엇을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지는 아직 방황하는 시기라 잘 모르겠다. 여행을 통해 많은 걸 보고 듣고 느끼면서 나를 찾는게 우선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