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름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이었다. 정치적 스탠스를 보면, 사회적 약자를 귀히 여기고 노동 문제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분노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국인은 ‘배달민족’이라더니, ‘외국인 노동자를 우대하는 정책은 안 된다’고 한다. ‘다문화’가 우리 사회에 퍼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단다. 좌익과 파시즘의 결합. 그 끔찍한 혼종에, 절로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진보 운동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백가지 천가지 생각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한국 같은 제 3세계 국가에서는 사회주의 역시 반제(反帝)투쟁의 무기였으며 탈식민주의적 민족주의 아래 복속해왔다.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우리민족끼리’ 슬로건이 결혼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에도 적절한 결합인지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존중받아 마땅한 약자’의 지위에서 배제되거나 진보진영 속에서 목소리를 잃게 된다면 그때도 우리는 우리의 투쟁을 정당한 것으로 여길 수 있을까? 

그래서 고함20은 우리가 호명하는 ‘청년’ 속에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이 포함되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마사회 일산지점에서 후원하는 <다문화 한국어 교실>을 찾아, 한국에 건너온 지 갓 열흘하고도 하루가 넘었다는 중국교포 고봉춘씨(23)를 만났다. 자본주의엔 국경이 없다. 불황은 바야흐로 전세계적 이슈다. 한중 양국의 젊은이들에게 앙등하는 교육비와 가혹한 취업 경쟁, 불투명한 미래는 공통의 언어다. 고함20은 고씨에게 ‘타국에서 당분간의 생활을 설계할 20대 청년으로서 느끼는 솔직한 감상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Q. 한국에 오게 된 까닭은?
A. 어머니가 한국에서 홀로 오래 생활하셨다. 올해 대학을 갓 졸업했는데, 어머니가 ‘한국으로 건너와서 같이 지내자’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셔서 중국으로는 돌아올 작정이 아니셨다. 어머니와 오래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어쨌거나 일단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기왕 왔으니 2~3년 정도는 있을 생각이었는데 가만 보니 그걸론 부족할 것 같아서 최소 4~5년 정도는 한국에서 지낼까 한다. 



고씨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취업이 굉장히 어려운 전공은 아니었다. 중국에서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어머니를 몇 년 간 모시는 것이 우선이었다. 고씨는 아직, 어느 나라에서 터를 잡게 될지 모른다. 당장 생각에는 5년 정도 일한 뒤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회사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중국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창업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사업하기엔 한국 시장이나 경제 구조에 정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중국에는 한국보다 기회가 많다고 고씨는 생각한다. 경제가 성장해 소비 시장이 크고 일단 중국에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Q. 일자리를 구했다던데? 전공과 관계있는 일인지?
A. 정확히 그것은 아니지만 관계가 있는 일이다. 작은 공장에 취직했다. 공장에는 중국에서 건너와 일하는 사람들이 이미 매우 많다. 그 가운데 중국교포들은 환영받는다. 교포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한중 양국 언어를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한국어를 완벽히 익혀서 일반인과 의사소통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조선족이기 때문에 한국어 교실에 있는 여느 외국인과 달리 한국어를 빨리 습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년이면 충분할 것 같다. 한국어에 능숙해지면, 사람들을 사귀고 싶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 


Q. 그럼 일상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는 뜻인지?
A. 집에 돌아오면 말을 배우기 위해 한국 영화를 주로 본다. 밖에 다니고도 싶지만 일단 지리를 모르니 길을 잃을까봐 겁이 난다. 아니면 역시 한국 TV를 본다. 그러면 아무래도 말이 빨리 늘 테니까. 이따금 인터넷으로 중국의 친구들과 채팅을 하기도 한다. 


Q. 한국에 건너온 중국인이 이미 적지 않을텐데, 커뮤니티 같은 것은 없는지?
A. 있을지도.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건너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도 하고.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이처럼 의도하지 않은 고립은 흔한 문제다.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르포 <이주, 그 먼 길/ 이세기 저, 후마니타스>에도 상당수 외국인 노동자들이 네트워크 외부에 고립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배우려 해도 일에 치여 여윳시간이 없기 때문에 취업한 외국인들은 그들대로 숙소-회사-숙소의 쳇바퀴 속에 갇히며, 외국인 노동자를 부모로 둔 자녀의 경우에는 집이 그들 세상의 전부가 된다. 시스템 외부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Q. 연말엔 한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취업에 애먹거나 창업을 꿈꾸는 대다수 청년의 한 명으로 정치인에게 요구하고 싶은 게 있다면?
A. 방금 말한 ‘커뮤니티’ 같은 것이 아쉽다. 그런 모임들이 활발하게 생겨났으면 좋겠다. 2030만 모아도 좋지만, 나이는 상관없을 것 같다. 외국인이 한국에 건너올 때 관청에서 수속을 밟는 것이 있다. 등기를 하면 외국인 신분증 같은 것을 준다. 갓 건너와서 모든 것이 낯설 때 그런 기관에서 어딜 가면 이런저런 커뮤니티가 있다던지, 생활에 도움이 되는 작은 팁 같은 것을 알려주면 좋겠다. 


Q. 좋은 생각이다. 그런 커뮤니티가 막 한국에서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물질적/금전적 혹은 정신적인 지원을 해 줄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인가?
A. 그렇다. 하지만 꼭 무슨 사업을 할 필요는 없다. 사실, 몇몇 개인이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몇 만분의 일에 불과한데, 그것으로 국가정책이 크게 바뀔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정보를 주는 일은 작은 배려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감정적으로나 무엇으로나 큰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