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대학 등록금,” 꽤나 오래 된 이슈다. 여러 정당에서 정책 키워드로 닳을 때까지 사용되고, 유명 정치인들의 공약으로도 많이 쓰였다. 반값등록금운동본부 등을 주축으로 하여 반값을 실현하라는 당위성이 강력하게 주장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식상할 정도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다. 사회적 현안으로 활발히 부각되어 온 반값 등록금 이슈에 정작 “학생”은 빠져 있다. 등록금 납부의 명목상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사이에선 그다지 뜨거운 반응이 일지 않았던 것이다. 왜 반값 등록금은 학생 중심 운동이 아니라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일까. 이에 고함20은 기존의 시각과는 조금 다르게 등록금 이슈를 바라보았다. 현재 등록금 이슈의 방향을 살펴보고, 진정한 학생 중심의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도 생각해 보았다. 20대 대학생, 그대들도 함께 생각해 보자.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목소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시대가 바뀌었다고들 한다. 대학이 학문 탐구의 본거지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취업을 위한 준비 기관으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해졌다고 말이다. 학생들도 대학을 쓸만한 ‘투자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도 한다. 과연 20대가 대학 등록금을 냄으로써 투자한 것은 무엇이고, 그에 대해 얼마쯤 돌려받았다고 생각할까? 현재 학생의 입장에서 대학 교육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고함20이 각 지역의 2 3, 4년제 학생 25명에게 실시한 서술형 설문 조사를 토대로 그 현황을 짚어보자.


학교와 학원을 비교할 수 있을까?


“대학 교육은 좋은 거래입니까? 당신은 낸 만큼 돌려받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사실상 대학을 일종의 투자 대상으로 전제하고 있다. 대학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원과 유사하다. 학원은 반드시 가야하는 곳이 아니라 학교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다니는 곳이었고, 대학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진학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돈을 내고 강의 서비스를 주로 제공받는다는 점에서도 둘은 유사하다. 설문 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대학생들이 스스로 대학과 학원을 비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학을 고등학교의 연장선으로 보기보다는 일종의 선택적 서비스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판적인 답변은 대체로 금전적인 문제, 즉 등록금과 관련된 것이었다.
한 학기 등록금을 대략 400만원(인문대학 기준)으로 가정할 때, 한 달에 약 100만원을 납부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학 입시 단과 학원이 월 8회, 주 6시간에 30만원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액수로 따져서 한 달에 보습 학원 3개를 다니는 것과 비슷한 돈을 지불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미 학교에서 기본적인 지식을 제공받고 별도로 다니는 학원과 달리 대학은 그 자체로서 교육의 장이다. 금전적인 단순 비교를 하자면 대학 등록금이 학원보다 훨씬 비싼 셈이다. 답변 중에는 등록금에 비해 학교 시설 이용이 편리하지 않고 학생생활 관련 서비스도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강의의 질을 문제 삼는 응답자도 있었다. 한 경영학도는 “이론적인 교육 위주의 대학 교육이 효율적이지 못하며 취직을 하는 데도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한다.”며, 졸업장이 교육적으로 별로 의미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등록금을 부담하고서도 대부분의 활동(어학연수, 교환학생 등)을 하기 위해서는 부대비용을 따로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현재의 강의만 보아도 등록금이 비싸다고 보는 입장이다. 3학년 재학 중 전문 기술직 자격증을 취득하고 외국에서 직업을 구해 살려는 목표가 생겨, 그동안 냈던 등록금은 “졸업장을 얻기 위한 정도라고 생각하고 남은 등록금을 납부 중”이라는 응답자도 있었다. 당장 자격증을 위해 외국으로 나갈 수도 있으나 ‘그래도 이만큼 다닌 게 아까우니 졸업은 해야겠다’는 것이다.

 


대학에 진학한 이유 – 교육이 만족스럽습니까?

학생들은 저마다 대학에 진학한 목적이 달랐다. 25명의 응답자 중 취업이 목표인 사람은 8명, 사회적 지위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6명, 배움(학문 탐구)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13명(취업 부분과 함께 언급한 응답자 2명 포함)이었다.

사회에 나가기 전 4년 간 울타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학생은 본인이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사회생활의 첫 시작점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또 다른 학생은 “대학에서 배운 것들은 앞으로 나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보였다. “등록금이라는 비용을 치르고 아직 뚜렷하게 얻어낸 성과가 없기 때문에 대학과의 거래에 만족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거래가 전적으로 손해라고 보지도 않는다.”고 말한 응답자도 있었다. 대학 교육에 투자한 비용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성과로 돌아올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등록금을 낸 만큼 만족스러운 교육을 받았다고 보는 13명 중 전액 혹은 반액 이상 장학금을 받고 있거나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5명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제가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인 지도 모르지만”이라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반대로 대학 교육이 개인의 지식수준을 높이기보다는, 형식에 치중하는 느낌이라 불만족스럽다는 응답도 있었다. 대학을 다니며 느는 게 글을 빨리 쓰고 주석을 명확하게 다는 법이란 농담도 있듯이 말이다. 학점에 의해 평가를 하고, 대학 이름을 사회적 평가 대상으로 사용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원하는 다양한 배움을 얻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대학에서만, 그것도 수강신청에 성공한 강의만 수강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배움의 폭이 좁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학에서 얻어가는 것을 ‘사회적 위치’라고 본 응답자들 역시 현 등록금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학벌은 곧 자신의 위치다.”라고 응답한 한 학생은 “결국 공무원이 될 거라면 대학을 왜 간 거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결국 우리나라는 학벌중심주의라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학벌을 요구하지 않나?”라며 비판하였다. 굳이 대학을 진학할 이유를 찾지 못했는데도 평생 가지고 갈 ‘졸업장’을 위해 등록금을 내고, 졸업한 이후 혹시라도 보상받을 가능성을 생각해서 다니고 있다고 응답한 학생도 6명이었다. 이들 중 한 명은 “부당한 거래지만 할 수밖에 없는 거래다. 내는 것에 비해 받는 건 너무 적고 보장도 안 되지만 그 거래마저 안 한다면 암울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까”라고 말했다.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중요 요소로서 대학을 바라볼 때, 이른바 상위층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은 여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높은 성취(투자 대비 이익률)를 기록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들 응답자는 대개 학벌중심주의 사회 구조를 인지하고 ‘암묵적으로 순응’하고 있다고 답했다.




등록금 사용처가 불명확한 현실, 무조건 반값 외치기?

이상의 결과로 볼 때, 학생들은 대학 교육에서 원하는 것을 대체적으로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다. 추구하는 가치가 학문 탐구이든, 취업 준비이든, 학벌이든 “내가 낸 만큼 돌려받고 있지 못하다”고 응답한 학생이 25명 중 20명이었다. 이러한 불만족스러운 현실이 개선될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다. 지불한 등록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으므로 투명하게 등록금 운영체제 내역을 공개하는 것, 등록금 자체를 일정 부분 낮추는 것, 강의 수준을 높이고 수강 신청 제도를 변경하여 보다 자유로운 수강을 가능하게 하는 것 등등. 물론 본질적으로 이른바 ‘대졸자’를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나 학벌중심주의 등 인식적 측면의 전환이 필요한 것도 옳다.

그러나 위의 설문조사에서 제시된 다양한 이유를 무시하고 무조건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자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다. 또 공감을 얻기에도 부족하다. 현재 등록금 수준에서도 학생 복지 및 교육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데, 무작정 반값으로 내린다면 더 좋은 ‘서비스’를 받기엔 더욱 어려워질 지도 모른다. 반값 등록금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에 관한 현실성 문제도 있다. 먼저 “학생들이 왜 등록금 수준에 불만인가?”를 파악한 뒤 그에 합당하게 “제값 등록금” 수준을 지정하는 것이 “무조건 반값”을 외치는 것보다 합리적이지 않은가. 결국, 등록금 인하 운동이 학생 중심의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대학 교육이 왜 좋은 거래가 되지 못하고 있는가?”를 찬찬히 살펴야 할 것이다. 등록금이 적절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의심하지 않는다면 굳이 액수를 반으로 낮춰야 할 이유는 딱히 없는지도 모른다. 반값은 아니어도 “제값”은 되어야 하지 않은가. 더욱 찬찬히 살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