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 공방이 한창이다. 대기업 위주 성장정책의 폐해를 씻고 불공정한 경제 체제를 고쳐내겠다는 데 모든 대선 주자들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 순환출자금지, 금산분리 강화,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등의 핵심 이슈에 대해서는 저마다 정책 공약을 일찌감치 발표하며 ‘내가 더 잘 할 수 있노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경제민주화에 대한 노동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유력 대선 주자들은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재벌 개혁’에만 집중할 뿐 그 누구도 ‘노동기본권’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논의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산업민주주의’는 1897년 영국의 사회경제학자 웨브(Webb) 부부의 저서 《산업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에서 기원한다. 노동조합 내부의 민주화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된 이 용어는 산업 전반에 걸친 민주적 체제를 일컫는 말로 사용돼왔다. 산업민주주의의 핵심은 민주주의를 노사관계 내에서 구현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용자와 노동자 간에 평등한 의사 결정에의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노동조합 결성과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의 노동기본권이 산업민주주의가 다루는 주요한 주제다.

ⓒ 조세일보



가까운 일본의 경제민주화 과정에서도 노동민주화는 중요한 이슈였다. 일본의 경우 1945년 전쟁에서 패해, 연합군 점령 하에서 경제개혁이 이루어졌다. 당시 노동민주화는 재벌(자이바쯔)해체, 농지개혁과 함께 3대 개혁 대상이었다. 노동조합조직이 장려되었고, 노동자의 지위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노동조합법, 노동관계조정법, 노동기준법 등의 노동3법이 제정되었다. 1945년 0%이던 노동조합 조직률은 1949년에는 55.8%까지 수직상승했다. 반면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87년 민주화 직후인 1989년의 19.8%를 정점으로 2010년에는 고용노동부 자료를 기준으로 9.7%까지 떨어졌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과거 이래로 재벌기업집단에만 그 초점이 과도하게 집중되어왔다. 1997년 참여연대가 만들었던 ‘경제민주화위원회’도 기업에 대한 감시를 그 기본으로 하고 있다. 2011년 이후 정치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경제민주화 논의도 기형적인 재벌 대기업 중심 산업 구조의 개혁만을 기치로 삼고 있다. 현재 대선후보들이 내세운 경제민주화 정책 역시 재벌개혁 관련 3대 이슈에 가장 집중되어 있다. 복지 확대, 일자리 창출, 양극화 해소, 비정규직 축소 등 ‘친노동적’인 정책들이 함께 쏟아지고 있긴 하지만 노동자들의 기본권한을 직접 보장해주는 적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의 문제를 국가가 대신 해결해주는 소극적인 방식일 뿐이다.

물론 재벌을 개혁하고, 재벌의 기존 지배구조를 타파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경제민주화’의 달성을 담보할 수 없다. 특히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3대 쟁점의 경우에는 단순히 재벌가에게서 금융자본에게 대기업의 소유를 넘겨주는 일이 될 뿐, 그 해체된 부나 소유 및 참여구조가 민주적으로 배분되지는 않는다. 노동 기본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완전히 뒷전이 된 현재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반쪽짜리 논의일뿐더러, 이것만으로 ‘서민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다. 대선 주자들이 자신이 경제민주화의 가장 적임자임을 증명하고 싶다면, 하루 빨리 ‘노동 기본권’과 ‘산업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