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0일은 1987년의 6월 10일과 닮았다. 혁명의 열기가 아니라 퇴보한 민주주의의 모습이 26년 전의 6월과 똑같다. 6월 항쟁이 26주년을 맞은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군부독재의 잔재가 깊숙이 남아있다. 독재시대의 정치적 유산이 지금의 대통령을 만들었다. 국정원은 안기부를 답습해 선거개입을 시도했다. 과거의 독재자는 지금 그 어떤 민주시민보다 호화롭게 살고 있다. 바른 말 하던 언론사는 보도지침이라도 내려진 양 입을 다물었다. 한국의 인권실태를 조사한 마거릿 세카갸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은 한국의 인권수준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음을 경고했다.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역사가 6월 항쟁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1987년 1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의해 ‘수지 김 간첩 조작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의 발단은 간단했다. 사업차 홍콩을 방문한 윤태식은 아내 김옥분과 말다툼을 하다 김옥분을 살해한다. 그러나 막상 살해하고 나자 뒷감당이 두려웠던 윤태식은 죽은 김옥분을 수지 김이라는 북한 간첩으로 둔갑시켜 안기부에 알린다. 당시 안기부는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난 여론을 돌리기 위해 김옥분 살해사건을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국가정보기관이 살인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간첩사건으로 조작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살인자 윤태식은 간첩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시민이 되었고 김옥분은 수지 김이라는 지독한 북한 간첩이 되었다. 이 사건의 전말은 2000년에 들어서야 밝혀졌다. 만약 6월 항쟁이 없었다면, 독재체제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김옥분 살해사건은 영원히 어둠 속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과거 안기부를 계승한 국정원은 예전 모습을 버리지 못한 모양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야당 대선후보를 종북세력으로 규정하고 국정원 직원을 동원해 사사로이 정치·선거에 개입했다는 내부문건이 나왔다. 문건이 사실이라면 안기부에서 여론을 무마하려 진행했던 ‘수지 김 간첩 조작사건’의 연장선인 셈이다. 수십 개의 아이디를 돌려쓰며 인터넷에 정권을 옹호하는 글을 올리고 야권 후보를 비난하는 글을 작성한 것은 다름 아닌 국정원이다. 그럼에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사법처리는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법리적 해석에 대해 법무부와 검찰이 갑론을박하며 또다시 ‘종북좌파’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야당 인사에 대한 인터넷 상의 공격이 ‘종북좌파’ 척결의 목적으로 볼 수 있다는 비상식적인 논리도 언론에 등장했다.

민주주의가 26년 전 그때로 퇴보하고 있다. 역사가 다시 우리나라를 군부독재의 시절로 끌고 들어가고 있다. 독재의 잔재, 국정원의 대선 개입, 언론에 대한 탄압, 낮은 인권 수준 등의 문제를 일소하지 않는다면 6월 항쟁의 가치는 사라질 것이다. 많은 이들이 피 흘리며 지킨 민주주의다. 다시 한 번 지켜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이 필요하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하여 6월 항쟁의 정신을 바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