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의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에 관한 논쟁으로 정치권이 뜨겁다. 여야 핵심 관계자들은 물론, 신문 정치면과 TV토론, 시민단체의 활동들도 모두 다 두 이슈에 관해서 집중되고 있다. 오늘(28일)도 서울 도심 광화문 일대를 중심으로 시민사회단체들의 시국선언, 집회, 기자회견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대학가에서도 총학생회들의 시국선언과 관련한 쟁점이 논란이 된 바 있기도 하다.

이 같은 사태는 장기전으로 진행되면서, 딱히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정원에 대한 수사결과가 발표되고, NLL 발언이 들어있다는 대화록 전문이 공개되었지만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격화되고 있다. 소위 진보와 보수로 나뉜 양 진영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쟁점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두 번의 선거를 통해 확인된 바와 같이, 현재 한국의 정치 및 시민사회 지형도는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양분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예 믿음과 신념의 근본이 다른 두 진영의 싸움은 종결되지 않은 채 지리멸렬하게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러한 정쟁 속에서 민생 현안에 대한 검토가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27일) 확정되었어야 할 최저임금위원회의 내년도 최저임금 협상은 결국 마감시한을 넘겼다. 6월 임시국회도 파행을 빚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정리해고 요건강화, 통상임금 개편 등 노동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법안이나 부동산경기 활성화 법안, 각종 경제민주화법안, 대리점공정화법안(소위 '남양유업법') 등은 국회 어딘가에 계류된 채로 묻혀가고 있다. 언론도 정치계의 싸움 현장을 따라다니느라 민생 현안의 처리 여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민생을 덮어버릴만한 위력을 지녔다는 것은 국정원, NLL 논쟁에 대한 결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정치 논쟁을 그만두고 민생 현안을 해결하라는 것은 어떤 입장에서는 '한가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을 알 수 없는 '정치 싸움'이 진영 논리에 환멸을 느끼는 많은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생각해야 한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하는 정치인들, 시민단체, 언론이 사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금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