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의 62.6%는 "취업하는 데 외국어 스펙이 필요하다"고 답한 반면, 직장인 58.3%는 "외국어 스펙이 회사 일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취업포탈 사람인이 2일 밝힌 구직자 487명과 직장인 5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취업 필수 스펙으로 알려진 토익, 토익 스피킹 등의 외국어 성적이 사실상 취업 이후 직무 수행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현장에서 쓰이지도 않을 능력을 취업 관문을 뚫기 위해서만 '만들어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국내 영어교육 시장의 규모는 4조원을 넘어섰다.

이 같은 상황은 명백히 사회적인 낭비다. 전지구화가 상당 부분 진행된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미국 땅을 한 번 밟을 일 없고 영어로 업무를 처리할 일도 한 번 없는 직종들이 대부분인 것도 사실이다. 실제 업무에 필요한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영어능력을 취업 시 변별 요소로 삼고, 또 승진이나 인센티브 제도와 엮어 강조하고 있는 현실은 수많은 '잉여 외국어능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개인들은 자기계발 담론에 휩쓸려 새벽부터, 점심시간을 쪼개서, 늦은 밤 시간에 목적 없는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와 같은 과잉스펙의 문제는 대선 당시 여야 후보의 공약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당시에, 스펙초월채용시스템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학벌, 학점, 토익 점수 등 직무능력과 관계없는 스펙을 쌓지 않아도 해당 직종에 맞는 직무능력을 갖추면 충분히 취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직종별 직무능력표준을 개발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는 맞지 않는 '직종별 직무능력'의 실효성이 의심되기는 하지만, '잉여 스펙'을 없앤다는 취지에서만 보면 수긍이 가는 공약이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경우에는 취업과 관련해서 사교육비가 과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가가 주도하는 '취업 교육방송'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한 번 사용되지도 않을 영어를 만 번 연습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잘못된 구조가 수많은 개인들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표면적으로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취업준비를 위해서는 어떤 직종이든 토익 학원부터 등록하고 보는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상황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공유를 바탕으로 박근혜 정부가 '스펙초월채용시스템'의 취지를 살린 현실적인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목적도 없고 끝도 없는 '이상한 마라톤'은 이제 멈출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