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난 7월 4일, 뉴시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학평가에서 인문학, 예체능계열의 취업률 지표를 반드시 없애겠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전국의 여러 대학에선 인문학, 예체능 관련 학과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대전에서만 해도 목원대 독일언어문화학과, 프랑스문화학과, 배재대 국문학과, 독일어문화학과, 프랑스어문화학과, 한남대 독일어문학과, 철학과 등 많은 학과의 통폐합 및 폐지가 결정됐다.

잇따른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 여론은 거세졌다. 구조조정 대상 학과 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펼쳤다. 김난도 교수도 지난 7월 3일 가진 ‘김난도의 내일’ 출간 기념 기자 회견에서 “취업률 등 계량화한 자료만 갖고서 대학을 평가하는 건 전시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발언은 이러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대학평가에서 인문학, 예체능계열의 취업률 지표를 제외하는 방안이 대학 구조조정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대학 구조조정의 근본문제와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덕성여대 윤지관 교수는 “취업률 지표는 대학을 취업학원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부 학과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학과에서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날 토론회의 참석자들은 줄어드는 대학생 수로 인해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기는 하나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학 구조조정의 근본문제와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는 지난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21c 한국대학생연합, 예술계열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통합진보당 학생위원회 등에서 공동으로 주최했다. 토론회는 공동주최 국회의원의 인사말, 구조조정 해당 학과 학생들의 사례 발제, 교수들의 주제 발제, 대학 관련 전문가들의 지정토론, 질의응답의 순서로 이어졌다. 전국 각 대학의 학생들을 비롯하여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예정된 시간을 넘겨 3시간가량 열띤 토론회가 진행됐다.

인사말 중인 민주당 도종환 의원


먼저 공동주최 국회의원인 민주당 도종환 의원, 김광진 의원,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차례로 인사말을 했다. 도종환 의원은 “평생 박경리의 토지를 연구하시던 교수님이 문예창작과가 없어지고 난 뒤, 같은 대학의 청소년복지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봤다.”며 대학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구조조정의 취지에 반문을 제기했다. 김광진 의원은 전공과 관계없는 직장에 취직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취업률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연 의원은 “몇몇 교육부의 정책이 바뀐다고 구조조정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대학 교육의 철학을 바꾸는 투쟁에 함께하자”고 말했다.

이어서 ‘예술계열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경남대 철학과, 한남대 철학과, 중앙대 비교민속학과 학생들이 각 대학의 구조조정 사례를 발제했다. ‘예술계열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의장 임수빈 씨는 “추계예대 사태 이후 정부는 예술계열이 50%를 넘는 대학들에게 대학평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취업률 지표가 존재하는 한 인문, 예술 계열은 여전히 폐과 1순위였다.”고 말했다. 뒤이어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이번 발표를 올해 9월 대학평가에 반드시 반영해야 하며 이전에 폐과된 학생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남대 철학과 폐지 비상대책위원회 윤태우 씨는 “방학이 막 시작해 학생들이 학교에 한산했던 6월 19일에 학교는 구조조정위원회를 열고 폐과를 졸속 합의했다.”며 비민주적인 학과 구조조정을 비판했다. 또한 “학생회는 물론이고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마저 철학과 학생들의 투정을 외면했다”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남대 철학과 폐지 비상대책위원회 장영희 씨 역시 “학교 측에서는 구조조정 과정을 학생들에게 투명하게 밝히지 않았다”며 비민주적인 폐과 절차를 비판했다. 더불어 한남대 철학과의 폐과결정은 기준이 부적합했고, 대학평의원회의 반대결의를 묵살했으며, 대학교육 및 한남대의 건학 이념에도 위배된다는 문제점을 짚었다.

중앙대 비교민속학과 학생회장 정태영 씨는 “학교 측에서는 계속해서 기업논리만 내세우며 학생들에게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희생을 하라는 식의 논리를 계속해서 내세웠다.”고 말했다.

사례 발제 중인 정태영 중앙대 비교민속학과 학생회장


주제 발제 시간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에 입각한 대학 구조조정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발제자들은 대학 구조조정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대학입학정원이 줄어드는 상황에 따른 구조조정의 필요성에는 동감했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는 “(대학 구조조정이) 사학비리라는 고질적 병폐를 쇄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사학의 불건전 지배구조를 민주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경쟁을 통한 퇴출방식을 지양하고 교육현장을 살리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박정원 상지대 교수는 현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 “지방대학에 불리한 처사이며 균형발전에도 위배된다.”며 “모든 대학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재홍 방송통신대 교수는 “헌법에 의하면 근로의 권리가 있기 때문에 취업은 국가의 의무다. 그런데 국가는 그 의무를 대학에 떠넘겨버렸다.”며 취업률을 지표로 한 대학 구조조정을 비판했다. 이어 “교육기관은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지정토론에서 오세곤 ‘한국 예술대학, 학회 총연합’ 의장은 대학 구조조정 문제가 교육 전체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인문학, 예체능 계열의 취업률 지표 삭제는 “자칫하면 일부 분야의 이기주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대학 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로 가야할 길은 멀다”고 덧붙였다. 조원영 민주당 대학생위원회 교육정책국장은 “대학 구조조정 문제는 개별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고등교육 전반의 심각한 현안”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학에서의 개별 투쟁은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라며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 제재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일방적 학과 통폐합 금지 법안’을 중심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안진걸 반값국본 공동집행위원장은 “투쟁한 만큼 변화가 있다.”며 “9월 중에 대학가의 모든 이슈를 모아서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자.”고 말했다.


질의응답시간에는 대학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과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발의를 준비 중인 법안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다.

먼저, 법안에 허점이 많을 경우 오히려 대학 구조조정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조원영 교육정책국장은 “법안에 한계가 분명히 있고 보완을 해야 한다.”며 “법안 자체를 구체화하겠다.”고 답했다.

김재연 의원은 “학생이나 교수 등 구조조정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강제하기 위한 법안이 필요하다.”면서도 “법안을 지금 발의해도 빠른 시간 내에 통과될 수 있을까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어서 “중요한 것은 법적 배경을 무기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용기를 모아내서 하반기 투쟁을 벌여내는가에 있다”고 덧붙였다.

유은혜 의원실 비서관은 “법으로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국회에서 법안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맞지만 학생들도 학교 내에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오세곤 의장은 “너무 근본적인 대책만 얘기해선 안 된다. 절박한 사람을 먼저 생각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원 교수도 인문학, 예체능 학과의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답변 중인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이날 토론회가 끝난 직후에는 구조조정 대상 학과 학생들이 모여 향후 활동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논의 결과 구조조정 당사자뿐만 아니라 대학생 관련 단체, 교수, 의원 등이 합세하는 ‘대학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가칭)를 9월 중으로 발족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7월 안으로 대학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 건설 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