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학내언론인 <고대신문>에 충격적인 설문조사 결과가 게재되었다. 고려대학교 학생 5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12%에 이르는 59명의 학생이 이번 중간고사에서 부정행위를 했다고 응답한 것이다. 응답자의 55%는 ‘들키지만 않는다면 부정행위를 하겠다’고 답했으며, 70%는 ‘시험 중에 부정행위를 하는 학생을 봐도 그냥 넘어가겠다’고 답했다. 심지어 대리시험을 부탁해 본 경험이 있는 응답자도 6%나 되었다. 레포트 거래나 대리출석에 관한 결과는 더 이상 볼 필요도 없어 보인다.



▲ <고대신문>에서 고려대학교 학생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출처 :
http://www.koreapas.net/bbs/view.php?id=kunews&no=1820)


대학 시험에 만연해 있는 컨닝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꾸준히 문제 제기된 바 있다. 알바천국의 2008년 조사결과에 의하면 70%, 알바몬의 2009년 조사결과에 의하면 31%나 되는 대학생들이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조사 방법과 질문에 차이가 있어 단순 비교는 불가하다. 하지만 어쨌든 대학가에 부정행위를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음은 조사 결과를 통해 충분히 추론 가능하다.

대학생들에게 직접 들어본 부정행위 사례를 보면 더욱 더 천태만상이다. 중앙대 1학년 한정태(가명) 씨는 “감독이 어려운 맨 뒷자리 등에서 부정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손해를 보니까 짜증이 나긴 하지만, 과 선배나 과 동기들이 부정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아 쉽게 항의할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가톨릭대 1학년 인지연(가명) 씨는 “이번 중간고사 때 친구네 학과에서 무감독 시험이 있었는데,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진 학생이 1등을 해서 뒷말이 많았다.”며 황당해 했다.

부정행위의 방법 역시 갈수록 기발해지고 있다. 지우개, 플라스틱 자 등에 답안을 미리 적어두거나 여러 명이 미리 짜고 서로의 답안을 공유하는 등의 고전적인 방법은 여전히 인기다. 시험시간에 늦은 척 하면서 미리 문제를 입수하고 답안을 체크하고 시험을 보거나, 한국어에 서투른 척하면서 어드밴티지를 얻어내는 등 액션영화를 방불케 하는 신(新) 컨닝수법까지 동원되고 있다.



▲ 출처 : http://blog.naver.com/s1948?Redirect=Log&logNo=100003116959


부정행위가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컨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부정행위에 대한 적발 수단이 없고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컨닝이 더욱 만연하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연세대 3학년 선우현(가명)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1학년 때 무감독 시험으로 시험을 본 한 교양 과목에서 아예 답안을 논의하면서 시험을 보는 등 집단적으로 부정행위가 크게 일어나 많은 학생들이 교수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 교수님이 부정행위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며 시험 결과를 그대로 성적에 반영해서 많은 학생들이 불만을 표했다. 교수님은 학생들을 믿어보겠다는 말 뿐이었다.”

고려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http://koreapas.net/)’의 네티즌 ‘사무사’ 씨는 <고대신문>의 기사에 “1학년 때 당당하게 수업시간에 컨닝하고, 과실에 와서 컨닝한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말 어이없었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나 부정행위가 아무리 많이 일어나더라도 학내 이슈가 되어 컨닝 당사자가 사회적으로 처벌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 정도 잘못 정도는 내 친구니까 한 번쯤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다수이다. 부정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은커녕, 그것을 무용담 삼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현재의 대학인 듯하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이러한 행동 양식을 계속해서 습득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과연 사회의 주축이 되어서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을까?



▲ 출처 : http://blog.naver.com/idolstar_1?Redirect=Log&logNo=50000342972


한편, 부정행위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해야 함과 동시에 현재 대학의 시험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컨닝을 통해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시험이라니 얼마나 우스운 대학 시험인가. 괄호 넣기나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뜻만 외워 서술하면 되는 시험이니 컨닝이 통한다. 이러한 암기력만을 요하는 시험 형태가 오히려 컨닝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Open-book Test(수업 때 이용했던 교재들을 시험장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험)'나 ‘Take-home Exam(시험 문제를 미리 공지해주고 각자 답안을 집에서 작성해 오는 시험)’ 형태로 시험을 치르는 과목들의 경우, 학생들이 자유롭게 텍스트들을 참고하여 창의적 답안을 작성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유도한다. 이러한 평가 방법이 확산될 경우 부정 행위 방지는 물론, 좀 더 깊이 있는 학문 탐구라는 효과도 더불어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계량화된 수치로 학생들을 우열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교육 문화, 객관식이나 단답형만 채점할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대학생들의 사고 하에서 새로운 평가 방법 도입이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