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점부터 언론이 대학을 평가하고 있다. 언론사 대학평가가 수험생, 학부모에게 영향을 주면서 대학도 언론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로 꽤나 재미를 보자 다른 신문사도 줄지어 대학평가에 뛰어들었다. 고함20도 염치없이 이 축제에 밥숟가락 하나 올리고자 한다.
 
다만 논문인용지수, 평판, 재정상황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방법은 거부한다. 조금 더 주관적이지만 더 학생친화적인 방법으로 대학을 평가하려 한다. 강의실에선 우리가 평가받는 입장이지만 이젠 우리가 A부터 F학점으로 대학을 평가할 계획이다. 비록 고함20에게 A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학보사가 대서특필 한다든가 F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훌리건'이 평가항목에 이의를 제기하는 촌극은 없겠지만, 고함20의 대학평가가 많은 사람에게 하나의 일침이 되길 기대한다.


내 한 몸 뉘일 곳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전하고 깨끗하며 적당한 넓이를 갖춘 공간을 찾는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식의 인생 치트키를 사용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쾌적한 주거 환경은 그림의 떡일 뿐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학교 측이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제공하고 있는 기숙사라면 사정이 좀 다를까?

네 번째 주제는 바로 ‘기숙사’. 통학 거리가 짧은
축복받은 이들에게는 별 관심 가지 않는 주제일 수 있겠다. 그러나 통학할 수 없는 거리에 사는 이들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수밖에 없는 주제다. 안전할 것이라는 인식 덕택에 부모님이 좋아하시고, 냉난방이니 저녁밥이니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학생들도 선호한다. 각 대학의 기숙사 제도와 현황을 비교해 평가해보았다.


이화여대 / B- 좋은 시설 오래도록 많이 쓰시라고 통금은 칼같이
적립금 총액 1위의 영광을 안은 이화여대는 건축적립금 역시 약 2,000억 원을 쟁여놓고 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기숙사 수용률은 8.2%에 불과하다. 적립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2012년 기준 전국 453개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이 평균 16.1%인 것을 고려해볼 때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다행히 지난달 사업부지만 6만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기숙사를 건립하는 결정안이 가결되었다 한다. 물론 언제 완공될지는 미지수. 그 혜택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래오래 학교에 남아 장수할 것을 추천한다.

기숙사비는 어떨까? 신입생들이 사용하는 한우리집 A동은 학기당 76만 4천원, 재학생이 사용하는 B동은 153만 9천원이다. 물론 식사비는 별도다. 비싼 기숙사비만큼이나 시설 면에서는 훌륭한 편이다. 새참을 만들 수 있는 취사실, 컴퓨터실과 노트북 열람실은 물론 심지어 다도실까지 갖추고 있다.

시설이 좋으니 기숙사를 오래 이용하라는 학교 측의 배려였을까, 아니면 호텔이 아니라 기숙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위함이었을까. 토요일, 일요일을 제외하고 기숙사의 통금 시간은 오후 11시로 정해져 있다. 10분쯤 늦는다거나 하루쯤 외박신청을 까먹을 수도 있지 않으냐는 이들은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화여대 기숙사는 엄격한 점호와 칼 같은 벌점 제도로 유명하다. 주중에는 언제나 점호를 시행하며, 벌점 10점을 초과하면 바로 퇴사대상이다. 한 달에 5회에 한해 지각 신청이 가능한데, 오후 10시 이전에 신청할 경우 새벽 1시까지 통금 시간이 늘어난다 하니 유사시 이를 이용하면 되겠다.

고려대 / C+ 학교 측의 기만과 학생 측의 노력
직영 기숙사와 민자 기숙사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으나 기숙사 수용률은 9.2%로 역시 낮은 축에 속한다. 민자 기숙사가 들어설 때 수용인원을 150명가량 추가 확대했음에도 여전히 전국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한편 민자 기숙사의 한 학기 비용은 1인실 234만원, 2인실 152만원이다. 직영 기숙사 비용의 2배에 달하는, 입이 떡 벌어지는 수치다. 확대 전에도 확대 후에도 기숙사비에는 변동이 없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민자 기숙사가 수용 인원을 증가시켜 운영 수입을 늘렸음에도 기숙사비를 인하하지 않은 것이다. 학생들 쌈짓돈 털어 기업 주머니 두둑하게 해주는 것은 각 대학의 연례행사라도 되는 모양이다.
 

학교-기업 측의 더티 플레이 속에서도, 총학생회와 기숙사 사생회 측의 노력은 빛을 발했다. 민자 기숙사와 직영 기숙사의 통금이 이번 학기부터 사라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통금 시간이 넘어 갈 곳 없이 발을 동동 구르던 사생들의 안전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 C- RC 제도 운영하는 송도학사, 호그와트인가 호구와트인가


연세대의 경우 턱없이 낮은 기숙사 수용률이나, 비싼 기숙사비에 대한 언급보다 RC 제도가 먼저 눈에 띈다. RC란 전교생이 1학기 이상 의무적으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기숙형 대학(Residential College)을 말한다. 연세대는 올해 1학기부터 2013학년도 신입생 전원을 송도국제캠퍼스에 위치한 송도학사로 보냈다. 또한, 제2 송도학사가 완공되면 그 기간을 늘려 2014학년도 신입생 전원이 1년간 송도학사에 머무를 것이라고 한다. 

해외 유수의 명문 대학들의 제도를 그대로 따온 이 제도는 공동체 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율과 예절을 배우고, 인성과 리더십까지 키워내는 것이 그 취지라고 한다. 학교 측에서는 재학생들의 호응이 좋고 만족감 또한 높다고 발표했다. 학과 공부 이외의 시간에서 더 많은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기에 송도학사를 ‘호그와트’라 부른다나. 어떤 대단한 것이길래 ‘기적’인가 했더니 팀별 과제 역량이 탁월하단다. 팀플레이 때만 우후죽순 생겨나는 집안의 경조사와 천재지변을 걱정할 필요 없이 조 모임 시간과 장소는 매일 밤 송도학사로 정해지는 모양이다.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건국대 / D 시설은 초호화, 기숙사의 기본 의의는 초토화
건국대 기숙사 ‘쿨하우스’의 기숙사 수용률은 18.3%, 서울 지역 대학 중 높은 축에 속한다. 국내 최초의 민자 기숙사, 국내 최고의 호텔형 기숙사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으며 기숙사 홈페이지에서 유일하게 기숙사비 관련 탭까지 만들어 친절하게 그 비용을 안내하고 있다.
 

기숙사비는 학기 중 1인실 기준 207만 7천 원, 2인실 기준 135만 6천 원이다. 물론 식사비는 별도. 만약 방학을 포함해 1년 내내 기숙사 1인실에 머물며 하루 세끼 식사까지 한다면 829만 7천원을 내야 한다. 이쯤 되면 국내 최초, 최고의 타이틀이 무색해진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기숙사인가. ‘쿨하우스’에 입주하는 학생들은 모두 지방 유지란 말인가.
 

물론 그 시설 측면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객실 내부는 호텔급이며, 부모님 방문 시 게스트룸까지 제공한다. 그러나 시설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애초에 학생들이 기숙사를 선택하는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공간을 기숙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실상 학생 복지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설 숙박업소와 다를 바가 없다. 호텔형 기숙사가 아닌 기숙사형 호텔이라 이름 붙이면 적당하다 하겠다.

국민대 / F 주객전도 사업 때문에 학생들만 밖으로 밖으로
지난해 국민대학교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가 지표 확보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일환으로 전임 교원을 급작스럽게 확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화살은 학생들의 보금자리로 향했다. 국민대는 본래 A동부터 D동까지 4동에 이르는 생활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전임 교원을 위한 교수 연구실이 들어설 자리가 부족해지자, 교내 생활관 D동과 B동 일부의 수용 인원을 줄이고, 길음, 노원 생활관을 신설하였다. 굴러들어온 정책이 박힌 학생들을 몰아낸 격이다.
 

학내에서 학외로, 이사 간 기숙사의 경우 생활 환경이 좋았을까. 길음 생활관의 경우 학생들이 입주하고 난 후까지도 공사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공사 먼지와 소음으로 불편을 겪어야 했다. 더불어 식당, 간이 주방이 없어 식사하기 위해서는 교내 생활관까지 이동해야 하므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끼니를 챙기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서 벗어나는 것도, 전임교원을 확보하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모두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위한 것일진대, 그 과정에서 정작 학생이 빠졌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기숙사지만, 사실 그마저도 들어가지 못해 자취방과 하숙방을 전전하는 학생들이 많다. 등록금 걱정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보증금이니 월세니 부모님 등골 빼먹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하다. 기숙사란 수익창출의 도구도, 학교의 시혜성 사업도 아니다. 학생의 기본 주거 환경을 위해 의무화되어야 하는 교육 기본 시설의 일종인 셈이다. 더욱 장기적인 대책을 바탕으로 학생 돈으로 기업 배를 불리는 호텔식 기숙사가 아니라, 공공성을 갖춘 기숙사다운 기숙사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민자 기숙사 : 민자 기숙사란 민간 자본을 유치해 지은 기숙사로, 기업이 학교에 자금을 투자해 운영한다. 건물의 소유권은 학교에 있으나, 일정 기간 기업이 운영권을 가지며 사용료를 받는다. 민자 기숙사에 입주한 학생들의 기숙사비가 곧 기숙사의 건설과 운영에 들어간 비용을 갚는 데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