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세 번째는 졸업요건이다. 바야흐로 학과에 관계없이 컴퓨터 자격증과 토익 점수는 자연스런 의무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왔다. 학생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대학이 강제하는 졸업 요건은 종종 과도하거나 터무니없는 요구사항으로 예비 졸업생들의 기를 꺾어놓곤 한다. 본 연재는 지난 3년간 적용된 각 대학별 학부생 공통 졸업요건뿐만 아니라, 특정 학과의 졸업요건도 평가해 학점을 매긴 결과다.
A학점: 학교 특성도 살리고, 학생 진로에도 도움이 되는 ‘졸작 전시회’ - 한국기술교육대
한국기술교육대학의 ‘졸업연구작품제’는 3-4학년들이 직접 기획, 설계, 제작한 공학 관련 작품 전시회다. 기술 관련 분야의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대학답게 한기대는 1-2학년 과정에서 기초를 다진 뒤 3-4학년 과정에서 전공별로 산업현장에 필요한 작품을 직접 설계하는 교육 과정을 도입했다. 오성철 교무처장은 “졸업연구작품의 10% 이상은 중견기업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서 기업에서 장학금과 장비 등을 대학에 지원하며 학생들을 스카웃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팀티칭 방식의 그룹스터디로 팀워크를 배양할 수 있고, 2개 학부 영역 이상의 공동지도교수가 참여해 학제 간 융합을 시도하면서 보다 심층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기대가 2012년 하반기 전국 4년제 대학 취업률 발표에서 1위(82.9%)에 올랐으니, 학생 진로 교육에 노력한 만큼 학생, 학교, 기업에 모두 유용한 일석삼조의 제도라 할 수 있겠다.
A-학점: 바람직한 ‘성폭력 예방교육’ - 중앙대
중고등학생 때까지 간헐적으로나마 실시되던 학생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은 대학에선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대학 성추행 사건들은 사실 교내 성교육 부재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중앙대는 국내 대학으로 처음 교내 인권센터를 도입한 대학답게 교수 및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든 계열에서 성 평등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심리학과를 비롯한 몇몇 학과에서는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지 대학생으로서가 아니라 성인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태도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성교육은 의의가 있다. 모든 학생들이 이수하도록 졸업요건으로 의무화한 조치도 바람직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모든 학과에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 이에 아쉬운 A-를 부여한다.
B-학점: 하늘을 찌르는 외국어(FLEX) 합격점수를 요구하다 - 한국외대
한기대처럼 한국외대는 ‘외국어’ 특성화대학이다. 특성화대학은 어느 분야에서 이미 출중한 학생들을 뽑기도 하지만, 입학해서 차츰 실력을 쌓아나갈 수 있게 여러 도움을 주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외대는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 과도하게 높은 외국어성적이라는 ‘결과’만을 요구하면서 학생들의 졸업을 위협하고 있다. 모든 학생은 언어별 학과에 따라 7개국어 어학시험 ‘플렉스(FLEX, Foreign Language Examination, 한국외대 자체 개발)'에 응시해 합격 점수 이상을 얻어야 졸업할 수 있는데, 이 점수가 터무니없이 높다.
한국외대 홈페이지에 공지된 FLEX 시험일정. '졸업인증 자료로 활용'된다는 문구가 보인다.
2013.6.16일자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학이 곧 취업학원인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자세 자체는 어쩌면 누군가에겐 힘이 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스펙 열풍이 20대에게서 대학 내부로 옮겨오면 자칫 학교가 모든 학생들에게 요구사항을 ‘강제’해 오히려 학생들에게 물리적, 심리적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아이러니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학사제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대부분 대학의 큰 문제다. 진로와 관련된 부분은 일률적으로 의무화하기보다는 학과 및 학생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쪽이 낫다. 불필요한 졸업 요건의 부적합성을 깨닫지 않는 한, 재수강의 쓴맛을 보게 될 대학이 꽤나 많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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