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때’ 라고만 해도 부연 설명 없이 회상 가능한 1997년 즈음의 한국. 그로부터 10년 하고도 3년이 더 지났다. 구태의연하게 IMF 얘기는 왜 또 꺼내느냐 하신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부모님 세대에게 IMF가 고통의 시간을 의미했다면 20대에게 2010년의 현실은 도망쳐버리고 싶은 또 다른 IMF이다.
 IMF에 낭만을 빼앗긴 이 시대의 20대로서 어딘가에 하소연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불황민감성체질을 아십니까.

 지난 2008년 제일기획에서 발표한 “1998~2008 대한민국 소비자 보고서”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소비 눈높이는 높아졌지만 실질소득이 못 따라가면서 경기에 따라 소비가 크게 출렁거리는 ‘불황 민감성 체질’로 바뀌었다고 한다. 환란 이후 10년 동안 경제·사회적 불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심화하면서 자기 계발에 대한 욕구가 증가했고, 돈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이와 함께 제품이 다양화·고급화하고 브랜드가 많아져 씀씀이가 커지고 소비 수준도 고급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희망하는 심리적 소득과 실질소득의 격차가 커지면서 한국인들은 실제 지표상의 경기 부침보다 경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불황 민감성 체질’로 변해왔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20대 너희가 무엇이 억울하냐고? 중학교 때까지 별다른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고 과외 받던 20대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의 실직을 보게 된다. 가장의 고통과 가정형편의 어려움은 당연한일이거니와 늘어난 부담 한 가지가 더 있었으니 “개천에서 용 나야 한다.”라는 부담이었다. 나라가 어렵고 집안이 어려울 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공부, 공부 그리고 성공 뿐 이다. 그러니까 공부해라.



< 사진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866019 >


 당신들의 성공신화

 그런데 문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올 때의 개천 상황이 부모님의 청년기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1960~1980년대의 저돌적인 경제성장 시기만 하더라도 개천에는 승천한 용이 여러 마리였다. 자식 교육을 위해 소 팔고 논 팔아 가방끈을 길게 해 주면 뭐라도 되긴 됐다. 지금은 도로가 나고 초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있는 논을 사두었던 사람들은 부동산으로 한 몫 단단히 챙겨 벼락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한 나라의 경제가 급속도로 팽창할 때는 자수성가의 신화가 동네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신분상승은 그때까지였다.

 IMF이후 더욱 사나워진 경쟁 시장에 내던져진 청소년기의 20대는 공부하라는 무한 잔소리와 엄친아의 압박에 시달려야만 했다. 불황민감성체질답게 소비 수준은 한없이 올라가는 것과 더불어.


 끝나지 않은 IMF의 망령

 이런 20대의 눈에 비친 지금의 현실은 매일이 'IMF'나 다름없다. IMF때 부모님이 하던 잔소리는 이 사회에서 대신 해 주고 있다. 토익이 900점도 안된단 말야? 어학연수 경험도 없고? 뭐야, 학점은 3.8도 안 된다구? 그럼 봉사활동은? 기업 인턴은 안하고 뭐했냐? 제2외국어는? 자격증도 그것밖에 안돼?
 너의 보잘 것 없는 스펙은 네가 루저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라는 취업시장의 잣대에 오늘도 우리는 ‘싸구려 커피’를 삼킬 뿐 이다.



<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takebest?Redirect=Log&logNo=90035970211 >



 IMF가 정녕 국제무역의 확대와 균형성장 촉진의 수호자인지 공정한 신자유주의라는 수트를 차려입은 깡패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IMF가 휩쓸고 간 폐허의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20대에게 더 이상 청춘의 낭만은 없다. 진리를 탐구하고 꿈을 위해 제 몸 하나 온전히 던질 수 있게 하는 ‘낭만’은 없다.

 IMF 이후 13년. 20대가 될 수 있는 것은 엄친딸, 엄친아 혹은 루저일 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