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적 가치의 일상화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부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물론 부자가 되는 것은 언제나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집에서 재테크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돈이 많지 않은 부모는 자식에게 미안해야 하는 사회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일상적 삶에서 금융에 대한 관심이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여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삶을 조직하는 방식을 포함한 모든 것이 금융적 가치를 통해 나타난다. 갯벌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연예인 브랜드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어떤 근거로 측정 된 것인지 모르는 0이 10개쯤 있는 현실감 없는 숫자로 환산 시켜야 사람들은 그것들이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금융시장을 통해 의사소통한다. 천안함 사건도, 연예인의 가십도 모두 금융시장의 지표에 반영되고, 금융시장의 지표는 이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다시 우리에게 말해준다.


화폐의 가상성과 세계화


문제는 금융은 실제적이기 보다는 가상적이라는데 있다. 화폐의 경우 화폐의 금본위 제도가 사라지면서 화폐에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가치는 사라졌다. 화폐는 화폐, 즉 다른 화폐에 의해서만 가치가 정해지게 된 것이다. 화폐는 결국 실물을 소유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환율에 따라 우리가 1000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급격히 달라지고, 환율이 나라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돌이켜 보면, 화폐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다른 화폐라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금융시장과 세계화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부분도 바로 이 환율이다.

화폐가 실물과 대응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화폐에 대응되는 ‘자기지시성’을 가지기 때문에 화폐의 가치는 불안정한 양상을 띠게 된다. 조지 소로스 개인의 자본으로 영국의 파운드화를 무력화 시키고, 그 후로 몇 년 후 일본의 엔고현상을 부추긴 일화를 보면, 꽤나 큰 나라의 화폐 가치마저도 다른 나라의 큰 자본에 의해 좌우되며, 자국의 화폐에 대한 주권이 자신들에게 없음을 알 수 있다. 세계화는 자본이 쉽게 움직일 수 있게 함으로써 말 그대로의 세계화. 우리나라의 것과 다른 나라의 것이 구분이 없는 세계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화의 문제점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보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환율만 해도 그렇다. 경제규모가 훨씬 적은 우리나라는 국가가 보유한 달러를 다 동원해도 한 헤지펀드의 공격을 막을 수도 없다. 또한 세계화에 따라 환율정책과 무역 정책들이 선진국 기준으로 수렴하게 되는데, 역량이 되지 않으면서 선진국의 정책을 따라 하다 보니 부작용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역시 OECD에 가입하기 위한 무리한 환율정책 변경으로 IMF의 시초를 마련했다.


금융시장의 가상성과 세계화
 


[그림] 투자자들의 뇌 구조 : 직접 구성해본 평범한 투자자들의 뇌 구조이다. 현대의 투자자들이 주로 신경쓰는 것은 금융상품의 기호적 가치이지 본래적 가치가 아니며 거의 신경쓰지 않는 것들은 금융상품의 본질적인 의미이다.


금융시장의 경우는 더 깊이 가상화가 진행되어 있다. 실물 이전에 상품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물은 매우 약하고 심지어 일부 파생상품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근 10년간 크게 발달해 온 파생상품들은 투기성이 짙고, 실물 경제와의 연관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하이퍼리얼리티의 징후는 두 군데서 뚜렷이 나타난다. 첫째는 실제처럼 보이는 가짜 경제가 진짜 경제보다 더욱 진짜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실물경기가 살아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가지수가 오르자 실제 경제가 좋아진 것처럼 환호하는 현재의 모습에서 관찰할 수 있다. 둘째는 모방적 구매로 투기 버블이 생긴다는 것이다. 약간의 주가지수 상승은 더 많은 투자자를 불러옴으로써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은 버블이 형성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중국, 브릭스 펀드 하나 없는 집이 없었을 만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금융의 세계화가 가속화 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 러시아, 미국이 휘청일 때 우리나라의 가계와 KOSPI가 함께 휘청거린다. 각각의 기업이 러시아나 스페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서가 아니다. 금융시장의 가상화는 이렇게 일상과 거시경제에 깊숙이 침투하여 세계화를 어떤 부문에서보다도 빠르게 진행시킨다. 다른 나라 회사의 일부는 직접적으로 살 필요 없이 이베이에서 물건을 사는 것 보다도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딜러가 실수로 주식 수에 10조를 곱해 팔자, 하루에 1000포인트가 떨어진 다우지수의 사례를 보면 주가는 더 이상 그 기업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에 따른 수요와 공급의 결과치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워렌 버핏이 어떤 회사의 주식을 산 것이 알려진다면, 그 기업이 획기적인 신제품을 출시했다는 사실 보다 더 큰 반향을 가져올 것이다. 실제로 기업의 경영을 탄탄하게 하기 보다는 주가의 관리에만 신경을 쓰는 경우도 나타난다. 금융시장의 가상성과 세계화가 만나자 거대 자본은 다른 어떤 실제의 것들보다도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금융시장은 몇몇의 개인이나 헤지펀드가 좌지우지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초가 약하다. 하지만 개인과 헤지펀드에게 양심이나 윤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들이 세계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졌는데, 이들을 규제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세계의 경제는 언제나 불안하다. 미국 정부가 금융 그룹의 눈치를 보며 별다른 제제를 하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라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의 우리


결론을 내야 하는데, 마음이 무겁다. 나는 단기간 내에 세계가 세계화와 금융의 가상화를 중단하거나 역행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현재의 금융시장과 금융세계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느끼면서도, 어떤 식으로 바꿀 수 있는지 대안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큰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큰 조류의 흐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아무런 실물의 회복 없이 지표의 상승만으로 지나치게 안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더 큰 위기에 대비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점점 도박성이 강해지는 주식시장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해결책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 흐름이 계속 된다면 새로운 세계에 맞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철학이 나올 것이라고는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더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