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토마스 울프의 <그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소설이 있다. 이 얼마나 섬뜩한 말인가. 태어나고 자란 곳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기억될 고향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니. 아무리 멀고, 긴 여행을 떠나도 기다리고 있는 고향과 집이 있다는 것은 또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거늘, 돌아간다는 희망과 동력을 상실한 채 기약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난민이라 부른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정의에 의하면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으로 인한 방해를 받을만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공포로 인해 자신의 국적 국 밖에 있는 자를 난민으로 규정한다(난민협약, 1951). UN은 공식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1,520만의 난민이 있는 것으로 집계했지만 사실, 난민 실태는 1,520만의 수치 이상을 의미한다. 아직 난민이라는 이름조차 인정받지 못한 더 많은 난민 대기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난민인권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분쟁으로 고향은 떠났지만 아직 외국으로 도피하지 못한 사람들, 즉 국내 실향민(IDP)이 2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난민처럼 국제 법에 의거해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지도 못하며 국적국의 보호에서도 소외된 난민들보다도 더욱 열약한 상황에 처해있다.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은 그나마 희망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난민 발생의 원인은 지구적 위기를 가져오는 모든 문제들과 연관이 되어있다. 전쟁과 재난, 정치적 박해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환경문제로 인한 환경난민이 증가하고 있는 등 난민은 한 나라 안에서 발생한 문제에 국한되어 야기되는 것이 아닌, 전 지구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한 예로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일어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는 각각 200만 명, 15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되고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이 증가됨으로써 야기되는 분쟁은 난민 발생의 직, 간접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난민보호에 대한 책임은 국제사회 모두에게 있지만, 난민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는 소극적이기 그지없다. 특히 중동, 북아프리카를 빼면 가장 많은 난민들(약, 2500만 명)의 난민들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했지만 이 지역은 그야말로 난민 보호의 사각지대이다. 유럽과 남북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는 지역 인권보호를 위한 메커니즘 설립되어 지역적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아시아에는 국가 간 공조하고 있는 메커니즘이 전무해 난민문제는 물론이고 인권문제에 관해 논의도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또한 아시아의 국가들은 가장 저조한 난민협약 가입 비율을 보이고 있으며 그나마 실질적으로 난민을 보호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지는 나라는 한국, 일본 정도이다. 한국은 1992 난민협약 및 의정서 가입한 이래로, 2000년도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 상임 이사국 선출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의 정치적 민주화와 더불어 경제의 급격한 성장으로 대외적 이미지가 좋아지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과 반기문 UN 총장을 배출하게 되면서 난민신청 건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2009년엔 난민 신청자 2491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국제사회 속 높아진 한국의 위상은 허울뿐이다. 어렵사리 한국에 들어온 난민들은 난민 허가라는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하기 일쑤다. 2008년 한국의 인구대비 난민 비율 51만 명당 1명으로 OECD 가입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평균 500명 당 1명). 1992년에 UNLCR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에서야 겨우 1명의 난민만을 인정했으며, 2000년도에 UNLCR 상임 이사국에 선출된 것으로 보았을 때 명분을 위한 허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009년에 이르러 74명의 난민을 인정한 것을 법무부에서 홍보하였었는데, 그 당시 누적되어있던 난민 신청자 수와 그 중 불허된 신청사례가 500건이 넘는 것을 보면 한국은 난민들에게 그 문을 꽁꽁 닫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정부의 난민보호에 대한 의지는 바닥이다.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난민은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는 그들에 대한 우리의 편향된 시각을 잘 나타낸다. 하지만 세기의 천재 중 한명인 아인슈타인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을 했던 난민이었고, 김대중 대통령도 한때 미국에서 난민신분으로 보호를 받았었다. 난민은 가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닌 난민이기 때문에 가난해지는 것에 불과하다. 난민인권연구소 최원근 사무팀장은 “실제로 난민 신청을 한 상당수 사람들은 출신 국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중국이나 미얀마 그리고 몇몇 아프리카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그들은 엄격한 한국의 난민허가기준과 한국인들의 차별에 이중으로 고통을 호소한다. 한국에 들어온 난민 신청자들은 난민신청 1년 이내에는 노동활동이 금지되는 비현실적 법 조항 때문에 외부의 도움 없이 합법적으로 삶을 영위하기 힘들다. 난민 신청자들이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 틈에서 섞여 살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처럼 다른 외국인들 사이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난민보호를 위해서는 난민, 혹은 난민신청자를 보호하는 시설의 확충이 필수적이다. 세계화를 외치며 세계 속의 한국이 될 것을 독려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찾아 온 그들을 ‘남’, ‘우리’와 다른 ‘외국인’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중적이기 그지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본은 경계 없이 국가에서 국가를 넘나들고 있지만 난민들이 국가를 넘어 한 곳에 정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기약 할 수 없다.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이면이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그 ‘촌’에 있는 한 뼘의 땅에도 정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정부가 영종도에 난민지원센터를 건립 중에 있다. 하지만 센터의 위치는 한국인들도 거의 살지 않는 외딴 곳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주변에는 헬기장과 하수처리시설등이 있는 등 난민이 한국에 적응해 나갈 보금자리로서 적합하지 못하다고 한다. 난민은 2등 시민 혹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생색내기 지원이 아닌 난민들을 위한 현실적인 변화와 지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