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 대한 솔루션을 말하는 책들과 강의들이 넘쳐나는 세상,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연애를 하며 문제를 겪습니다. 우리의 연애관계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들이 무엇인지 생활도서관과 함께 고민해봅시다!”

이화여대 생활도서관 2013-2학기 기획도서전이 열렸다.


지난 10월부터 이화여대 학생자치기구 생활도서관에서 흥미로운 기획전이 진행되고 있다. 이름 하여 <연애의 정석>. 오가는 이들의 발목을 붙잡을 만한 제목이다. 각종 동아리 회의실과 총학생회실 등이 자리한 학생문화관 2층의 생활도서관 문을 열면, ‘연애에 대해 할 말 있는’ 생활도서관 운영위원 15명이 직접 고른 20권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한 학기에 한 번씩 기획으로 탄생하는 생활도서관의 도서전은 운영위원들 간의 끊임없는 사전 토론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번 도서전은 최초로 자보전과 함께 전개되는 중이다. 운영위원들이 각자의 연애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 제작한 자보들을 생활도서관 벽에 붙여놓은 전시다. 책 목록만 써서 붙여놓기보다 기획의 주제와 의미를 보다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지난 11월 28일에는 재학생 및 타교 학생들 20여 명과 함께 연애에 대한 단편영화 3편을 상영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 날 상영된 영화는 <느낌이 좋아(Feel So Good), 임경희 감독, 2008, 16분>, <데이트(Blind Date), 장희선 감독, 1008, 20분)>,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소준문 감독, 2007, 25분>. “모두 정말 재밌어요. 꼭 보세요.” 수편의 영화를 본 뒤 조심스럽게 영화목록을 골랐다는 생활도서관장 10학번 임솜이(국문)씨는 기자에게 영화를 ‘강추’했다. 

이번 기획을 통해 생활도서관 측은 ‘사랑’이 두 대상의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어떤 욕구도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를 둡니다.”

이화여대 생활도서관장 임솜이씨가 기획도서 코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학생 자치기구로서 생활도서관이 처음에 만들어졌던 취지는 권력에 의해 제한된 지식권을 양적, 질적으로 확장시키기 위함이었다. 이화여대 생도에서도 금서를 유통하거나, 개방되지 않은 중앙도서관의 서가를 개방하라는 운동 등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점차 ‘도서대여 서비스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많아졌고 현재는 기존의 문제의식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구성원들도 ‘망하지 않기’에 집중하느라 실무에만 치중하려 했던 측면이 적지 않다. 
 
이렇듯 정체성이 흐릿해져가는 상황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활동을 계속 하는 것이 힘들었다는 임 씨는 관장으로서 구성원들과의 꾸준한 회의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해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소한의 문제의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활도서관이 단순히 학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냐, 아니면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곳이냐, 라는 의문에 대해 후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기계발이나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 ‘필요한’ 논의를 행하고 대안적인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생활도서관 앞 포스터. 기획도서전 도서목록 좌측에 붙어있는 자보의 내용이 인상적이다.

 
이번 <연애의 정석> 기획도서전 및 자보전은 이러한 고민이 낳은 최초의 결과물이다. 문화와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가는 학생 자치 활동으로서의 생활도서관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에 맞는 사업을 정기적으로 하자는 데 운영위원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에 기획의 형식(format)도 처음 작성했고, 실무를 분배하는 것 이외에 매번 안건지를 만들어 논의를 많이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임씨는 ‘책’을 매개로 할 수 있는 활동이 무궁무진하기에 앞으로 해나갈 활동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생활도서관은 이번 겨울방학부터 세미나를 다수 개최하여 다음 학기 기획을 미리 준비할 예정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고민하면서, 베스트셀러 비평과 같은 정기 코너도 구상 중이다. 기획도서전 및 자보전은 12월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