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Aggravation(도발)의 속어로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게임 내에서의 도발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게 적의를 갖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극적이거나 논란이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을  "어그로 끈다"고 지칭한다.

고함20은 어그로 20 연재를 통해, 논란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목소리도 주저없이 내겠다. 누구도 쉽사리 말 못할 민감한 문제도 과감하게 다루겠다
. 악플을 기대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지속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들 때가 있다. "여자치고 더치페이 잘하네", "여자 같이 왜 그래?" 대화를 하는 내내 상대방이 했던 사소한 일상어가 찝찝함을 가져다줘 잔뜩 굳은 얼굴로 억지 미소를 짓던 경험들 말이다.


지난 연말,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다른 남자인 친구에게 말했다. “계집애같이 왜 그래?”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필자는 방금 한 말을 취소하라고 했고, 그 친구는 아랑곳없이 또 한 번이나 더 그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언어가 문제없음을 드러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이상해진 분위기를 감지한 필자는 화제를 돌렸고, 그렇게 일상에서의 ‘사소한 언어폭력’은 '또' 스쳐 지나갔다.

흔히 일상에서 언어폭력의 원인을 당사자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부족’에서 찾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배려’와는 별개로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 사회적 특성이 한 개인의 언어에 영향을 미치고, 곧 그것이 그 사람의 언어 습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쉽게 뱉어지는, 혹은 쉽게 입에 오르내리도록 존재해왔다. 소심하고 잘 삐치는 남자를 두고 ‘계집애 같다’고 말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여자 같다’라는 말에는 무슨 문제가 있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언어폭력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극대화된다.

‘여자 같다’ 라는 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남자 같이 강하지 못하니 너는 여자 같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답지’ 못한 사람이나 자주 토라지는 사람을 두고 ‘여자 같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주 토라지고 섬세한 사람 개개인의 특성을 ‘여자’라는 생물학적 특성으로 규정해버린다. 결국 섬세하고 자주 토라지는 개인의 성격은 무시한 채 ‘너는 남자답지 못해, 강해져야 해’ 라는 식의 결론을 내버리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게이 같다’, ‘아줌마 같아. 이상해’도 일상에서의 사소한 언어폭력에 해당한다. 이 문장은 ‘게이’와 ‘아줌마’를 사회가 ‘부정적 언어’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손으로 하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손고자’ 등의 단어도 사실은 ‘고자’라는 소수자들에 대한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쪼잔하다 말하지 말지어다

이렇듯 우리 일상 대화 곳곳에 언어폭력이 존재한다. 누가 보면 사소할지도 모르는 언어폭력에 문제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자칫하면 ‘쪼잔한’ 인간으로 비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소한’ 언어폭력들은 한 개인에게 하루 종일 머릿속과 마음을 괴롭히는 지옥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에서 언어로 인해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일상에서의 언어폭력에 반기를 드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상대방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발언이 아닐 경우가 다반사임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사고한 내용을 언어로 표현하고, 언어를 통해 사고하면서 스스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언어는 대표성을 띄고, 그 언어가 머무른 자리는 언어의 주인이 어떤 사람임을 나타내는 증표가 되기도 한다.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인간에게 끊임없이 다가오는 존재가 머무르는 존재의 집.’ 결국 언어는 한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고, 그 존재의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에서의 언어폭력은 우리 자신의 '존재의 집'을 파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