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 Aggravation(도발)의 속어로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게임 내에서의 도발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게 적의를 갖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극적이거나 논란이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을  "어그로 끈다"고 지칭한다.

고함20은 어그로 20 연재를 통해, 논란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목소리도 주저없이 내겠다. 누구도 쉽사리 말 못할 민감한 문제도 과감하게 다루겠다. 악플을 기대한다.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인식은 줄곧 여성을 향해있었다. 성희롱은 개인이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그 수위의 허용 정도가 여자에게는 관대하고 남자에게는 엄격한 듯 보여진다. 즉, 여성에게 할 수 있는 성적 농담의 허용 범위는 좁은 반면 남성의 허용 범위는 크다는 것이다. 그 기저엔 '남자에게 이 정도 농담하는 게 어때서?’ 라는 성차별적인 인식까지 담겨있는 듯하다.

ⓒ라디오스타

방송에서 여성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은 크게 이슈가 되어 왔다. 페미니즘적 담론이 확장되면서 여자를 향한, 혹은 여자 연예인을 향한 조금의 성적 농담도 필시 논란을 낳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가수 조영남의 성희롱 논란이 있다.

지난 2011년 방송한 KBS ‘빅브라더스’에서 조영남은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소녀시대 태연을 껴안으며 갑작스러운 뽀뽀를 했다. 당황한 듯 눈이 커진 태연의 모습이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고, 네티즌의 항의성 짙은 글이 프로그램 게시판을 뒤덮었다. 논란이 커지자 방송 다음날 제작진은 일부 매체를 통해 ‘사실이 아니다’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성희롱이 개그 소재? 나 지금 웃고 있니?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성희롱 문제는 그 피해 대상이 여성일 경우에만 논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남성 연예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가 '쿨한 농담'이나 '섹스립'으로 치부되는 사례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룹 ‘제국의아이들’ 임시완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지난해 8월 방영된 Mnet ‘비틀즈코드’에서 당시 MC였던 탁재훈은 임시완에게 “첫경험이 언제예요?”, “시완씨 총각 아니죠?” 등의 질문을 했다. 평소 여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모태솔로’라고 말해온 임시완의 당황하는 모습을 개그 소재로 사용한 것이다.

또 지난해 12월에 방송된 KBS 예능 ‘맘마미아’에서는 신체적인 성희롱이 이어졌다. MC였던 이영자가 임시완의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엉덩이를 주무르는 듯한 모습이 방영되었다. 이 장면은 임시완에게 ‘영원히 고통받는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로 커뮤니티를 장식하게 했다. 모태솔로 발언 이후로 임시완에게 쏟아지는 성적 농담을 유행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비틀즈코드2



성희롱 당사자가 여성이 되었을 때 관대해지는 모습 또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방영된 MBC 예능 ‘라디오스타’는 성희롱의 피해 대상이 남성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당시 게스트로 출연한 그룹 ‘애프터스쿨’의 리지는 개인기를 물어보는 질문에 상대방의 젖꼭지를 한 번에 찌를 수 있다고 답했고 이에 또 다른 게스트였던 김진수와 김구라의 젖꼭지를 찌르는 장면을 연출해냈다. 당시 이 행동에 대해 불쾌함을 내색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개그 소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두 사례를 여자 연예인의 경우였다고 생각해보자. 남자아이돌의 개인기가 여성의 젖꼭지 위치를 맞추는 것이고, 여자 MC를 상대로 가슴을 찔렀다면 다음날 포털사이트 메인을 점령하는 건 물론이고, 해당 남자 아이돌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을 것이다. 결국 성희롱 당사자가 남성이었기 때문에 ‘개그 소재’가 가능했던 셈이다.

남자연예인을 향한 성희롱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는 것에는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에 기인하기도 한다. 해당 연예인 팬들의 반응을 보면, 문제를 제기하는 팬들도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성희롱’이라는 단어랑 이어지는 것을 못 견뎌 하며 오히려 기사에 오르내리는 걸 꺼려하는 분위기 또한 존재한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식이다. 피해 당사자들도 그들 스스로 '쿨한 농담'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성희롱’은 대상이 누구인지를 떠나서 불편하게 여겨져야 한다. 남자는 괜찮다는 인식이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 속에서 남성 성희롱에 대한 문제제기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남자연예인 성희롱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열성팬의 예민함 정도로 치부되어선 안 되는 이유다. 또 '쿨한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생각 또한 위험하다. 성희롱은 ‘쿨’하게 넘겨짚을 수도, 그래서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