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는 다중전공제도라는 것이 있다. 이중전공, 복수전공, 부전공 등을 아우르는 말로, 학생들이 하나 이상의 전공을 이수할 수 있게 한 제도의 총칭이다. 학교 별로 명칭과 이수 조건 등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 시행 중이며, 2004년 고려대를 시작으로 일부 대학은 다중전공 이수를 의무화했다.

다중전공이 만들어진 본래의 의도는 명확하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자신의 본 전공 이외의 학문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 이상의 학문을 융합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도록 장려하려는 목적도 있다. 일부 대학의 연계전공이나 융합전공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한다.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다중전공 대상은 ‘경영학과’다. 경제 관련 학과를 선호하는 학생도 많다. 서강대학교의 경우 2011학년도 1학기 기준 경영‧경제계열 강의를 수강하는 다중전공생이 본 전공생의 19배에 달했다. 이렇듯 선택하려는 사람이 많다보니 학점 외에도 면접(영어면접인 경우도 있다)이나 학업계획서(해당 학과에 진학했을 때 자신의 학업계획을 담은 일종의 자기소개서) 등을 통해 다중전공생을 엄격히 선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은 경영‧경제로 몰리는 걸까?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특별히 상경계열에 흥미와 관심이 많기 때문일까? 아니다. 이유는 ‘취업’에 있다. 기업이 상경계열 출신의 입사지원자를 선호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학생들은 상경계열로의 다중전공에 뛰어든다. 이공계열 학생들에 비해 취업이 힘든 인문사회계열 전공 학생들은 다중전공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왜곡된 다중전공제도의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다.

 

결국 학생들은 자신의 흥미와 관심은 쳐다볼 새 없이 취업을 위해 회계를 배우고 경영정보시스템에 몰두한다. 재미없고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한다. 그래야 훗날 원하는 기업에 입사할 확률이 조금이나마 높아진다. “대학만 가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어”라는 속삭임에 홀려 ‘언수외탐’에 파묻혔던 이들은 이제는 “상경계열을 다중전공하면 대기업에 들어가기 쉬워”라는 속삭임에 자신을 내맡기게 됐다.

왜곡된 다중전공 현실은 부수적인 문제를 낳는다. 억지로 다중전공을 선택한 학생들은 이제 졸업이란 벽에 부딪힌다. 본 전공도 벅찬 이들은 다중전공 학과에서 요구하는 학점과 졸업요건을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한다. 다중전공 인기학과가 본 전공인 학생들은 수강신청에서 그 많은 타과생들과 경쟁해야 한다.

“난 이중전공만큼은 영문학과로 하고 싶었어” 부모님과 선생님의 등쌀에 밀려 그나마 취업에 유리한 사회계열로 진학한 친구는 지난해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경영학과를 이중전공으로 선택했다. 고등학교 때에도 수학이 제일 싫었다는 그녀는 지금 두꺼운 회계원리 책과 씨름하고 있다.

지난 4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연애하는 것처럼 대학도 기업에 어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을 위한 대학, 취업을 위한 대학생만 남은 현실에서 다양한 학문을 장려하는 다중전공이 온전할 리 없다. 상경계열 다중전공으로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유효할 것이다. 대학입시의 큰 관문을 넘은 대학생들을, ‘또 하나의 입시’ 다중전공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