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대자보를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한 학교가 있다. 그 학교의 총장이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성신여자대학교와 심화진 총장의 이야기다.

지난 4월 3일 김황식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정선진 전 법무부 장관과 함께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 위촉했다. 심화진 총장은 짧게는 경선이 끝나는 4월 25일까지 길게는 지방선거 당일인 6월 4일까지 김황식 캠프의 모든 선거업무를 총괄한다. 

 

 


 
대학 총장이 교육자 된 도리로 어떻게 정치권에 기웃거릴 수 있냐는 낡은 레토릭으로 그를 비난하려는 바는 아니다.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전교조 교사이든 특정 정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총장이든 모두 교육자이기 이전에 시민이다. 자신의 직업적 신념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라면 자유롭게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고,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단지 심화진 총장이 새누리당에 발을 담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비난할 근거는 없다. 

다만 지난날의 사건들을 회상할 때 성신여대에서 정치적 자유란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돌아가지 못하며 학교 내에서 그 구성원이 가진 상대적인 권력의 크기에 비례해서 주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성신여대가 어떤 학교인가. 재학생이 작성한 안녕들 대자보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승인을 거부한 학교다. 지난해 12월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의 활동가 ‘밀사’는 안녕들 대자보를 부착하기 위해 승인 도장을 받으러 간 부처에서 “정치적인 내용의 자보는 게시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성신여대는 여전히 재학생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과정조차 학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성신여대가 정치적 중립성을 무기로 학생들의 의사표명과 집단행동을 가로막은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5월 성신여대에선 한 학생단체가 주최하는 5.18관련 행사 홍보 포스터가 학교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학교는 철거의 이유로 게시물이 내용이 정치적으로 선동적임을 들었다. 

학생 개인이 정치적 사안에 의사를 표현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것과 총장 개인이 여당의 서울시장 선거캠프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정치적이고 덜 정치적인지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정치적인 자유는 시민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다만 성신여대에선 그 무차별의 원칙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을뿐이다. 

심화진 총장의 정치적 행보가 갑작스런 움직임은 아니다. 심 총장은 지난 2009년 4.29 재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 다음해인 2010년엔 제 5회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서울시당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한다. 학교가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학생들의 권리를 가로막을때도 심화진 총장은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 걸쳐 직간접인 접촉을 유지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은 무제한의 정치적 자유를 갖고 권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 자유를 제한당한다. 역사적으로 봉건왕조시대에서나 있을법한 사고방식이다. 2014년 현재엔 북한과 같은 국가에서나 상식으로 통한다. 이제라도 그들 스스로 감출 수 없는 자신들의 천박함과 후진성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