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입구 역에 내려 연두색 ‘용산02’ 마을버스를 타고 십여 분 간 빙글빙글 언덕을 올라 ‘신흥교회’ 정류장에 내리면 보이는 곳. ‘Storage Book and Film' 흰 글자가 또박또박 적혀있는 유리창 뒤쪽에는 책꽂이와 매대가 자리하고, 둥근 의자에 앉아 책을 보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 앉아있던 인상 좋은 서점 운영자 강영규(34)씨가 환하게 웃으며 차 한 잔을 내온다. 해방촌의 작고 따스한 공간, 독립출판물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을 찾았다.


“작지만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라고 강영규 씨 스스로 정의한 이곳에선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만날 수 있다. 2008년 1월, 양재동에 처음 공간을 꾸렸을 때에는 필름 카메라를 판매하는 곳이었고, 2012년부터는 현재처럼 독립출판물과 필름카메라를 함께 다루는 가게로 운영되고 있다. 충무로로 옮겼다가 이 곳 해방촌으로 이사 온 것은 올해 1월이다.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던 사람이 책방을 열게 되기까지


강영규 씨는 사진을 통해 독립출판과 만났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사진에 관심이 생겼던 그는 필름카메라의 색감에 빠져 지금까지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저의 사진들은 유명 명소나 인물의 사진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나 길거리를 담고 있어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회상하기를 좋아한다는 그는 여행 사진을 많이 찍었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고민 끝에 사진집을 만들게 됐다. 


“필름카메라 사진은 보정 등 후작업이 전혀 필요 없어서, 제 책을 보고 필름카메라의 매력을 많은 분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도 컸습니다.” 실제로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전신은 ‘카메라 스토리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필름카메라를 쉽고 편안하게 접하길 바라는 마음에 외국에서 카메라를 수입해 판매하는 공간이었다. 


2012년 9월부터 강 씨는 ‘독립출판물에 관하여’ 프로젝트를 <TOGOFOTO>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게 됐고, 1호 “From Behind"를 300부 제작해 독립출판 서점을 중심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현재 사진집은 4호까지 만들어졌다. 작년 11월부터는 'Walk zine'이라는 거리 사진집을 기획해, 홀수호는 강영규 씨의 사진을 담고, 짝수호는 자신만의 사진집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제작하고 있다. “사진집을 내고 싶은데 뭔가 전문가여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부담감이 있다면 바로 저에게 연락주세요”라고 강 씨는 말한다.


이쯤에서 사진과 책의 공통점을 찾아보게 된다. ‘말이 없는 매개체’이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 “제 사진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좀 더 많은 분들이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던 것 같아요.” 같이 매치해도 큰 어려움이 없겠다는 생각에, 그는 독립출판물을 카메라와 함께 다루게 되었다.

ⓒ'TOGOFOTO' 4번째 시리즈 중 한 페이지. 강영규 씨의 사진들은 일상 속 사람들과 길거리를 담고 있다.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서점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말 그대로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물었더니, “오히려 혼자 운영하기 때문에 자체 검열 과정이 크게 없어요”라는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좀 더 다양한 독립출판물이 들어와 있다고 봅니다. 독립출판은 다양성을 기본으로 제작된 것이므로, 다양성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책방을 열 때는 제작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입점을 받았는데, 그 과정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먼저 연락 주시는 분들이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다. “현재 400팀 정도 들어와 있어요. 규모가 더 큰 곳은 훨씬 더 많은 팀이 들어가 있겠죠. 그만한 창작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지 않나 싶어요. 도시별로 하나씩은 생기고 있지만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서울의 홍대나 마포 쪽만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고. 해방촌만 해도 동네 주민들은 대부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이에요.”


사실 그는 ‘독립출판’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자본에서 자유롭다는 느낌만 주는 것 같아서라고. 통상적으로는 그렇게 부르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리틀 프레스’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하지만 독립 출판물이 대형 서점에 들어가기 힘든 이유도 분명 있긴 있다. “배본사라고, 중간에 거래하는 곳을 통해서만 입점할 수 있는데, 여기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대량 인쇄할 경우 (창고) 보관비용 등이 드는 데다 유통하는 데에도 자금이 필요해요.” 또, 굳이 대형서점에 들어간다고 해서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독립출판이라는 단어를 뒤집어보면 ‘수익’ 혹은 ‘생계’와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사진집을 내고 책방을 운영하는 그도, 일부 제작자들처럼 생계 수단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는 건지 물었다. “충무로에 있을 때는 주말에만 운영했어요,”라고 그는 말을 시작했다. “다른 책방 운영하시는 분께 화, 목 운영을 부탁드리곤 했었죠. 그런데 6년간 직장을 지난달에 그만뒀어요.” 그렇다면 이제 그는 정말로 ‘책방 운영자’다. 


혹시 불안하지는 않을까, 책방 운영을 지속하는 이유를 물었다. “재밌어서”라고 한다. “물론 급여를 받으면 정기적인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어떤 소비를 하는 데에는 크게 부담이 없지만, 그것만큼 더 많은 정신적 부담감이 있거든요. 삶이 되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너무 깊게 자리를 잡아서, 출근하는 날마다 너무나 싫은 거예요.” 괴로웠던 회사 생활을 정리하니 오히려 “좋아요”라고 답하는 그다.


“직장 생활이 사실 언제 끝날지 모르잖아요. 실제로 윗분들이 잘리는(해고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아이들 초등학교 보낼 때쯤 갑자기 통보받는 분들도 늘고. 흔히 말하는 교과서적인 삶의 패턴이 있잖아요. 20대 중반 넘으면 취업해야 하고, 취업되고 나면 30대 초중반에 결혼해야 하고, 아이 낳아야 하고……. 사람들이 가지각색으로 살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고정관념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강 씨는 자신도 주입식 교육 속에서 살아온 전형적인 사람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그는 담담히 말한다. 그것이 사진이고, 창작이고, 서점이라는 공간이었다.

조금씩 커져가는 독립출판 이야기


강영규 씨는 작년 7월부터 손으로 직접 잡지를 만드는 ‘진(zine)메이킹 워크숍’을 진행해오고 있다. “책 만드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작업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강 씨의 말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만들어진다. 워크숍은 현재 5회까지 진행됐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에 만들어진 진(zine)을 보면 매번 새롭고 놀랍습니다.”


지난해부터는 헬로인디북스, 책방 피노키오와 함께 소규모 출판물 북페어인 ‘퍼블리셔스 테이블’도 꾸렸다. 현재 2회 진행되었으며 조만간 3회에 대한 계획을 잡을 것이라 한다. 창작자와 구매자 간의 간격을 보다 좁히고 일대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에 초점을 두고 있다. 5월에는 독립출판강좌 “리틀프레스”도 열린다는데, 개요와 기획부터 홍보와 제작, 유통까지 실무적인 부분을 다루게 된다. 공지 하루 만에 정원이 마감되어 놀라웠다는 후문이다.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커져가는 만큼, 독립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재미있게 만든 다양한 창작물들이 고루 알려지고 공유될 수 있는 공간을 꿈꾸며, 강영규 씨는 오늘도 책방 문을 연다.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면 거기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서점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안겨주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참 뿌듯하다는 그의 웃음이 넉넉히 지속되길, 조용히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