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동양은 ‘글’을, 서양은 ‘말’을 중시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명문(明文)’이 발달한 반면, 서양에서는 ‘명 연설’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뉴스에 ‘오바마, 51초 침묵의 명 연설’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네티즌들 사이에 ‘노무현 대통령 3대 명 연설’같은 동영상이 떠도는 것을 보면, 이제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도 ‘말’의 힘에 공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배우의 좋은 목소리는 훌륭한 외모만큼이나 치명적인 인기의 조건이 되었고, 심야 TV토론 프로그램의 파급력 역시 커졌다. 그에 따라 일반인에게는 의례로 넘어가곤 했던 대통령의 기조 연설이나 광복절 연설, 각종 담화 등이 일반인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껏 인류사에 영향을 미쳤던 명 연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또,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훌륭한 연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미국의 흑인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I have a dream'이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말로 유명한 에이브러함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거 연설 등은 이미 유명하다. 본 기사에서는 이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충분히 교훈적이고 충분히 의미있는 연설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추모 연설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실린 ‘가지않은 길’로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는 1963년에 사망한 미국의 국민 시인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그를 추도하는 연설을 한 바 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미국의 나아갈 길을 제시함으로써 큰 공감을 얻었다.

“비단 힘 때문만이 아니라 그 문명 때문에 전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미국을 고대합니다.”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commands respect throughout the world not only for its strength but for its civilization as well.”


로버트 프로스트(좌)와 J.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우)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던 미국이었지만, 존 F. 케네디는 미국이 그 패권을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문화적으로 융성한 나라가 되길 바란 것이다.

“나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 환경의 아름다움을 보호 하는 미국, 과거로부터 내려온 오래고 큰 집과 광장과 공원을 보존하는 미국,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균형 잡힌 당당한 도시를 건설하는 미국을 바라봅니다.

나는 사업이나 정치적 업적에 보답을 하듯이 예술적 업적에도 보답을 하는 미국을 바라봅니다. 예술적 성취 수준을 꾸준히 높여가고, 국민 모두를 위하여 문화적 기회를 꾸준히 확대하는 미국을 바라봅니다.”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will not be afraid of grace and beauty, which will protect the beauty of our national environment, which will preserve the great old American houses and squares and parks of our national past and which will build handsome and balanced cities for our future.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will reward achievement in the arts as we reward achievement in business or statecraft.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will steadily raise the standards of artistic accomplishment and which will steadily enlarge cultural opportunities for all of our citizens.”

 한 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것이 비단 ‘음식물 쓰레기 없는 거리’나 ‘막히지 않는 도로’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위해서도 어떤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연설이다.



 

2. 빌 게이츠의 하버드 대학 졸업 연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기업인을 꼽으라면 아마 빌 게이츠가 가장 먼저 꼽히지 않을까. 세계 최고의 부호이면서 그는 동시에 세계 최고로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중퇴한 하버드 대학교의 졸업 연설에서 자신의 철학을 학생들에게 전했는데, 무엇 때문에 그가 그토록 많은 기부를 하고 약자를 위하려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저는 이곳 하버드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의 새로운 사상에 대해서 배웠고 과학이 이룩한 진보들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류애의 가장 큰 진보는 발견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발견들이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적용되는가 입니다.”

“I learned a lot here at Harvard about new ideas in economics and politics. I got great exposure to the advances being made in the sciences. But humanity’s greatest advances are not in its discoveries but in how those discoveries are applied to reduce inequity.”

하버드 가족 여러분, 여기 있는 여러분은 전 세계의 훌륭한 두뇌 집단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입니까? 교직원, 동문, 학생, 하버드의 후원자들은 이곳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하버드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할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하버드의 지성을 사용할 수 있나요?”

“Members of the Harvard Family: Here in the Yard is one of the great collections of intellectual talent in the world.

What for? There is no question that the faculty, the alumni, the students, and the benefactors of Harvard have used their power to improve the lives of people here and around the world. But can we do more? Can Harvard dedicate its intellect to improving the lives of people who will never even hear its name?”


 



3. 백범 김구 선생의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김구 선생이 이 연설을 할 때는 48년 2월로, 이미 남북 분단이 기정 사실화된 상태였다. 남한의서는 단독 총선을 위해 준비가 시작되었고, 북한에서도 공식적 발표만 없었을 뿐 사실상의 정부가 수립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분단은 결국 온전한 독립이 아니며, 외세의 개입 역시 피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하며 남북 협상에 임하게 된다.

백범 김구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은 김구 선생이 북으로 향하기 전에 남긴 것으로, 다른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나라만을 생각하려는 그의 마음이 절절히 표현돼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단독 정부에 거세게 반대하며 김규식 선생등과 함께 북으로 향하여 북측 인사들과 대화하였으나, 이미 대세는 기운 상태. 결국 김구 선생은 남북 분단을 막지 못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두희에게 저격당했다.


 

 이 외에도 숨겨진 명 연설들은 많다. ‘선동성’을 본다면 아돌프 히틀러와 피에르 베르뇨의 연설이 단연 으뜸이다. 히틀러는 슈포르츠팔라스트 연설에서 체코 슬로바키아의 대통령 베네시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며 국민의 일치 단결을 요구한다. 특히 “독일인은 모두 나와 하나가 될 것이다. 나의 의지가 곧 우리 국민의 의지가 되고, 독일 국민의 장래와 운명은 내 행동에 지령을 내려줄 것이다.”와 같은 부분은 히틀러의 선동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피에르 베르뇨는 ‘루이 16세 처형을 종용하는 연설’을 통해 그의 웅변력을 보였다. 프랑스 혁명 시기 지롱드당 소속 의원으로 루이 16세 처형 당시에는 국민 의회 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또한 아이젠하워 2차 세계대전 당시 장군의 노르망디 상륙일 연설은 군인의 절제된 언어 속에서 아군의 사기를 북돋는 힘을 느끼게 해주며, 간디의 아마드바드 재판 관련 진술은 식민지 탄압 속에서도 식민지배의 부당함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함을 당당하게 밝힌 훌륭한 진술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레토릭(수사학)을 "어떤 경우에든 각 사례에 적응할 수 있는 설득 방법을 창출해 내는 능력"이라 정의했다. 동시에 레토릭의 기술적 방법으로 논자의 인품(에토스), ‘여론’이라 할 수 있는 청자의 정서(파토스), 그리고 논자의 논리와 그 전개 방식(로고스)를 꼽았다. 즉 훌륭한 수사학 사용 - 타인을 훌륭히 설득하기 위해서는 존경받는 사람이 훌륭한 논리를 통해 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명 연설’이라 불리는 연설이나 논변들은 훌륭한 레토릭을 보여준다. ‘명 연설’은 대게 사회적인 신망을 받는 사람이 투영되는 이미지나 비 언어적 소통 등을 통해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여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여론을 움직여 나감으로써 레토릭의 목적인 ‘설득’을 이룬다.

앞으로도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은 대중들에게 연설로서 호소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여론의 향배가 바뀌는 일 역시 빈번할 것이다. 앞서 소개한 연설문들을 포함하여 앞으로도 많을 연설들에게서 그 수사법을 찾아내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