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동양은 ‘글’을, 서양은 ‘말’을 중시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명문(明文)’이 발달한 반면, 서양에서는 ‘명 연설’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뉴스에 ‘오바마, 51초 침묵의 명 연설’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네티즌들 사이에 ‘노무현 대통령 3대 명 연설’같은 동영상이 떠도는 것을 보면, 이제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도 ‘말’의 힘에 공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배우의 좋은 목소리는 훌륭한 외모만큼이나 치명적인 인기의 조건이 되었고, 심야 TV토론 프로그램의 파급력 역시 커졌다. 그에 따라 일반인에게는 의례로 넘어가곤 했던 대통령의 기조 연설이나 광복절 연설, 각종 담화 등이 일반인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껏 인류사에 영향을 미쳤던 명 연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또,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훌륭한 연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미국의 흑인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I have a dream'이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말로 유명한 에이브러함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거 연설 등은 이미 유명하다. 본 기사에서는 이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충분히 교훈적이고 충분히 의미있는 연설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추모 연설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실린 ‘가지않은 길’로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는 1963년에 사망한 미국의 국민 시인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그를 추도하는 연설을 한 바 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미국의 나아갈 길을 제시함으로써 큰 공감을 얻었다.
“비단 힘 때문만이 아니라 그 문명 때문에 전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미국을 고대합니다.”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commands respect throughout the world not only for its strength but for its civilization as well.”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던 미국이었지만, 존 F. 케네디는 미국이 그 패권을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문화적으로 융성한 나라가 되길 바란 것이다.
“나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 환경의 아름다움을 보호 하는 미국, 과거로부터 내려온 오래고 큰 집과 광장과 공원을 보존하는 미국,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균형 잡힌 당당한 도시를 건설하는 미국을 바라봅니다.
나는 사업이나 정치적 업적에 보답을 하듯이 예술적 업적에도 보답을 하는 미국을 바라봅니다. 예술적 성취 수준을 꾸준히 높여가고, 국민 모두를 위하여 문화적 기회를 꾸준히 확대하는 미국을 바라봅니다.”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will not be afraid of grace and beauty, which will protect the beauty of our national environment, which will preserve the great old American houses and squares and parks of our national past and which will build handsome and balanced cities for our future.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will reward achievement in the arts as we reward achievement in business or statecraft.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will steadily raise the standards of artistic accomplishment and which will steadily enlarge cultural opportunities for all of our citizens.”
한 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것이 비단 ‘음식물 쓰레기 없는 거리’나 ‘막히지 않는 도로’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위해서도 어떤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연설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로버트 프로스트 추모 연설 (1963년 10월27일)
로버트 프로스트를 추모하는 오늘은 詩人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만이 아니라 정치가들도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우리 시대 미국의 화강암과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최고의 면모는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술가였다는 것이고, 또 하 나는 미국인이었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는 그 나라가 배출하는 인물만이 아니라, 그 나라가 기념하는 인물, 기억하는 인물을 통해 자신을 드러냅니다. 미국의 영웅들은 보통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대학과 이 나라는 우리의 규모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에 기여한 사람을 기념합니다. 우리의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우리의 통찰에 기여한 사람을 기념합니다. 우리의 自尊(자존)이 아니라 자기 이해에 기여한 사람을 기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로버트 프로스트를 기념함으로써 우리나라 힘의 가장 깊은 원천을 기념할 수 있습니다. 그 힘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지만, 눈에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반드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한 나라가 위대해지는 데 권력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기여는 불가결합니다. 그러나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기여 역시 불가결합니다. 그 문제 제기가 私心(사심) 없는 태도에서 나온 것일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우리가 권력을 이용하느냐 아니면 권력이 우리를 이용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힘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힘의 본질을 이루며 그 힘을 통제하는 정신 역시 똑같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특별한 의미였습니다. 그는 현실을 가차없이 꿰뚫는 직관을 통하여 사회의 진부하고 위선적인 태도들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인간의 비극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기만과 손쉬운 위안에 굳건하게 저항했습니다.
“나는 밤을 아는 사람이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대낮만이 아니라 한밤중도 알았기 때문에, 인간 정신의 승리만이 아니라 시련도 이해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그의 바탕에는 인간 정신에 대한 깊은 신뢰가 깔려 있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와 권력을 결합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권력을 권력으로 부터 구원하는 수단이 시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인간을 오만으로 몰고 갈 때 시는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줍니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 영역을 좁힐 때 시는 인간 존재의 풍요와 다양성을 일깨워줍니다. 권력이 부패할 때 시는 정화해줍니다.
예술은 우리 판단의 시금석이 되는 기본적인 인간 진실들을 확립합니다. 예술가가 현실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충실히 따른다 해도, 결국 그는 사회의 침입과 국가의 개입에 맞서 개인적 정신과 감성을 옹호하는 마지막 보루가 됩니다.
따라서 위대한 예술가는 고독한 인물입니다. 프로스트 말대로, 예술가는 ‘세상과 사랑 싸움을’ 합니다. 예술가가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좇다 보면 시대의 조류를 거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인기 있는 역할이 아닙니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생전에 큰 명예를 누렸다 해도,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가 드러낸 어두운 진실들을 무시해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예술가의 충실성은 우리나라의 삶의 핵심을 강화해주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이 우리 사회에 가장 비판적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진정한 예술가의 동력인 예민한 감수성과 정의 에 대한 관심을 통해 우리나라가 잠재적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 우리 문명의 미래를 놓고 볼 때 예술가의 자리를 온전히 인정 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예술이 우리 문화의 뿌리를 북돋워주는 것이라면, 사회는 예술가가 자신의 비전이 이끄는 대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예술이 선전의 형식이 아님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술은 진리의 형식입니다. 매클리시가 시인들에 대해 말했듯이, “업으로 치자면 시를 쓰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습니다.”
자유 사회에서 예술은 무기가 아니며, 논쟁과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영혼의 엔지니어가 아닙니다. 다른 곳에 가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 사회에서는 작가, 작곡가, 화가의 최고의 의무는 결과에 관계없이 끝까지 자신에게 진실한 것입니다.
예술가는 진실에 대한 자신의 비전에 복무함으로써 나라에 가장 큰 봉사를 합니다. 예술의 임무를 경멸하는 나라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詩에 나오는 고용된 사람의 운명을 맞이합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볼 것도 없고, 희망을 가지고 바라볼 것도 없는 운명”입니다. 나는 미국의 위대한 미래를 바라봅니다. 우리나라의 군사력이 도덕적 억제력에 부합하고, 부가 지혜에 부합하고, 권력이 목적에 부합하는 미래입니다.
나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 환경의 아름다움을 보호 하는 미국, 과거로부터 내려온 오래고 큰 집과 광장과 공원을 보존하는 미국,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균형 잡힌 당당한 도시를 건설하는 미국을 바라봅니다.
나는 사업이나 정치적 업적에 보답을 하듯이 예술적 업적에도 보답을 하는 미국을 바라봅니다. 예술적 성취 수준을 꾸준히 높여가고, 국민 모두를 위하여 문화적 기회를 꾸준히 확대하는 미국을 바라봅니다.
비단 힘 때문만이 아니라 그 문명 때문에 전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미국을 바라봅니다. 나는 민주주의와 다양성만이 아니라 개인적 우수성도 안전하게 육성될 수 있는 세계를 바라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인간의 개선을 위한 기획들에는 회의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이런 희망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불확실한 시기에 그가 이렇게 노래한 것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시간이 시작된 이래 인간을 모두 모아보아라… 인간에게 호의적인 쪽이 그래도 조금 더 많을 것이다. 다만 일 퍼센트의 몇 분의 일이라 하더라도… 그렇지 않다면 이 행성에 대한 우리의 지배력이 이처럼 확대되지는 못했으리라.
프로스트의 생애와 작품 때문에, 이 대학의 역사와 업적 때문에, 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배력은 확대되었습니다.
John F. Kennedy Remembers Robert Frost(October 27, 1963)
This day, devoted to the memory of Robert Frost, offers an opportunity for reflection which is prized by politicians as well as by others and even by poets. For Robert Frost was one of the granite figures of our time in America. He was supremely two things―an artist and an American.
A nation reveals itself not only by the men it produces but also by the men it honors, the men it remembers. In America our heroes have customarily run to men of large accomplishments. But today this college and country honors a man whose contribution was not to our size but to our spirit; not to our political beliefs but to our insight; not to our self-esteem but to our self-comprehension.
In honoring Robert Frost, we therefore can pay honor to the deepest sources of our national strength. That strength takes many forms, and the most obvious forms are not always the most significant.
The men who create power make an indispensable contribution to the nation’s greatness. But the men who question power make a contribution just as indispensable, especially when that questioning is disinterested.
For they determine whether we use power or power uses us. Our national strength matters; but the spirit which informs and controls our strength matters just as much. This was the special significance of Robert Frost. He brought an unsparing instinct for reality to bear on the platitudes and pieties of society. His sense of the human tragedy fortified him against self-deception and easy consolation.
“I have been,” he wrote, “one acquainted with the night.” And because he knew the midnight as well as the high noon, because he understood the ordeal as well as the triumph of the human spirit, he gave his age strength with which to overcome despair.
At bottom he held a deep faith in the spirit of man. And it’s hardly an accident that Robert Frost coupled poetry and power. For he saw poetry as the means of saving power from itself.
When power leads man toward arrogance, poetry reminds him of his limitations. When power narrows the areas of man’s concern, poetry reminds him of the richness and diversity of his existence. When power corrupts, poetry cleanses. For art establishes the basic human truths which must serve as the touchstones of our judgment. The artist, however faithful to his personal vision of reality, becomes the last champion of the individual mind and sensibility against an intrusive society and an officious state.
The great artist is thus a solitary figure. He has, as Frost said, “a lover’s quarrel with the world.” In pursuing his perceptions of reality, he must often sail against the currents of his time. This is not a popular role.
If Robert Frost was much honored during his lifetime, it was because a good many preferred to ignore his darker truths. Yet in retrospect we see how the artist’s fidelity has strengthened the fiber of our national life. If sometimes our great artists have been the most critical of our society, it is because their sensitivity and their concern for justice, which must motivate any true artist, makes him aware that our nation falls short of its highest potential.
I see little of more importance to the future of our country and our civilization than full recognition of the place of the artist. If art is to nourish the roots of our culture, society must set the artist free to follow his vision wherever it takes him.
We must never forget that art is not a form of propaganda; it is a form of truth. And as Mr. MacLeish once remarked of poets, “There is nothing worse for our trade than to be in style.”
In free society, art is not a weapon and it does not belong to the sphere of polemics and ideology. Artists are not engineers of the soul. It may be different elsewhere. But democratic society―in it―the highest duty of the writer, the composer, the artist is to remain true to himself and to let the chips fall where they may.
In serving his vision of the truth, the artist best serves his nation. And the nation which disdains the mission of art invites the fate of Robert Frost’s hired man―“the fate of having nothing to look backward to with pride and nothing to look forward to with hope.” I look forward to a great future for America―a future in which our country will match its military strength with our moral restraint, its wealth with our wisdom, its power with our purpose.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will not be afraid of grace and beauty, which will protect the beauty of our national environment, which will preserve the great old American houses and squares and parks of our national past and which will build handsome and balanced cities for our future.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will reward achievement in the arts as we reward achievement in business or statecraft.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will steadily raise the standards of artistic accomplishment and which will steadily enlarge cultural opportunities for all of our citizens.
And I look forward to an America which commands respect throughout the world not only for its strength but for its civilization as well. And I look forward to a world which will be safe not only for democracy and diversity but also for personal distinction.
Robert Frost was often skeptical about projects for human improvement. Yet I do not think he would disdain this hope. As he wrote during the uncertain days of the Second War : Take human nature altogether since time began… And it must be a little more in favor of man, Say a fraction of one percent at the very least… Our hold on the planet wouldn’t have so increased.
Because of Mr. Frost’s life and work, because of the life and work of this college, our hold on this planet has increased.
2. 빌 게이츠의 하버드 대학 졸업 연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기업인을 꼽으라면 아마 빌 게이츠가 가장 먼저 꼽히지 않을까. 세계 최고의 부호이면서 그는 동시에 세계 최고로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중퇴한 하버드 대학교의 졸업 연설에서 자신의 철학을 학생들에게 전했는데, 무엇 때문에 그가 그토록 많은 기부를 하고 약자를 위하려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저는 이곳 하버드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의 새로운 사상에 대해서 배웠고 과학이 이룩한 진보들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류애의 가장 큰 진보는 발견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발견들이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적용되는가 입니다.”
“I learned a lot here at Harvard about new ideas in economics and politics. I got great exposure to the advances being made in the sciences. But humanity’s greatest advances are not in its discoveries but in how those discoveries are applied to reduce inequity.”
“하버드 가족 여러분, 여기 있는 여러분은 전 세계의 훌륭한 두뇌 집단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입니까? 교직원, 동문, 학생, 하버드의 후원자들은 이곳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하버드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할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하버드의 지성을 사용할 수 있나요?”
“Members of the Harvard Family: Here in the Yard is one of the great collections of intellectual talent in the world.
What for? There is no question that the faculty, the alumni, the students, and the benefactors of Harvard have used their power to improve the lives of people here and around the world. But can we do more? Can Harvard dedicate its intellect to improving the lives of people who will never even hear its name?”
빌게이츠 하버드 졸업식 연설문 (2007년 6월 7일)
보크(Bok) 총장님, 루덴스타인(Rudenstine)전 총장님, 파우스트(Faust)차기 총장님, 하버드 법인과 감독위원회 위원 여러분, 교수위원회 위원여러분, 부모님들, 특히 이번 졸업생 여러분, 저는 이 말을 하기 위해 30년간 기다렸습니다.
“아버지, 저는 늘 당신께 제가 학교로 돌아와 학위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이 시의적절한 영예에 대해 하버드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내년에 직업을 바꿀 텐데 이력서의 대학 학위는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곧바로 학위를 취득한 졸업생 여러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저를 크림슨(하버드 대학신문)이 “하버드의 가장 성공한 중퇴자”라고 부르는데 대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특별한 교실 졸업생 대표로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모든 중퇴한 사람 중에서 가장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티브 발머(현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가 경영대학원을 그만두게 한 사람으로도 기억되고 싶습니다. 제가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의 졸업식에 초대되어 연설하게 된 이유입니다. 만약 오리엔테이션에서 연설했다면 오늘 이 자리에는 더 적은 수만이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저에게 하버드는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학교생활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늘 수강신청하지도 않은 수업 교실에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생활은 아주 멋졌습니다. 래드클리프에 커리어 하우스(Currier House)에서 지냈는데, 늘 제 방에는 늦은 밤까지 토론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제가 아침에 늦잠 자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반사회 그룹의 리더가 된 방법입니다. 모든 사회적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거부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는 단결했습니다. 래드클리프는 아주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여학생들이 많았고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과학-수학 타입, 이과생들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제가 말하는 바를 이해한다면, 그러한 조합은 최고의 가능성을 제공하였으나 이곳에서 저는 가능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슬픈 교훈을 배웠습니다.
하버드에게 가장 큰 추억중 하나는, 커리어 하우스에서 1975년 1월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에 있는 회사에 전화를 건 일입니다. 그 회사는 세계 최초의 개인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었고 저는 그들에게 소프트웨어를 팔고자했습니다. 제가 단지 기숙사에 있는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끊어버릴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며 한 달 내에 다시 연락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소프트웨어를 만들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것을 좋은 일이라 여기며, 그 순간부터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밤낮으로 힘썼습니다. 이것으로 대학 교육에 점을 찍고 마이크로소프트사와 함께하는 놀라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버드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아주 많은 에너지와 지성의 한 가운데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흥분되고, 겁을 주고, 때로는 의욕을 꺾지만 늘 매력적이었습니다. 물론 일찍 떠나기는 했지만 하버드에서의 생활, 우정, 아이디어들은 저를 바꾸어놓았고, 그것은 놀라운 특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돌아보면 한 가지 큰 후회가 남습니다. 저는 세상의 아주 심한 불평등 즉, 수백만 사람들을 절망에 빠트리는 부와 건강 및 기회의 불평등에 대한 실질적인 인식 없이 하버드를 떠났습니다.
저는 이곳 하버드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의 새로운 사상에 대해서 배웠고 과학이 이룩한 진보들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류애의 가장 큰 진보는 발견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발견들이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적용되는가 입니다. 민주주의를 통해서거나 강력한 공교육, 양질의 의료서비스 혹은 폭넓은 경제적 기회를 통해서 불평등을 축소한 것이 인류의 가장 큰 성취입니다.
저는 이 나라의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캠퍼스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개발도상국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한 빈곤과 질병 속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데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버드에 올 때는 시대가 달랐습니다. 여러분들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해 여러분의 선배들보다 더 많이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버드에서 기술발전이 심화되는 시대에 어떻게 불평등을 해결할 것인지 많이 고민했기를 바랍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일주일에 몇 시간과 한 달에 약간의 돈을 가지고 있고 기부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돈과 시간을 생명을 구하고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곳에 쓰고 싶다면 어느 곳에 쓰고 싶습니까?
멜린다와 제게도 같은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어떻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일을 할 수 있을까?”입니다.
이 질문에 관해 토론하는 중, 멜린다와 나는 이 나라에는 오래전 치료가능하게 된 질병으로 인해 가난한 나라의 수백만 어린이들이 매년 죽는 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홍역, 말라리아, 폐렴, B형 간염, 황달등 말입니다. 이러한 질병 중 제가 들어보지 못한 로타 바이러스 때문에 매년 50만 명의 아이들이 죽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 내에서는 전혀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충격 받았습니다. 만약에 수백만 명의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면 세계는 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치료약을 발견하고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1달러도 안 되는 금액에 대해, 생명을 살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약을 공급하지 않는 이권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든 생명은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고 믿는다면, 몇몇의 삶은 구할 가치가 있고 다른 몇몇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불쾌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것은 진실일리 없어. 만약에 진실이라면 최우선으로 도와야할 가치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여러분들이 시작할 방법과 동일하게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세상은 이 아이들이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지?”라고 물었습니다. 그 답은 간단하지만 가혹합니다. 시장은 이 어린이들을 구하는 것을 보상하지 않았고 정부는 보조금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시장에서 아무 힘이 없고 체제 내에서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저는 모두 지녔습니다.
우리가 좀 더 창조적인 자본주의를 발전시킨다면 우리는 시장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힘쓰도록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시장의 힘을 증대시키면 최악의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보거나, 또는 최소한의 생활을 꾸리는 것을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정부들에게 압력을 행사해서 세금 내는 국민들의 가치를 좀 더 잘 반영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쓰도록 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이익을 창출하고 정치가들은 표를 얻는 방법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접근 방법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불평등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방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러한 임무는 개방형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도전에 답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은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회의론자들은 사람들이 불평등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불평등은 인류의 시작부터 우리와 함께해 왔고 마지막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러한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관심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우리를 절망에 빠트리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면 행동했을 것입니다.
변화를 막는 장벽은 너무 적은 관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이 너무 복잡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고, 그로 인한 영향을 파악해야 합니다. 하지만 복잡성은 이 모든 세 단계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24시간 뉴스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진정으로 문제를 직시하는데 는 복잡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비행기 추락사고가 나면 정부는 기자회견을 엽니다. 그들은 조사를 통해 원인을 규명하고 향후 유사한 사고를 막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만일 정부가 솔직하게 말한다면 전 세계에서 예방 가능한 사고로 오늘 죽은 사람들 중에서 0.5% 만이 이 비행기에 있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목숨을 빼앗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비행기 추락이 아닙니다.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수백만 명의 목숨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많이 접하지 못합니다. 언론에서는 새로운 것을 보도합니다. 그런데 수백만 사람들의 죽음은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시하기 쉬운 뒷자리로 밀려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수백만 사람들의 죽음을 보고 혹은 그것에 대해 읽더라도 그 문제를 지속적으로 주시하기란 여전히 어렵습니다. 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른다면 그러한 고통을 지켜보기 힘들어서 결국 우리는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됩니다.
첫 번째 단계로서 정말로 문제를 직시할 수 있다면 두 번째 단계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복잡성을 제거해야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최대화 시키고 싶다면 해결책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단체나 개인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할 때 분명하고 입증된 답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성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실천을 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그러한 관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또한 어렵게 합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복잡성을 제거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예견할 수 있는 단계를 거칩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할 최고의 수단을 발견하며, 그 수단을 성취할 이상적인 기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기술은 약과 같이 복잡하든 침대 망과 같이 단순하든 상관없이,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기존 기술을 활용하여 가장 똑똑한 방법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AIDS의 유행이 좋은 예입니다. 물론 최종의 목표는 질병을 없애는 것입니다. 최고의 수단은 예방입니다. 이상적인 기술은 접종 한번으로 평생 면역이 되는 백신입니다. 그래서 정부, 제약회사, 각 단체들은 백신 연구에 투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연구는 10년 이상 소요될 것이고, 그러는 동안 우리는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람들이 위험한 행동을 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4 단계 순환의 시작입니다. 다음과 같은 패턴을 지니는데, 중요한 것은 생각과 행동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잡성의 함정에 빠져 그만둬 버렸던 20세기의 말라리아와 결핵과 같은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은 후 마지막 단계에서는 성과의 영향력을 가늠하고, 다른 사람과 성공과 실패를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노력으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통계자료가 필요합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수백만 명의 더 많은 어린이들이 예방접종을 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질병으로 인해 죽은 어린이들이 줄었다는 것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개선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로부터 더 많은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원한다면 숫자 이상의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은 가족들에게 삶이 어떤 의미인지 사람들이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몇 년 전 다보스 포럼에 가서 글로벌 건강 패널로 참여하여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논의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수백만 명! 단 한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는 그 흥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러한 흥분에 수백만을 곱해보십시오. 하지만 그 회의는 이제껏 참석한 모임 중 가장 지루했고 너무 지루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경험이 충격적이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몇 가지 소프트웨어의 버전 13을 소개한 행사에 참여한 직후였는데,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흥분으로 뛰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소프트웨어에 흥분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사람들을 흥분하게 할 수 없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그 영향을 보고 느끼지 않는 한 흥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 것이냐는 꽤 복잡한 질문입니다.
여전히 저는 긍정적입니다. 맞습니다. 불평등은 우리와 늘 함께해왔습니다. 하지만 복잡성을 제거하는 새로운 도구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새롭습니다. 우리의 관심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미래는 과거와 다를 수 있습니다. 생명공학, 컴퓨터, 인터넷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혁신은 극심한 빈곤과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인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으며, 과거에는 없었던 기회입니다.
60년 전 조지 마셜은 이 졸업식 연설에서 전후 유럽 국가들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이 계획의 한 가지 어려움은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서 대중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지극히 복잡하다보니 사람들이 현 상황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와 같이 거리를 두고서 상황의 중요성을 알아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마셜이 그 연설하고 30년 후 저를 제외한 동기들은 졸업을 하였고, 새로운 기술들은 세계를 작고, 개방적이고, 더 가깝고 뚜렷하게 해주었습니다. 저가의 개인용 컴퓨터의 출현은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의 기회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 네트워크의 놀라운 점은 단지 거리를 단축하고 모든 사람들을 이웃으로 만들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동일한 문제를 함께 고민할 훌륭한 사람들의 숫자를 놀랍도록 증가시킨 것입니다. 덕분에 혁신의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다섯 가운데 한 사람만이 이러한 기술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논의에 참여할 창의적인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음을 뜻합니다. 그들은 현실적인 지성과 적절한 경험을 가졌지만 그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기술에 접근하기 위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진보는 한 사람이 다른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연쇄적인 혁명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대학, 기업, 작은 기관들, 심지어 개인들까지 문제를 직시하고 접근법을 모색하여, 기아, 빈곤, 절망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측정함으로써 60년 전 조지 마샬이 연설했던 것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하버드 가족 여러분, 여기 있는 여러분은 전 세계의 훌륭한 두뇌 집단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입니까? 교직원, 동문, 학생, 하버드의 후원자들은 이곳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하버드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할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하버드의 지성을 사용할 수 있나요?
하버드 지성의 선도자이신 학장님들과 교수님들께 요청합니다. 새로운 교수를 뽑을 때, 종신 재직권을 부여할 때, 교육과정을 검토할 때, 그리고 학위 수여 조건을 결정할 때, 스스로 질문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최고의 인재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여하고 있나? 하버드는 교직원들이 최악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서 힘쓰도록 권장하고 있는가? 하버드 학생들은 전 세계의 빈곤, 기아, 깨끗한 물 부족, 학교 밖에 방치된 소녀들,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는 아이들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적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가? 이러한 것들은 미사여구의 질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철학을 가지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제 어머니는 제가 이곳에 입학했을 때 자랑스러워 하셨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제 결혼식 며칠 전에는 결혼 피로연을 열고 멜린다에게 쓴 편지를 큰 소리로 읽으셨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었지만 메시지를 전할 기회라고 생각하셨고, 편지 마지막에 “많이 축복받고 매우 기대 받는 사람들에게” 라고 하셨습니다. 이 운동장에 있는 우리는 재능, 특권, 기회 면에서 축복받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제한이 없습니다.
이 시대의 약속과 함께 저는 졸업생 모두가 심각한 불평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며, 전문가가 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경력의 중심에 둔다면 그것은 매우 멋질 것입니다. 하지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주 몇 시간을 투자해서 증가하는 인터넷의 힘으로 정보를 얻고, 동일한 관심을 지닌 다른 사람들을 찾고, 장애물을 확인하며, 그 장애를 해쳐나갈 방법을 모색하면 됩니다.
복잡하다고 멈추지 마십시오. 행동가가 되십시오. 큰 불평등을 직시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삶에서 가장 멋진 경험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졸업생 여러분은 매우 놀라운 시기에 사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버드를 떠나면서 여러분은 제 동기들이 가지지 못한 기술을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전에 우리가 하지 못했던 전 세계적 불평등에 대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식과 함께 여러분의 아주 작은 노력으로도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을 내버려 둔다면 양심이 여러분을 괴롭힐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더 일찍 시작할 것이고 더 오래 지속할 것입니다.
알아야 할 것들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실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30년 후에 다시 하버드로 돌아와 여러분의 재능과 에너지로 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직업적 성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뿌리 깊은 불평등을 얼마만큼 잘 전달했는지, 그리고 인류애 이외에는 공통된 점이 없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여러분 스스로 평가해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William Gates ≪Knowing what you know, how could you not?≫
President Bok, former President Rudenstine, incoming President Faust, members of the Harvard Corporation and the Board of Overseers, members of the faculty, parents, and especially, the graduates:
I’ve been waiting more than 30 years to say this: “Dad, I always told you I’d come back and get my degree.”
I want to thank Harvard for this timely honor. I’ll be changing my job next year … and it will be nice to finally have a college degree on my resume. I applaud the graduates today for taking a much more direct route to your degrees.
For my part, I’m just happy that the Crimson has called me “Harvard’s most successful dropout.” I guess that makes me valedictorian of my own special class … I did the best of everyone who failed.
But I also want to be recognized as the guy who got Steve Ballmer to drop out of business school. I’m a bad influence. That’s why I was invited to speak at your graduation. If I had spoken at your orientation, fewer of you might be here today.
Harvard was just a phenomenal experience for me. Academic life was fascinating. I used to sit in on lots of classes I hadn’t even signed up for. And dorm life was terrific. I lived up at Radcliffe, in Currier House. There were always lots of people in my dorm room late at night discussing things, because everyone knew I didn’t worry about getting up in the morning. That’s how I came to be the leader of the anti-social group. We clung to each other as a way of validating our rejection of all those social people.
Radcliffe was a great place to live. There were more women up there, and most of the guys were science-math types. That combination offered me the best odds, if you know what I mean. This is where I learned the sad lesson that improving your odds doesn’t guarantee success.
One of my biggest memories of Harvard came in January 1975, when I made a call from Currier House to a company in Albuquerque that had begun making the world’s first personal computers. I offered to sell them software.
I worried that they would realize I was just a student in a dorm and hang up on me. Instead they said: “We’re not quite ready, come see us in a month,” which was a good thing, because we hadn’t written the software yet. From that moment, I worked day and night on this little extra credit project that marked the end of my college education and the beginning of a remarkable journey with Microsoft.
What I remember above all about Harvard was being in the midst of so much energy and intelligence. It could be exhilarating, intimidating, sometimes even discouraging, but always challenging. It was an amazing privilege ? and though I left early, I was transformed by my years at Harvard, the friendships I made, and the ideas I worked on.
But taking a serious look back … I do have one big regret.
I left Harvard with no real awareness of the awful inequities in the world ? the appalling disparities of health, and wealth, and opportunity that condemn millions of people to lives of despair.
I learned a lot here at Harvard about new ideas in economics and politics. I got great exposure to the advances being made in the sciences. But humanity’s greatest advances are not in its discoveries but in how those discoveries are applied to reduce inequity. Whether through democracy, strong public education, quality health care, or broad economic opportunity ? reducing inequity is the highest human achievement.
I left campus knowing little about the millions of young people cheated out of educational opportunities here in this country. And I knew nothing about the millions of people living in unspeakable poverty and disease in developing countries.
It took me decades to find out.
You graduates came to Harvard at a different time. You know more about the world’s inequities than the classes that came before. In your years here, I hope you’ve had a chance to think about how ? in this age of accelerating technology ? we can finally take on these inequities, and we can solve them.
Imagine, just for the sake of discussion, that you had a few hours a week and a few dollars a month to donate to a cause ? and you wanted to spend that time and money where it would have the greatest impact in saving and improving lives. Where would you spend it?
For Melinda and for me, the challenge is the same: how can we do the most good for the greatest number with the resources we have.
During our discussions on this question, Melinda and I read an article about the millions of children who were dying every year in poor countries from diseases that we had long ago made harmless in this country. Measles, malaria, pneumonia, hepatitis B, yellow fever. One disease I had never even heard of, rotavirus, was killing half a million kids each year ? none of them in the United States.
We were shocked. We had just assumed that if millions of children were dying and they could be saved, the world would make it a priority to discover and deliver the medicines to save them. But it did not. For under a dollar, there were interventions that could save lives that just weren’t being delivered.
If you believe that every life has equal value, it’s revolting to learn that some lives are seen as worth saving and others are not. We said to ourselves: “This can’t be true. But if it is true, it deserves to be the priority of our giving.”
So we began our work in the same way anyone here would begin it. We asked: “How could the world let these children die?”
The answer is simple, and harsh. The market did not reward saving the lives of these children, and governments did not subsidize it. So the children died because their mothers and their fathers had no power in the market and no voice in the system.
But you and I have both.
We can make market forces work better for the poor if we can develop a more creative capitalism ? if we can stretch the reach of market forces so that more people can make a profit, or at least make a living, serving people who are suffering from the worst inequities. We also can press governments around the world to spend taxpayer money in ways that better reflect the values of the people who pay the taxes.
If we can find approaches that meet the needs of the poor in ways that generate profits for business and votes for politicians, we will have found a sustainable way to reduce inequity in the world. This task is open-ended. It can never be finished. But a conscious effort to answer this challenge will change the world.
I am optimistic that we can do this, but I talk to skeptics who claim there is no hope. They say: “Inequity has been with us since the beginning, and will be with us till the end ? because people just … don’t … care.” I completely disagree.
I believe we have more caring than we know what to do with.
All of us here in this Yard, at one time or another, have seen human tragedies that broke our hearts, and yet we did nothing ? not because we didn’t care, but because we didn’t know what to do. If we had known how to help, we would have acted.
The barrier to change is not too little caring; it is too much complexity.
To turn caring into action, we need to see a problem, see a solution, and see the impact. But complexity blocks all three steps.
Even with the advent of the Internet and 24-hour news, it is still a complex enterprise to get people to truly see the problems. When an airplane crashes, officials immediately call a press conference. They promise to investigate, determine the cause, and prevent similar crashes in the future.
But if the officials were brutally honest, they would say: “Of all the people in the world who died today from preventable causes, one half of one percent of them were on this plane. We’re determined to do everything possible to solve the problem that took the lives of the one half of one percent.”
The bigger problem is not the plane crash, but the millions of preventable deaths.
We don’t read much about these deaths. The media covers what’s new? and millions of people dying is nothing new. So it stays in the background, where it’s easier to ignore. But even when we do see it or read about it, it’s difficult to keep our eyes on the problem. It’s hard to look at suffering if the situation is so complex that we don’t know how to help. And so we look away.
If we can really see a problem, which is the first step, we come to the second step: cutting through the complexity to find a solution.
Finding solutions is essential if we want to make the most of our caring. If we have clear and proven answers anytime an organization or individual asks “How can I help?,” then we can get action ? and we can make sure that none of the caring in the world is wasted. But complexity makes it hard to mark a path of action for everyone who cares ? and that makes it hard for their caring to matter.
Cutting through complexity to find a solution runs through four predictable stages: determine a goal, find the highest-leverage approach, discover the ideal technology for that approach, and in the meantime, make the smartest application of the technology that you already have ? whether it’s something sophisticated, like a drug, or something simpler, like a bednet.
The AIDS epidemic offers an example. The broad goal, of course, is to end the disease. The highest-leverage approach is prevention. The ideal technology would be a vaccine that gives lifetime immunity with a single dose. So governments, drug companies, and foundations fund vaccine research. But their work is likely to take more than a decade, so in the meantime, we have to work with what we have in hand ? and the best prevention approach we have now is getting people to avoid risky behavior!!.
Pursuing that goal starts the four-step cycle again. This is the pattern. The crucial thing is to never stop thinking and working ? and never do what we did with malaria and tuberculosis in the 20th century ? which is to surrender to complexity and quit.
The final step ? after seeing the problem and finding an approach ? is to measure the impact of your work and share your successes and failures so that others learn from your efforts.
You have to have the statistics, of course. You have to be able to show that a program is vaccinating millions more children. You have to be able to show a decline in the number of children dying from these diseases. This is essential not just to improve the program, but also to help draw more investment from business and government.
But if you want to inspire people to participate, you have to show more than numbers; you have to convey the human impact of the work ? so people can feel what saving a life means to the families affected.
I remember going to Davos some years back and sitting on a global health panel that was discussing ways to save millions of lives. Millions! Think of the thrill of saving just one person’s life ? then multiply that by millions. … Yet this was the most boring panel I’ve ever been on ? ever. So boring even I couldn’t bear it.
What made that experience especially striking was that I had just come from an event where we were introducing version 13 of some piece of software, and we had people jumping and shouting with excitement. I love getting people excited about software ? but why can’t we generate even more excitement for saving lives?
You can’t get people excited unless you can help them see and feel the impact. And how you do that ? is a complex question.
Still, I’m optimistic. Yes, inequity has been with us forever, but the new tools we have to cut through complexity have not been with us forever. They are new ? they can help us make the most of our caring? and that’s why the future can be different from the past.
The defining and ongoing innovations of this age ? biotechnology, the computer, the Internet ? give us a chance we’ve never had before to end extreme poverty and end death from preventable disease.
Sixty years ago, George Marshall came to this commencement and announced a plan to assist the nations of post-war Europe. He said: “I think one difficulty is that the problem is one of such enormous complexity that the very mass of facts presented to the public by press and radio make it exceedingly difficult for the man in the street to reach a clear appraisement of the situation. It is virtually impossible at this distance to grasp at all the real significance of the situation.”
Thirty years after Marshall made his address, as my class graduated without me, technology was emerging that would make the world smaller, more open, more visible, less distant.
The emergence of low-cost personal computers gave rise to a powerful network that has transformed opportunities for learning and communicating.
The magical thing about this network is not just that it collapses distance and makes everyone your neighbor. It also dramatically increase the number of brilliant minds we can have working together on the same problem.? and that scales up the rate of innovation to a staggering degree.
At the same time, for every person in the world who has access to this technology, five people don’t. That means many creative minds are left out of this discussion -- smart people with practical intelligence and relevant experience who don’t have the technology to hone their talents or contribute their ideas to the world.
We need as many people as possible to have access to this technology, because these advances are triggering a revolution in what human beings can do for one another. They are making it possible not just for national governments, but for universities, corporations, smaller organizations, and even individuals to see problems, see approaches, and measure the impact of their efforts to address the hunger, poverty, and desperation George Marshall spoke of 60 years ago.
Members of the Harvard Family: Here in the Yard is one of the great collections of intellectual talent in the world.
What for? There is no question that the faculty, the alumni, the students, and the benefactors of Harvard have used their power to improve the lives of people here and around the world. But can we do more? Can Harvard dedicate its intellect to improving the lives of people who will never even hear its name?
Let me make a request of the deans and the professors? the intellectual leaders here at Harvard: As you hire new faculty, award tenure, review curriculum, and determine degree requirements, please ask yourselves:
Should our best minds be dedicated to solving our biggest problems? Should Harvard encourage its faculty to take on the world’s worst inequities? Should Harvard students learn about the depth of global poverty … the preval!!!ence of world hunger … the scarcity of clean water …the girls kept out of school … the children who die from diseases we can cure? Should the world’s most privileged people learn about the lives of the world’s least privileged?
These are not rhetorical questions? you will answer with your policies.
My mother, who was filled with pride the day I was admitted here? never stopped pressing me to do more for others. A few days before my wedding, she hosted a bridal event, at which she read aloud a letter about marriage that she had written to Melinda. My mother was very ill with cancer at the time, but she saw one more opportunity to deliver her message, and at the close of the letter she said: “From those to whom much is given, much is expected.”
When you consider what those of us here in this Yard have been given? in talent, privilege, and opportunity? there is almost no limit to what the world has a right to expect from us.
In line with the promise of this age, I want to exhort each of the graduates here to take on an issue? a complex problem, a deep inequity, and become a specialist on it. If you make it the focus of your career, that would be phenomenal. But you don’t have to do that to make an impact. For a few hours every week, you can use the growing power of the Internet to get informed, find others with the same interests, see the barriers, and find ways to cut through them.
Don’t let complexity stop you. Be activists. Take on the big inequities. It will be one of the great experiences of your lives.
You graduates are coming of age in an amazing time. As you leave Harvard, you have technology that members of my class never had. You have awareness of global inequity, which we did not have. And with that awareness, you likely also have an informed conscience that will torment you if you abandon these people whose lives you could change with very little effort. You have more than we had; you must start sooner, and carry on longer.
Knowing what you know, how could you not?
And I hope you will come back here to Harvard 30 years from now and reflect on what you have done with your talent and your energy. I hope you will judge yourselves not on your professional accomplishments alone, but also on how well you have addressed the world’s deepest inequities … on how well you treated people a world away who have nothing in common with you but their humanity.
Good luck.
3. 백범 김구 선생의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김구 선생이 이 연설을 할 때는 48년 2월로, 이미 남북 분단이 기정 사실화된 상태였다. 남한의서는 단독 총선을 위해 준비가 시작되었고, 북한에서도 공식적 발표만 없었을 뿐 사실상의 정부가 수립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분단은 결국 온전한 독립이 아니며, 외세의 개입 역시 피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하며 남북 협상에 임하게 된다.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은 김구 선생이 북으로 향하기 전에 남긴 것으로, 다른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나라만을 생각하려는 그의 마음이 절절히 표현돼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단독 정부에 거세게 반대하며 김규식 선생등과 함께 북으로 향하여 북측 인사들과 대화하였으나, 이미 대세는 기운 상태. 결국 김구 선생은 남북 분단을 막지 못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두희에게 저격당했다.
백범 김구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친애하는 3천만 자매 형제여!
우리를 싸고 움직이는 국내외 정세는 위기에 임하였다.
제 2차 대전에 있어서 동맹국은 민주와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천만의 생령을 희생하여 써 최후의 승리를 전취하였다. 그러나 그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 세계는 다시 두 개로 갈리어졌다. 이로 인하여 제 3차 전쟁은 온양되고 있다. 보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을 다시 만난 아내는,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아들을 다시 만난 어머니는, 그 남편과 아들을 또다시 전장으로 보내지 아니하면 아니 될 위험이 닥쳐오고 있지 아니한가. 인류의 양심을 가진 자라면 누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바랄 것이랴! 과거에 있어서 전쟁을 애호한 자는 파시스트 강도군 밖에 없었다. 지금에 있어서도 전쟁이 폭발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자는 파시스트 강도 일본뿐일 것이다. 그것은 그놈들이 전쟁만 나면 저희들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 있어서도 남북에서 외력에 아부하는 자만은 흑왈 남정, 흑왈 북벌 하면서 막연하게 전쟁을 희망하고 있지마는 실지에 있어서는 아직 그 현실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촉발된다 하여도 그 결과는 세계의 평화를 파괴하는 동시에 동족의 피를 흘려서 왜적을 살릴 것밖에 아무 것도 아니 될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새 상전들의 투지를 북돋울 것이요, 옛상전의 귀염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이 난다 할지라도 저희들의 자질 만은 징병도 징용도 면제될 것으로 믿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왜정하에서도 그들에게는 그러한 은전이 있었던 까닭이다. 한국은 일본과 수십 년 동안 계속하여 혈투하였다. 그러므로 일본과 전쟁하는 동맹국이 승리할때에 우리도 자유롭고 행복스럽게 날을 보낼줄 알았다.
그러나 왜인은 도리어 환소 중에 유쾌히 날을 보내고 있으되 우리 한인은 공포 중에서 죄인과 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말이라면 우리를 배은 망덕하는 자라고 힐책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 신문 기자 리처드 씨의 입장에서 나온 데야 어찌 공정한 말이라 아니 하겠느냐. 우리가 기다리던 해방은 우리 국토를 양분하였으며 앞으로는 그것을 영원히 양국의 영토로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의 해방이란 사전상에 새 해석을 올리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었다.
유엔은 이러한 불합리한 것을 시정하여 써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며, 전쟁의 위기를 방지하여 써 세계의 평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이다. 그러므로 유엔은 한국에 대하여도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임시 위원단을 파견하였다. 그 위원단은 신탁 없고 내정 간섭 없는 조건하에 그들의 공평한 감시로써 우리들의 자유로운 선거에 의하여 우리에게 남북 통일의 완전 자주 독립을 줄것과 미·소 양군을 철퇴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이제 불행히 소련이 보이콧으로써 그 위원단의 사무 진행에 방해가 불무하나 그 위원단은 유엔의 위신을 가강하여 써 세계 평화 수립을 순리하게 진전시키기 위하여 또는 그 위원 제공들의 혁혁한 없적을 한국 독립 운동 사상에 남김으로써 한인은 물론 일체 약소 민족 간에 있어서 영원한 은의를 맺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만일 자기네의 노력이 그 목적을 관철하기에 부족할 때에는 유엔 전체의 역량을 발동하여서라도 기어이 성공할 것은 삼척동자라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이 서광이 비치고 잇는 것이다. 미군 주둔 연장을 자기네의 생명 연장으로 인식하는 무지 몰각한 도배들은 국가 민족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고 박테리아가 태양을 싫어함이나 다름이 없이 통일 정부 수립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음으로 양으로 유언비어를 조출하여 써 단선 단정의 노선으로 민중을 선동하여 유엔 위원단을 미혹하게 하기에 전심력을 경주하고 있다. 미군정의 난익하에서 육성된 그들은 경찰을 종용하여서 선거를 독점하도록 배치하고 인민의 자유를 유린하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태연스럽게 현실을 투철히 인식하고 장래를 명찰하는 선각자로써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각자는 매국매독의 인진회식 선각자일 것이다.
왜적이 한국을 합병하던 당시의 국제 정세는 합병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애국 지사들이 생명을 도하여 반항하였지만, 합병은 필경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 현실을 파악한 일진회는 도쿄까지 가서 합병을 청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자들은 영원히 매국적이 되고 선각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설령 유엔 위원 단이 금일에 단정을 꿈꾸는 그들의 원대로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한다면 이로써 한국의 원정은 다시 호소할 곳이 없을 것이며, 유엔 위원단 제공을 한인과 영원히 불해의 원을 뱆을 것이요, 한국 분할을 영원히 공고하게 만든 새 일회는 자손 만대의 죄인이 될 것이다.
통일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 것은 고금의 철칙이니,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조국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민족을 사갱에 넣는 극악 극흉의 위험한 일이다. 이와 같은 위기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최고 유일의 이념을 재검토하여 국내외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유엔 위원단에 제출한 의견서는 이 필요에서 작성된 것이다. 우리는 첫째로 자주 독립의 통일 정부를 수립할 것이며, 이것을 완성하기 위하여 먼저 남북 정치범을 동시 석방하며, 미소 양군을 철퇴시키며, 남북 지도자 회의를 소집할 것이니 이 철과 같은 원칙은 우리의 목적을 관철할 때까지 변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불변의 원칙으로서 순식 만변하는 국내외 정세를 순응 혹 극복하여야 할 것이다. 독립이 원칙인 이상 독립이 희망 없다고 자치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을 왜정하에서 충분히 인식한 것과 같이 우리는 통일 정부가 가망 없다고 단독 정부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단독 정부를 중앙 정부하고 명명하여 위안을 받으려 하는 것은 군정청을 남조선 과도 정부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사사 망념은 해인 해기할뿐이니, 통일 정부 수립만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3천만 자매 형제여!
우리가 자주 독립의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면 먼저 국제의 동정을 쟁취하여야 할 것이요, 이것을 쟁취하려면 전민족의 공고한 단결로써 그들에게 정당한 인식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일절 내부 투쟁은 정지하자! 소불인이면 난대모라 하였으니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용감하게 참아 보자.
3천만 자매 형제여!
한국이 있고야 한국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자주 독립적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 하는 이때에 있어서 어찌 개인이나 자기의 집단을 사리 사욕을 탐하여 국가 민족의 백년 재계를 그르칠 자가 있으랴. 우리는 과거를 한번 잊어버려 보자. 갑은 을을, 을은 갑을 의심하지 말며 타매하지 말고 피차에 진지한 애국심에 호소해 보자!
암살과 파괴와 파공은 외군의 철퇴를 지연시키며, 조국의 독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조출할 것 뿐이다. 악착한 투쟁을 중지하고 관대한 온정으로 임해 보자!
마음 속에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에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내가 불초 하나 일생을 독립 운동에 희생하였다. 나의 연령이 이제 70 유 3인바 나에게 남은 것은 금일 금일하는 여생이 있을 뿐이다. 이제 새삼스럽게 재화를 탐내며 명예를 탐낼 것이랴! 더구나 외국 군정하에 있는 정권을 탐낼 것이랴! 내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주지하는 것도, 한독당을 주지하는 것도 일체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국가 민족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신이나 일당의 이익에 구애되지 아니 할 것이요, 오직 전민족의 단결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3천만 동포와 공동 분투할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서는 누가 나를 모욕하였다 하여 염두에 두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이번에 마하트마 간디에게서도 배운 바가 있다. 그는 자기를 저격한 흉한을 용서할 것을 운명하는 그 순간에 있어서도 잊지 아니하고 손을 자기 이마에 대었다 한다. 내가 사형 언도를 당해 본 일도 있고 저격을 당해 본 일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나의 원수를 용서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부끄러워한다. 현시에 있어서 나의 유일한 염원은 3천만 동포와 손목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된 조국의 건설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 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나는 내 생전에 38이북에 가고 싶다. 그쪽 동포들도 제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서 죽고 싶다. 궂은 날을 당할 때마다 38선을 싸고 도는 원귀의 곡성이 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의 원망스러운 용모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것도 같았다.
3천만 동포 자매 형제여!
붓이 이에 이르매 가슴이 억색하고 눈물이 앞을 가리어 말을 더 이루지 못하겠다. 바라건대 나의 애달픈 고충을 명찰하고 명일의 건전한 조국을 위하여 한번 더 심사하라.
대한민국 30년 (1948) 2월 10일
이 외에도 숨겨진 명 연설들은 많다. ‘선동성’을 본다면 아돌프 히틀러와 피에르 베르뇨의 연설이 단연 으뜸이다. 히틀러는 슈포르츠팔라스트 연설에서 체코 슬로바키아의 대통령 베네시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며 국민의 일치 단결을 요구한다. 특히 “독일인은 모두 나와 하나가 될 것이다. 나의 의지가 곧 우리 국민의 의지가 되고, 독일 국민의 장래와 운명은 내 행동에 지령을 내려줄 것이다.”와 같은 부분은 히틀러의 선동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피에르 베르뇨는 ‘루이 16세 처형을 종용하는 연설’을 통해 그의 웅변력을 보였다. 프랑스 혁명 시기 지롱드당 소속 의원으로 루이 16세 처형 당시에는 국민 의회 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또한 아이젠하워 2차 세계대전 당시 장군의 노르망디 상륙일 연설은 군인의 절제된 언어 속에서 아군의 사기를 북돋는 힘을 느끼게 해주며, 간디의 아마드바드 재판 관련 진술은 식민지 탄압 속에서도 식민지배의 부당함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함을 당당하게 밝힌 훌륭한 진술이다.
아이젠하워 장군의 노르망디 상륙일 연설(1944년 6월6일)
연합 원정군의 육해공군 장병 여러분 : 여러분들은 바야흐로 위대한 십자군 원정에 나서려 하고 있다. 여러 달 동안 우리는 이 과업을 준비하기 위해 땀흘렸다. 지금 세계의 시선은 여러분들에게 쏠려 있다.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지 그들의 희망과 기도는 여러분들과 함께 진군할 것 이다. 다른 전선의 전우 및 동맹군과 함께 여러분들은 독일 전쟁기구를 파괴해야 하며 유럽인들을 억압하고 있는 나치 전제주의자들을 제거해야 하고 자유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여러분들의 임무는 결코 쉽지 않다. 여러분들의 적은 잘 훈련되어 있고 잘 무장되었으며 전투경험으로 단련되어 있다. 적은 처절하게 대항할 것이다 . 그러나 지금은 1944년이다. 1940~41년의 나치 승전 이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연합국들은 수많은 회전과 백병전에서 독일을 대패시켰다. 우리의 항공전술에 의해 그들의 항공전력과 지상에서의 전쟁수행능력은 크게 약화 되었다. 우리의 조국 후방전선은 우리에게 압도적으로 우세한 무기와 탄약 을 제공하고 있으며 훈련된 대(大)예비 전투병력을 준비해두고 있다. 대세는 바뀌었다! 세계의 자유민들도 승리를 향해서 함께 진군하고 있다! 나는 여러 분들의 용기, 임무에 대한 헌신성, 그리고 전투역량에 무한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완전한 승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행운을 빈다! 그리고 이 위대하고 고귀한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간구하는 바이다.
General Eisenhower's D-day Speech(June 6, 1944)
Soldiers, Sailors and Airmen of the Allied Expeditionary Forces:You are about to embark upon the Great Crusade, toward which we have striven these many months. The eyes of the world are upon you. The hopes and prayers of liberty-loving people everywhere march with you. In company with our brave
Allies and brothers-in-arms on other Fronts you will bring about the destruction of the German war machine, the elimination of Nazi tyranny over oppressed peoples of Europe, and security
for ourselves in a free world.
Your task will not be an easy one. Your enemy is well trained, well equipped and battle-hardened. He will fight savagely.
But this is the year 1944! Much has happened since the Nazi triumphs of 1940~41. The United Nations have inflicted upon the Germans great defeats, in open battle, man-to-man. Our air offensive has seriously reduced their strength in the air and their capacity to wage war on the ground. Our Home Fronts have given us an overwhelming superiority in weapons and munitions of war, and placed at our disposal great reserves of trained fighting men. The tide has turned! The free men of the world are marching together to victory!
I have full confidence in your courage, devotion to duty and skill in battle. We will accept nothing less than full victory!
Good Luck! And let us all beseech the blessing of Almighty God upon this great and noble undertaking.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레토릭(수사학)을 "어떤 경우에든 각 사례에 적응할 수 있는 설득 방법을 창출해 내는 능력"이라 정의했다. 동시에 레토릭의 기술적 방법으로 논자의 인품(에토스), ‘여론’이라 할 수 있는 청자의 정서(파토스), 그리고 논자의 논리와 그 전개 방식(로고스)를 꼽았다. 즉 훌륭한 수사학 사용 - 타인을 훌륭히 설득하기 위해서는 존경받는 사람이 훌륭한 논리를 통해 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명 연설’이라 불리는 연설이나 논변들은 훌륭한 레토릭을 보여준다. ‘명 연설’은 대게 사회적인 신망을 받는 사람이 투영되는 이미지나 비 언어적 소통 등을 통해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여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여론을 움직여 나감으로써 레토릭의 목적인 ‘설득’을 이룬다.
앞으로도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은 대중들에게 연설로서 호소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여론의 향배가 바뀌는 일 역시 빈번할 것이다. 앞서 소개한 연설문들을 포함하여 앞으로도 많을 연설들에게서 그 수사법을 찾아내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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