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 스피킹 문제 중에 이런 유형이 있다. 두 가지 선택을 두고 고민하는 A의 상황을 듣고, A를 위해 조언해야 하는 문제다. 모범 답안은 A를 위한 선택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지만 영어 실력이 뒤쳐지는 이들을 위해 학원에서 변형하여 제공한 모범 답안이 있으니 일명 “내가 해봐서 아는데”다. 내가 해봤는데 이러저러해서 좋았으니 너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비교적 영어로 이야기하기도 쉽고, 논리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이 방식을 사용한다. 



내가 이 방식의 말하기를 처음 접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을 떠올린 것이 우연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말하기 방식을 외운 것처럼 유난히 여러 번, 각기 다른 상황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내가 배를 만들어 봐서 아는데.”, “내가 학생운동 해봐서 아는데.”, “내가 사업 해봐서 아는데” 등등. 이명박 대통령의 나이는 70. 여러 극단적인 위치를 전전하며 살아온 파란만장한 인생이라 실제 경험이 다양한 것인지도 모른다.

MB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불편한 두 가지 이유
하지만 누군가가 무언가를 해 본 경험이 있다고 해서 그 분야에 대해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도 관점에 따라 다른 견해를 가지기 마련이라 한 전문가의 소견은 객관적인 설명이 될 수 없는데 당연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MB가 가지는 견해는 공신력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MB가 대통령이란 이유로,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소감을 공적인 영역으로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해봐서 안다”라는 말에는 국민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담겨있다. SSM 때문에 살기가 더욱 힘들어진 중소상인들에게 “내가 장사 해봐서 아는데,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말에는 ‘중소상인들이 충분히 현명하지 못해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나라에 푸념이나 한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의 생각구조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러한 MB의 태도는 불행하게도 MB의 개인적 성향뿐이 아닌 한국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태도로 보인다. 우리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사회 이곳저곳에서 마주하고 있으며 우리 자신 안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한국사회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영화 <이층의 악당>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한국 남자들은 나이 처먹어가지고 아저씨 되면 아무한테나 조언하고 충고하고 그래도 되는 자격증 같은 게 국가에서 발급되나봐.” 대학교 입학해서 나이 많은 선배들을 대면했을 때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먹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알려주고, 충고해 주지 못해 안달이다.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아나운서 발언 사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후배가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하자, 살면서 주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확실한 정보인양 말해 주며, ‘내가 이 정도로 이 나라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잘 아는,”잘 나가는” 어른’임을 과시하고 싶은 대한민국 성인 남성의 정서에 기반 했는지도 모른다.우리는 이 말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이미 이런 표현법을 무의식중에 사용하고 있거나, 잠재적 수요자인 대한민국인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단순히 '꼰대'가 되면 그나마다행이다. '변절자'라는 꼬리표를 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운동권출신 한나라당이 많은 이유  
80년대의 핵심인물이자, 박종철 열사가 목숨걸고 지키려 했던 박종운은 20년 뒤에 “80년대 코드는 이미 수구논리로 변질되었다.”라고 말하고 역시 386세대라 불리는 한나라당 권택기 당선인은 “386이란 용어는 자기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활용됐던 세대 차별적 개념이었다”라고 이야기 한다. 

학생 노동운동의 대표 주자였던 경기도 김문수 지사의 전향은 다른 이들의 한나라당 입당보다 놀라웠다고들 할 만큼 그는 노동운동의 중심에 있었지만 현재는 좌파라는 출신 성분에 대해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 그가 자신이 몸담았던 그 시대정신이 옳지 않음을 소개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그는 어릴 적부터 바나나와 커피는 절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반미감정 때문이다. 바나나와 커피를 사먹을 형편도 못됐지만, 왠지 이걸 구매하면 미국 국민만 잘 살 것 같았다고 한다. 김 지사는 “그만큼 편견은 무서운 것이다. 구제역은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이 미국에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했다. (뉴데일리, 2011.01.23)

그가 직접적으로 ‘내가 좌파였기 때문에 아는데, 그것은 잘못 생각했던 거야.’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의 말에서 쉽게 그런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반미감정의 역사적, 문화적 기반이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스운 한 일화로, 반미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다 잘못된 유행에 휩쓸렸던 것 인양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위험한 사람
사상도 논리도 없이 유행처럼 반 MB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한나라당을 찬양하는 사람들 보다 더 위험하단 생각이 절로 든다. 이들이 MB처럼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논리적 기반과 사상 없이 반MB를 외치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보수적인 자신을 깨닫고 나면, “내가 진보라 하는 애들을 잘 알아서 그러는데, 그거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라고 쉽게 내뱉을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몇몇 이들은, ‘자신’이 재미삼아 놀러가듯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친구들이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며 선동했기 때문에 참여한 것이며, ‘대부분’의 촛불집회 참여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자신의 경험을 전체로 확대시킨다. 

20대인 우리들 역시,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고 지금보다 보수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변화를 그리고 그 이유를 의식적으로 인지하려는 노력, 그리고 과거의 나와 우리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20년 뒤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깔끔하다 못해 냉정한 자기 부정보다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행동이 아닌가 싶다.